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도시 ‘일하는 자전거’로 만들어 갑니다”

2009.09.01 17:40 입력 2009.09.01 17:41 수정

‘자전거 메신저’ 지음·라봉·나은

자전거족 늘수록 매연·공해 감소… 수익 낮아도 ‘사람사이 연결’ 의미

“친환경 도시 ‘일하는 자전거’로 만들어 갑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어나 지구 곳곳이 신음한다. 알프스의 만년설이며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린다는 기사는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과연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여러 가지 실천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자전거 타기다.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세운 정부는 자전거도로를 확충하고 지하철에 자전거를 갖고 탈 수 있도록 하는 등 여러 아이디어를 짜내 자전거 타기 장려책을 펼치고 있다. 친환경적이고 건강에도 보탬이 되니 자전거 타기가 일석이조라는 건 누구나 알지만 자전거 타기는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이유가 뭘까.

자전거가 자동차 등과 동등하게 도로 위를 오갈 수 있는 엄연한 교통수단이라는 인식이 덜하기 때문은 아닐까. 자전거를 밥벌이의 수단으로 삼아 ‘자전거메신저’(blog.jinbo.net/messenger)로 일하는 지음(34), 라봉(31), 나은(30)씨가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며 호소하는 가장 큰 고충도 바로 이것이다.

자전거메신저, 우리에겐 낯선 직업이다. 현재 오토바이가 하는 퀵서비스, 택배, 업무 대행 등을 자전거를 타고 하는 사람들이다. 세 사람 중 지난해 10월 처음 자전거메신저를 시작한 지음씨는 자전거메신저가 새로운 직종은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서는 오토바이가 아니라 자전거를 통한 퀵서비스가 정착한 지 꽤 오래됐다는 것. 그는 “2000년대 초반에도 자전거로 퀵서비스를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돈벌이가 되지 않다보니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최근에 오토바이 퀵서비스에 다니면서 8년간 자전거를 타다 독자적으로 자전거메신저 회사를 내신 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7년 전부터 교통수단으로써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음씨는 교통·물류에 보이는 자본의 지배를 바꿀 수 있는 대안이 자전거라고 보고, 자전거가 일과 병행될 때 자전거를 타는 인구가 늘겠다는 생각에 자전거메신저 사업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그가 서비스를 시작한 후 나은·라봉씨가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올 봄 메신저로 합류했다. “자전거의 효율이 떨어져 보이기도 하겠지만, 제 스스로가 동력이 되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생태적으로 의미가 있잖아요. 또 자유롭게 일하고, 마음껏 자전거를 타니 좋고요.”(라봉)

이들은 자전거가 생활속의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자전거에 대한 세간의 편견 중 하나는 빠르지 않다는 것인데, 성인이 보통 자전거로 달리는 속도가 시속 15㎞, 도심을 주행하는 차량의 평균속도가 시속 14㎞ 내외이니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복잡한 도심에서는 자전거가 빠르다. “자전거 인구가 늘면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에 일조하니 매연과 공해도 줄어들고 속도에 대해서도 여유로워질 것이라고 봐요.”(나은)

문제는 ‘도로=자동차길’이라는 인식이다. 도로 위의 차량들은 자전거에 호의적이지 않다. 택시와 오토바이가 차선을 마구 바꿔가며 곡예운전을 해대니 도심에서 자전거는 당당하게 도로를 질주할 권리조차 무시당한다. “정부에서 자전거 정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사실 주시하고 있진 않아요. 요즘 부쩍 자전거도로 확충공사가 눈에 띄는데 계획도시가 아닌 이상 제대로 된 자전거도로를 만들기가 힘든 게 서울의 현실이 아닌가 싶어요. 로드다이어트(기존 차로를 좁혀서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것)를 해서 만든 자전거도로도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고요. 차라리 주행제한속도를 30~40㎞로 낮춰 자전거와 차, 오토바이들이 서로 어울려 달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요.”(라봉)

이들의 방점이 자전거에만 찍혀 있지는 않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메신저의 역할에도 의미를 둔다. 아직까진 문서 수발, 물건 배송 등 기존의 오토바이 퀵서비스들이 하는 일 위주이지만 앞으로 자전거로 가능한 서비스를 생각 중이다. 퀵서비스뿐 아니라 예약 배송, 2인용 자전거로 서울도심 투어하기 등 자전거로 가능한 서비스라면 무엇이든 해볼 작정이다.

아직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주문량이 많지는 않다. 하루 평균 3~4 건, 어떤 날은 한두 건에 그치기도 한다. 일을 나가 번 돈은 담당 메신저의 임금이 된다. 아직까지 업무가 많지 않다보니 월평균 1인당 수입은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친다. 각자의 생활이 유지되는 적정선은 1인당 1일 3~4건 정도가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이들도 인정한다. 자전거 메신저로 생활을 꾸려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하나 이들의 목표는 돈이 아니라, 자전거로 상징되는 다른 속도의 공간과 삶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최저생계비 수준의 임금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일이 궤도에 올라가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일반 기업처럼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전거 혹은 자전거를 타는 의미, 가치들이 전파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죠.”(나은)

자동차에 점령당한 도시에,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인 자전거가 늘고 사람의 보행권이 확보되면 도시는 좀 더 살맛나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것이 이들이 바라는 꿈이다.

“자전거면 충분합니다.” 이들의 명함에 새겨진 문구가 자꾸만 어른거린다. 문의 070-8226-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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