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마약과의 전쟁 ‘유혈 역풍’에 가시밭길

2010.06.22 17:35 입력 2010.06.22 17:38 수정
이청솔 기자

멕시코·콜롬비아 ‘고군분투’

총격전 잇따라 준내전상태

재배·유통 되레 늘어 골머리

멕시코 남부 게레로주 탁스코 지역의 광산에서 지난달 말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달 7일까지 모두 55구가 발굴됐지만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 상태에 경찰과 주민들은 경악했다. 멕시코에서는 이처럼 마약조직들이 다른 조직의 구성원이나 민간인들을 살해한 뒤 이를 은폐하기 위해 사람이 자주 찾지 않는 곳에 버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탁스코에서 발굴된 사망자 가운데는 지역 교도소장도 있었다. 2006년 이후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멕시코의 현주소다.


멕시코 티후아나의 마약 밀매범들이 지난 4월21일 압수된 마리화나 더미 뒤에 서 있다. 티후아나 | AP연합뉴스

멕시코 티후아나의 마약 밀매범들이 지난 4월21일 압수된 마리화나 더미 뒤에 서 있다. 티후아나 | AP연합뉴스

중남미 대륙이 마약과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 최대의 마약 소비시장 미국에 공급되는 마약은 대부분 중남미에서 생산되거나 이 지역을 통해 유통된다.

멕시코,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 정부는 미국의 후원을 등에 업고 마약 밀매조직을 뿌리 뽑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오히려 마약조직들의 거센 저항을 불러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달 카리브해 북부의 섬나라 자메이카는 마약왕 검거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유혈사태를 겪었다.

[세계의 창]중남미 마약과의 전쟁 ‘유혈 역풍’에 가시밭길

자메이카 정부는 지난달 23일부터 수도 킹스턴의 한 빈민가에서 마약 조직의 두목 크리스토퍼 코크를 검거하기 위해 군경을 동원해 작전을 벌였다. 그러나 마약조직원들이 도리어 역습에 나섰고 총격전이 벌어졌다. 사태가 사실상 ‘준내전상태’로 비화하면서 5일 동안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76명이 숨졌다. 코크는 어딘가로 도망쳤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자메이카 정부의 코크 체포 작전은 지난해 미국이 코크의 신병 인도를 요청하면서 촉발됐다. 브루스 골딩 자메이카 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오랜 기간 자신에게 후원금을 대온 코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상처뿐이었다.

중남미 마약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나라는 멕시코다. 미국의 턱밑에 위치한 멕시코는 마약의 생산거점이라기보다는 주요 유통경로다. 멕시코 마약 조직은 미국 내에서 유통되는 마약의 70%를 공급하고 있다. 코카인만 따지면 그 비율은 90%까지 올라간다. 지난해 미국 국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멕시코 마약조직들은 미국 내 200개 도시에 자체적인 공급망을 보유하고 있다. 2006년과 비교하면 오히려 두 배로 늘어났다. 그해에 시작됐던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이 성공적이지 못함을 보여주는 수치다.

중도우파 국민행동당 소속의 칼데론 대통령은 취임 10일 후 마약 조직 간의 폭력이 위세를 떨치던 미초아칸주에 군병력 6500명을 파견함으로써 ‘개전’을 선포했다. 2000년까지 71년 동안 장기집권해온 중도좌파 제도혁명당 정부는 마약조직들에 대한 대처에 소극적이었다. 제도혁명당과 마약조직들 사이에 암묵적인 유착 관계가 있다는 설도 무성했다. 반면 칼데론은 마약과의 전쟁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

멕시코의 마약조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역내 패권을 쥐고 있던 콜롬비아의 메델린 카르텔과 칼리 카르텔이 1990년대 들어 쇠퇴한 이후 그 역할을 확대했다. 애초에는 콜롬비아의 코카인 밀매업자들을 미국의 갱들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그 대가로 현금을 받았던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들이 현재는 콜롬비아산 코카인의 유통을 전담하고 있다. 마약조직들은 공권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했다. 이들은 수류탄 발사기, 자동소총 등의 무기로 무장했고 방탄복까지 갖췄다.

칼데론은 2006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군병력 5만여명과 경찰 2만여명을 투입해 마약조직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무장한 마약조직은 쉽게 무너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는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2만3000명을 넘어섰다. 2007년 2477명이던 사망자는 지난해 7724명까지 늘어났다. 올 들어서는 지금까지 5121명이 숨지는 등 사망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콜롬비아 수도 보코타 경찰들이 지난 2월9일 마약 밀매범들을 경찰서로 끌고가고 있다. 보고타 | AP연합뉴스

콜롬비아 수도 보코타 경찰들이 지난 2월9일 마약 밀매범들을 경찰서로 끌고가고 있다. 보고타 | AP연합뉴스

이 밖에도 멕시코 마약조직의 기세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미국 국경을 맞댄 지역의 도시들에는 마약조직이 공격목표로 삼고 있는 경찰관들의 명단이 나붙는가 하면 고속도로에는 군경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해줄 테니 마약 조직에 가담하라”는 현수막이 걸린다. 이들은 인터넷에 ‘살인 동영상’을 올리거나 광장에 수류탄을 던지는 방법 등으로 대중의 공포심을 조성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경쟁 마약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공권력을 이용한다. 경쟁 조직에 대한 공격을 유도하기 위해 경찰에 뇌물을 주거나 정보를 흘리는 식이다. 2005년 12월에는 연방수사국 요원 7000명 가운데 무려 1500명이 마약조직과의 유착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집권 후반부에 들어선 칼데론은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데 부담을 느끼는 형국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수차례 멕시코의 마약조직 퇴치 노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고 미국 정부의 예산도 투입됐지만 국민들의 절반 이상은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칼데론은 지난 15일 TV와 라디오를 통해 생중계된 연설을 통해 “우리의 미래가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싸울 만한 가치가 있다”며 직접 대국민설득에 나섰다.

멕시코가 마약의 유통경로라면 콜롬비아는 생산기지다.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 잎은 전 세계 유통량의 약 70%가 콜롬비아에서 생산된다. 미국은 90년대 말부터 ‘플랜 콜롬비아’라는 이름으로 콜롬비아 정부의 마약 거래조직 퇴치 노력을 돕고 있다. 그러나 99년 1657㎢였던 콜롬비아의 코카 재배 면적은 2004년 2505㎢로 오히려 늘어났다.

또 60년대부터 정부 타도를 목표로 활동해온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등 좌익 게릴라들이 마약 거래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골칫거리다. FARC는 지난 몇 년 사이 세력이 약화돼 브라질 등 해외로 거점을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에만 최소 400명의 군경을 살해하는 등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대선 결선투표 실시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각지에서 공격을 벌여 군경 20여명을 살해했다.

마약과의 전쟁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인명피해가 속출하자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일각에서는 대마초와 마리화나 등 일부 마약을 합법화해 음성적 거래를 양지로 끄집어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은 마약 공급선들을 공격하기보다 수요를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마약을 사고파는 행위는 일상적이다. 미 정부의 2005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가운데 25.4%가 학교 내에서 마약을 사거나, 공짜로 얻거나, 구매를 제안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56억달러를 ‘마약 수요 통제 예산’으로 책정해 놓았다. 예방과 치료에 들어가는 예산이 올해에 비해 각각 13%, 4% 늘어난 것이다. 미국 학교의 ‘마약 중독 예방 교육’이 중남미 마약 조직들의 입지를 좁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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