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아름다운 예술인 이유

2009.09.27 18:16
김태훈|팝칼럼니스트

[판]영화가 아름다운 예술인 이유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사진전을 준비 중이다. 사진작가 지나 정과 함께 ‘소통의 시간’이라는 주제로 영화와 영화인들의 소통을 담아내려고 한다. 예상대로 기획 단계부터 섭외, 촬영까지 그리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처음 이 기획을 시작했을 때 가졌던 생각은 감독과 주연 배우만으로 기억되는 영화의 이면을 엿보자는 것이었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을 따라가 제작자와 현장 스태프, 영화 음악가와 평론가 등 다양한 영화인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촉박한 일정 때문에 별다른 감흥을 느낄 새도 없이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될 때마다 조금씩 영화와 그 영화에 복무하는 영화인들에 대한 존경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영화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사랑에 대한 것이다.

감독 열전의 모델이 돼주었던 노장 이장호 감독은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죄인입니다. 관객들에게 빚진 죄인입니다. 빚을 갚아야겠습니다.’

일종의 투혼이라고 해석해야만 할까?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릴 만큼 꽤 오랜 시간 동안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현장으로 돌아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그것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관객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내는 이장호 감독의 이야기는 한동안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던져주었다.

잠시 영화 잡지를 떠나 있다 돌아온 ‘무비위크’의 나원정 기자는 자신을 천생 ‘영화 잡지쟁이’라고 표현해 숭고한 애정을 드러냈고, 신인 여배우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선 성유리는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은 유혹적이다’라며 은근한 설렘을 내비쳤다.

<박쥐>의 음악감독 조영욱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 속에서 음악으로 상상하다.’

할리우드의 거장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음악감독인 존 윌리엄스에게 멋진 헌사를 했었다.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은 나의 영상이지만, 그들을 눈물 흘리게 만드는 것은 존 윌리엄스의 음악이다.”

조영욱은 영화음악가라는 영화의 한 분야를 책임진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을 한 줄의 글귀에 넣어 놓았던 것이다.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 온 스턴트맨 권귀덕은 거친 액션 장면을 담당하는 인물 같지 않게 촬영 내내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적은 방명록의 끝자락엔 ‘대한민국 스턴트맨’이라는 표현으로 남다른 긍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해운대>가 1000만 관객을 넘어서고, <국가대표>가 800만 고지에 올랐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해운대>의 촬영감독 김영호의 글은 그 모든 이유를 영화인의 편에서 명쾌히 설명해준다.

‘어머님이 해운대를 보고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고생 많았겠다고…. 난 대답한다. 생각보다 재밌고, 신나는 일이라고. 영화를 만드는 일은….’

이탈리아의 좌파 이론가 그람시는 ‘축구는 야외에서 행해지는 인간적 충실함의 완성본’이라고 했다. 22명으로 이루어진 스포츠가 그러하건대, 수백명의 스태프와 관련 종사자들의 합작으로 이루어지는 영화야말로 인간적 관계의 완성본이라고 본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자신들이 선택한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끝없는 사랑, 그리고 그 수백의 사랑이 이루는 관계들, 영화가 아름다운 예술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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