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마음읽기

동성애에 대한 공포, 그 그림자

2010.06.01 18:14 입력 2010.06.01 23:00 수정
정도언 | 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정도언의 마음읽기]동성애에 대한 공포, 그 그림자

텔레비전 드라마에 동성애가 다뤄지면서 동성애에 대한 논란이 부쩍 일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래전 미국 연수 중에 만난 같은 연구실의 연구원이 생각난다. 그는 성품도 훌륭하고 인물도 좋고 실력도 뛰어났다. 어느 날 그런 그가 동성애자라는 말을 듣고 놀랐지만 그에 대한 내 느낌이 변하지는 않았다.

정신과 의사들이 동성애를 ‘성 정체성의 장애’이므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병’이라고 주장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오래전에 이미 본인 스스로 불편해하고 갈등을 느끼는 경우가 아니면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동성애가 본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고 뇌 기능이나 구조의 차이에서 온다는 연구들도 있다.

사람들은 남이 자기와 다르면 불안감을 느끼고 자신을 그 대상으로부터 방어하려고 한다. 질병의 역사를 살펴보면 결핵, 정신병, 한센병(나병), 에이즈, 신종플루에 대한 반응이 그러했다. 그 병들이 한창 퍼질 때 사람들은 되도록 자신들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고립된 환경에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결핵 요양원이 그러했고 약물의 발전으로 결핵이 수그러들면서 결핵 요양원이 정신병동으로 용도 전환된 것이 그러하다. 에이즈나 신종플루에 대한 반응도 비슷했다.

질병이 아닌 문화의 측면에서도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그리고 그 자녀들에 대한 차별이 그러하다. 혼혈인들에 대한 그간의 구박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행동의 뿌리에는 자기와 다른 소수자가 자기를 ‘오염’시킬까 걱정하는 불안이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쌓지 않아도 되는, 아니 쌓으면 안 되는 장벽을 억지로 무리해서 쌓으려고 하는 것이다.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나 성전환자에 대한 장벽 쌓기와 격리 노력도 마찬가지다. 나와 다르면 ‘오염’을 막기 위해 무조건 갈라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단지 확률적인 면에서 소위 ‘정상인’으로 태어났을 뿐인데도 소수자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우리 인간은 모두 양성적인 면을 타고 태어났고, 겉으로 보기에 남성은 그저 남성적인 면이 지배적이고 여성은 여성적인 면이 지배적인 것일 뿐이다.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해결책은 별것이 없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에이즈가 걱정되면 개개인이 올바른 성생활을 하면 되는 것이지 자신의 불안을 동성애자들에게 투사해서 그들을 비난할 필요가 없다. 이미 텔레비전 드라마들이 온갖 종류의 불륜과 악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동성애자의 갈등과 고뇌를 드라마의 일부로 다룬다고 해서 마치 우리 사회가 금방이라도 동성애자들의 세상으로 뒤집어질 것같이 반응하는 것은 지나치다. 동성애자인 가족이 있을 때 전체 가족 시스템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를 작가가 던졌다면 우리도 가족이 있는 입장에서 같이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반드시 동성애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족은 늘 도전과 적응의 문제에 놓여있기에.

동성애에 대한 논란에서 행동보다는 내면적 성찰이 필요한 때다. 그것이 성숙한 사회로 갈 수 있는 길이다. 동성애는 이제 현실의 일부이며, 개방하지 않고 덮어놓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자꾸 윽박지르면 오히려 어둠 속으로 숨어 더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본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성적 소수자로 태어난 이들을 박해한다면 우리 문화의 품격이 열등하다는 것을 선전하는 꼴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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