(30)빅딜 · (31)신의의지

2008.12.24 14:44
글 강일권(웹진 리드머 편집장)·진행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

빅딜로 만든 ‘한국힙합의 빅뱅’

빅딜 록스타 레이블과 초콜릿 뮤직 팩토리라는 크루와의 ‘빅딜’ 과정으로 탄생

데드피

데드피

빅딜 레코드는 한국 힙합 신을 이끌어가는 몇 안 되는 레이블 중 하나이자 가장 뚜렷한 음악 색깔을 지닌 집단이다. 그리고 사전적 의미처럼 빅딜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레이블의 시작은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자작곡을 올리며 활발하게 교류하던 사이트 ‘밀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결성된 크루 인펙티드 비츠가 중심이 된 레이블 록스타와 초콜릿 뮤직 팩토리라는 크루가 긴밀히 교류해오다가 래퍼 데드피의 솔로 앨범을 계기로 두 집단이 합병하게 된 것이다(공식적인 레이블의 첫 결과물은 모리얼의 EP ‘The Greatest’이지만, 실제 빅딜 레코드를 출범시킨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데드피의 음반이었다). 그리고 이 앨범의 파급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데드피의 묵직하고 강력한 래핑과 메인 프로듀싱을 맡았던 랍티미스트의 로한 비트의 조화는 1990년대 이스트코스트 힙합 스타일을 충실하게 재현해내며 많은 힙합 마니아를 열광케 했고, 빅딜 레코드는 일약 힙합 팬들의 주목받는 레이블로 떠올랐다(랍티미스트는 원래 합쳐진 크루의 일원이었을 뿐, 빅딜 레코드와 계약을 맺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야말로 빅딜이 한국 힙합 신에 성공적으로 첫 발을 내디디는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빅딜 레코드는 아직 내부적으로 체계가 확실하게 잡힌 상태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음악을 창작하는 것에 뜻을 둔 뮤지션들만 모이다 보니 비즈니스적인 부분을 담당하거나 음반 제작을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 탓이다. 이 때문에 데드피의 앨범을 계기로 탄력을 이어갔어야 할 레이블의 다음 작품은 계속 미뤄지기만 했다. 시간이 흐르자 몇몇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레이블의 정비를 위해 나선 이가 바로 지금의 정환석 대표다. 당시 쇽 이(Shock-E)라는 이름으로 래퍼 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가 자진해 대표직을 맡음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레이블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었다.

2005년 래퍼 어드스피치가 데뷔앨범 ‘Elements Combined’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뒤이어 오늘날까지 빅딜 레코드 음악의 핵심을 쥐고 있는 프로듀서 마일드 비츠도 ‘Loaded’를 발표하며, 레이블의 인지도를 확실하게 올려놓았다. 2006년에는 마일드 비츠가 수준급의 스토리텔링 구사로 마니아들에게 호평받았던 래퍼 라임어택과 손잡고 듀오 프로젝트 앨범 ‘Message From Underground 2006’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이 앨범은 평단과 음악팬들의 호평은 물론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 음반’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이렇듯 거침없이 달려온 빅딜 레코드는 현재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아무래도 음악 스타일이 마니아적이다 보니 좀더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해나가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존 스타일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레이블의 색을 바랠 위험이 있다. 빅딜 레코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한창 고민 중인 정 대표를 어느 바에서 만났다.

-빅딜 레코드의 시작이 궁금하다.

“그야말로 사전적 의미처럼 빅딜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인펙티드 비츠라는 크루가 중심이 된 록스타라는 신생 레이블과 초콜릿 뮤직 팩토리라는 크루가 있었는데, 프라이머리, 랍티미스트, 딥플로우 등이 록스타에, 그리고 나와 데드피 등이 초콜릿 팩토리 소속이었다. 그때 두 집단이 긴밀히 교류하면서 함께 작업을 해오다가 랍티미스트가 메인 프로듀싱을 맡고 데드피의 솔로 앨범을 내기로 하면서 합병하게 됐다. 사실 당시만 해도 빅딜 레코드는 어느 한 사람이 대표로서 이끄는 형태가 아니었고, 나도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힙합 신에 본격적으로 몸담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대표로서 레이블을 이끌게 된 건가.

“어쨌든 뜻을 품고 레이블을 시작했으면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데드피 앨범 이후 일이 지지부진했다. 각자 개성이 강한 여러 명이 모여 있는 상태에서 중심을 잡아주거나 진행하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사람이 없다 보니 의견 조율이나 제작 투자 부문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나서야 할 시기였다. 그래서 ‘내가 책임질 테니 따라와라!’고 하고 사무실을 얻은 후, 레코딩 시설을 구축했다. 이를 계기로 내가 대표로서 레이블을 이끌게 된 것이다.”

-빅딜 레코드의 장·단점은 뭔가.

“소수에게 강한 충성도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무래도 많은 이가 보편적으로 좋아하기는 좀 힘든 스타일이다. 우리의 음악을 좋아해주는 팬들 중에는 외국 힙합음악도 많이 들어온 골수팬들이 많다. 이른바 힙합 커뮤니티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이들 말이다.”

빅딜 뮤지션 멤버들

빅딜 뮤지션 멤버들

-음악적 스타일을 바꾸는 것을 고민한 적은 없나.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단지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것을 빅딜 내부에서 하는 것과 외부적으로 하는 것 중 어떤 쪽이 더 옳은 선택일 것인가를 고민한 적은 있다. 결국 기존 빅딜의 색깔과는 다른 음악 스타일을 담았던 마르코의 앨범으로 내부에서 시도를 해봤는데 확실히 다른 타깃을 노리고 마케팅을 하면 다른 반응이 오더라.”

-여전히 언더그라운드 힙합음악으로 온라인 시장을 효과적으로 뚫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힙합 팬들이 생각하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정통성이 언더그라운드 힙합음악의 필요조건이라고 본다면, 절대 온라인에서 수익이 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언더그라운드 시장은 적은 소비층이 강한 충성도를 보이는 곳이다 보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통성이라는 것을 담보로 하지 않아도 언더그라운드라는 영역에 존재할 수 있다면, 틈새시장을 노려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레이블을 이끌어가면서 가장 바라는 것은.

마르코

마르코

“빅딜 소속 친구들이 좀더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부지런하게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힙합 신에 바라는 건 뮤지션 못지않게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더 많은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대중가요를 듣는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마니아라 불리는 이들이라면 책임의식을 가지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흘려듣기보다는 진지하게. 그래야 많은 뮤지션이 좀더 명분 있는 음악을 하지 않을까. 듣는 사람들의 수준이 높아지면,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고 거기에 뮤지션들이 압박을 받음으로써 양질의 음악들이 계속 나올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최근 힙합 신에는 이런 부분이 부족한 것 같다.”

-외부적으로 바라는 건 없나.

“현재 문화 콘텐츠의 가치를 가늠하는 척도를 수익성에 대비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것은 바뀌어야 할 부분이다. 내가 보기에 정부가 음악 사업을 지원할 때 두 가지 기로에 서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신인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대중에게 알려지기 힘들지만 정말 좋은 음악을 하는 이를 발굴해 음악의 다양성을 알려줄 것인가, 아니면 메이저 기획사에서 나와 이른바 뜰 것이 어느 정도 보장된 신인에게 더 힘을 실어줄 것인가. 대부분은 후자의 경우로 결론이 난다. 일단은 그들도 눈에 보이는 사업성과가 있어야 하니까…. 올해부터 인디레이블 육성 지원사업도 없어졌지 않나. 그렇다면 인디레이블은 자생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난 점점 각자의 취향이 중요해지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음악은 전혀 의외의 곳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음악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에 한류가 조성될 수 있었던 거고, 대중문화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반응을 얻을 만한 음악은 오히려 인디레이블 뮤지션의 음악 중에 있을 확률이 높다. 이 부분을 너무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신의의지 2003년 초 ‘Chapter One: One Luv’라는 정규 앨범을 발표한 랩혼과 박지호로 구성된 투디알이 설립한 신의의지 레코드는 한때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의 대표적인 레이블 중 하나였다. 2003년 당시는 언더그라운드 힙합공연의 메카였던 클럽 MP가 문을 닫으면서 많은 뮤지션이 공연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때이기도 했다. 게다가 대부분 약한 기반을 바탕으로 힘겹게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에 후배 뮤지션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실력 있고 가능성 있는 이에게 더 쉽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레이블을 설립했다고 한다.

신의의지가 처음으로 내놓은 결과물은 대구에서 활동하던 듀오 바이러스의 EP ‘Pardon Me’였다. 현재 대표적인 스토리텔링 래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마이노스와 메카로 이루어졌던 이 듀오의 앨범을 계기로 레이블은 성공적인 첫 발걸음을 내디뎠으며, 이후 한국 최초의 온라인 앨범이었던 라임어택의 ‘Story At Night EP’에 이어 엘큐, 팔로알토, 알이에스티, 바이러스 등 소속 뮤지션들이 총출동한 컴필레이션 ‘People & Places Vol.1’ 등을 발표하며 점점 입지를 다져갔다.

이렇듯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좀더 나은 환경에서 결과물을 발표할 수 있게 한 것만으로도 신의의지는 의미 있는 행보를 보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와 함께 더욱 레이블의 가치를 높인 것이 바로 ‘더 쇼’라는 정기 공연을 주최했다는 점이다. 한 달마다 정기적으로 열렸던 이 공연은 당시 정기적인 언더그라운드 힙합공연이 전무하던 상황에서 신의의지 소속 뮤지션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에게도 자신과 음악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상당했다. 그러나 신의의지는 팔로알토와 바이러스, 라임어택 등이 다른 레이블로 옮기면서 점점 입지가 좁아졌고 더 쇼도 중단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후 2007년에 다행스럽게도 엘큐의 앨범과 새로운 더 쇼 공연을 시작하며 레이블이 다시 도약을 하는가 싶었으나 현재는 모든 소속 뮤지션들과 계약이 끝나 사실상 레이블로서 활동은 멈춘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위해 비정기적으로나마 더 쇼를 주최하고 있으며, 특히 ‘강압적인 제약과 구속 없이 아티스트들의 음악세계를 존중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줄 것’(신의의지 홈페이지에서 발췌)이라는 신념 아래 한국 힙합 신을 이끌었던 레이블의 발걸음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힙합 팬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아티스트 및 앨범 - 빅딜

모리얼(Mo’Real) [The Greatest] (2004)

마일드 비츠(Mild Beats) 힘 있고 로한 힙합을 추구하는 빅딜 레코드 음악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듀서. 라임 어택의 EP 이후 데드피, 어드스피치 등의 앨범에서 탁월한 프로듀싱을 보여주다가 2005년에 첫 번째 앨범 ‘Loaded’를 발표하며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Loaded] (2005)

[Never Sold Out] (2007)

라임 어택 & 마일드 비츠(Rhyme-A- & Mild Beats)

[Message From Underground 2006] (2006/신의의지&빅딜레코드)

어드스피치(Addsp2ch) 2005년에 첫 번째 앨범인 ‘Elements Combined LP’를 발표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어드스피치는 상당히 여유 있는 래핑을 구사하는 MC다. 특히 그는 영상분야에서도 재능이 있어 뮤직비디오를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Elements Combined LP] (2005)

[한국의 인디레이블](30)빅딜 · (31)신의의지

데드피(Dead’P) 2004년 ‘Undisputed’라는 데뷔 앨범과 함께 한국 힙합 신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묵직한 보이스컬러를 바탕으로 한 무게감 있고 유연한 플로를 자랑하며, 데뷔 앨범으로 힙합 마니아들의 커다란 호평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후 입대 때문에 활동을 중단했다가 전역 후 새 앨범을 준비 중이다.

[Undisputed] (2004)

딥플로우(Deepflow) 랩, 비트 메이킹,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래퍼. 라임 어택의 EP에 참여하며 주목받은 그는 빅딜 레코드 소속 이후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솔로 활동과 더불어 메스퀘이커(Mesquaker)라는 크루를 이끌며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Vismajor] (2007)

[한국의 인디레이블](30)빅딜 · (31)신의의지

마르코(Marco) 2인조 힙합그룹 모리얼(mo’REAL)로 데뷔한 마르코는 클럽에서 활동을 벌이다가 2003년과 2004년에 두 장의 EP를 발표하기도 했다. 역시 랩뿐만 아니라 프로듀서로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2007년에는 드디어 솔로 데뷔작인 ‘Music Is My Life’를 발표했는데, 기존 빅딜 레코드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도 섞여 있어 신선함을 안겼다.

[Music Is My Life] (2007)

- 신의의지

바이러스 (Virus)

[Pardon Me?] (2003)

[한국의 인디레이블](30)빅딜 · (31)신의의지

엘큐(Elcue)

[Unofficial Experiment] (2003)

[The Experiment 2] (2005)

[초대 - The 1st LP]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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