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칼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009.07.01 18:02
박홍규|영남대교수·법학

최근 중산층을 더욱 두껍게 보호하겠다고 주장하는 정부가 이해하는 우리 중산층의 가치관은 어떤 것일까? 미국의 정치학자 잉글하트는 1972~73년 서양 여러 나라를 조사한 결과, 부유한 나라일수록, 연령이 낮을수록, 그리고 농민, 노동자, 중산층 순으로 반물질적 가치관을 갖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중산층처럼 반물질적 가치관을 가질수록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진보적이며, 국제주의적이고, 엘리트에 대해 도전적이고, 기성의 정당이나 노동조합에서 멀어진다고 보았다. 그런 70년대 서양의 경향을 지금 우리의 경향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이는 우리 정부가 이해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공생의 삶’ 거부하는 李정부

잉글하트는 이어 2002년에 발표한 가치관 지도에서 전통적 가치관으로부터 비전통적이고 비종교적이며 합리적인 가치관으로 상승하는 것을 보여주는 세로축, 생존가치에서 자기표현가치로 상승하는 것을 보여주는 가로축을 설정하고, 대부분의 서양 국가를 그 양극의 상단에 위치시킨 반면, 한국은 전통가치가 박약하지만 자기표현가치보다 생존가치에 머물고 있는 수준으로 중국과 유사하게 평가했다. 반면 일본의 경우 전통가치는 마찬가지로 박약하지만 자기표현가치는 훨씬 높다고 보았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다른 국내외의 조사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고 중산층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한국이 중국보다 경제적으로 더 부유함에도 중국과 거의 같은 수준의 비종교적인 합리적 가치의 상향을 보이는 반면 일본보다 자기표현가치가 훨씬 낮다면 앞으로 나아갈 정책 방향은 무엇보다 반물질주의적인 자기표현가치의 상향이 아닐까?

여기서 과거의 유교나 불교나 기독교로 돌아가자는 종교운동 또는 원시사회나 전통농업사회로 돌아가자는 반문명의 주장에 호감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동시에 그것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그렇게 돌아갈 수도 없고 설령 돌아간다고 해도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런 전통종교나 전통사회가 갖는 반인간주의적이고 비민주주의적 요소를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종교는 물론 모든 학문과 사회운동이나 국가정책이 목표로 삼아야 할 인간의 자기표현가치 증대는 무엇보다 물질주의와 엘리트주의에 대한 도전이고 정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실천이어야 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산업주의, 국가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엘리트 중심의 개인주의와 과학주의에 대한 철저한 도전이어야 하지 않을까? 종래의 엘리트 중심에 도전하여 모든 시민의 개인적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하고, 정치적 차원에서는 엘리트에 의한 국가권력의 독점과 엘리트 간 경쟁을 중심으로 한 간접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최대한 반영하는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이 아닐까? 군사적으로는 반핵·반전평화운동, 국제적으로는 반세계화운동, 경제적으로는 직장민주주의와 직원을 포함한 노동자의 참여 실현, 사회적으로는 재판 등 친시민적인 일상에 대한 시민 결정권의 확대를 비롯한 각종 소수자 차별 등 모든 사회적 편견에 의한 차별을 철폐하는 인권 실현 운동 등에 있는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의 이른바 중도실용노선이란 근본적으로 그것과 배치되는 것이 아닐까?

더불어 사는 가치 존중받아야

우리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경우 ‘민주’라는 말에 대한 이해는 다양하지만 이를 존 듀이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공생’이라고 이해하면 그것은 바로 ‘공화’를 뜻한다. 그 공화란 자타가 융합하는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이한 타자와의 긴장관계를 받아들여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공화란 상이한 것들의 공존공생을 뜻하고, 서로 차이가 있음을 주장하는 권리와 서로 평등하다는 것을 요구하고 승인받는 권리를 통합하는 것이지, 소수 특권층이 다수를 차별하고 억압하며 배제하는 것도 아니고, 그 다수를 소수에 동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공화란 특정한 사람들만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속, 배경,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공개되고 누구나 차별하지 않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공생하는 삶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런 공생사상에 근거한 민주공화국을 근본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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