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김정일 방중을 공개한 까닭은

2010.09.01 21:32 입력 2010.09.01 23:54 수정
이대근 논설위원

[이대근칼럼]청와대가 김정일 방중을 공개한 까닭은

우리 모두 미스터리 하나를 풀어보자. 시작은 이렇다. 연합뉴스, 속보를 낸다. “<긴급> 김정일, 26일 새벽 중국 방문한 듯.” 청와대 고위 관계자, 내가 연합에 알려주었노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청와대 대변인, 김정일의 중국행 시간과 경로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북·중 정상회담은 양국의 문제이다. 아무리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해도 남한은 제3자다. 게다가 당사자가 비밀로 하고 있는 민감 사안이다. 중국이 오해할 수 있다. 북한 정보사항은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관례도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그걸 모두 무시하고 굳이 직접 공개했다. 왜 그랬을까.

이명박 정부 업적을 소개한 자료집 ‘이명박 정부 2년’의 118쪽에 실마리가 있다. ‘일관된 원칙으로 남북관계 안정적 관리.’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우선순위는 북한의 비핵화나, 남북관계 개선 혹은 한반도 평화에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일관된 원칙. 이게 최우선이다. 원칙이란 북한이 먼저 변하고 핵포기 않으면 남한은 아무것도 않고 기다린다는 입장을 말한다. 만일 그 원칙에 북한이 버티지 못하고 핵포기, 개혁·개방한다면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현실은 목격되는 바와 같다. 바로 그 원칙 때문에 북한은 핵무장을 강화, 더 위험해졌다. 남북은 군사적 충돌까지 했고, 한반도는 매우 불안하다. 이명박 정부는 왜 하나의 방법론에 불과한 원칙에 그토록 집착할까. 이명박이 원칙주의자라서? 중도·실용을 중시한다는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오히려 실용주의자라서 그렇다고 설명하는 게 더 그럴듯하다.

‘일관된 원칙’ 대북정책에 실마리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까지만 해도 비핵화, 북한 변화, 북한 주민의 삶 개선 등 모든 분야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 잘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이제는 과거 정부만큼 하기도 쉽지 않다는 걸 알 것이다. 그렇다면, 성과를 낼 수 없는 일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비효율적이다. 물론 내놓고 ‘북한과 구질구질한 대화·협상 않겠다’고 할 수는 없다. 대신 전제 조건을 제시하고 그걸 원칙으로 삼겠다고 하면 된다.

그러나 이 원칙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다음 대권을 누가 쥐든 ‘이명박 원칙’은 연기처럼 사라질 운명이라는 점이다. 다음을 기다릴 것도 없다. 벌써 여권 내부에서조차 비판과 반론에 직면해 있다. 역사도 임의로 정한 원칙을 잘 고수했는가보다는 문제를 얼마나 많이 해결했는가를 기준으로 기록할 것이다. 그건 곤란한 일이다. 원칙 때문에 무엇을 안 했다고 자랑할 것은 많지만, 했다고 내세울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책은 바꾸지 않되 그런 평판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알리바이. ‘나는 남북관계 악화에 책임이 없다’는 증거를 만드는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것이라며 제법 거창한 제안을 하면 될 것 같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볍씨만큼도 없어야 한다.

그래서 개성 공단에 있는 남측 당국자의 추방으로 불길한 징조가 나타날 때를 기다려 ‘남북 연락 사무소 개설’을 제안하고, 금강산 피격사건과 6·15 및 10·4 선언 수용 유보로 남북 경색이 본격화할 때에 맞춰 ‘전면적 대화 및 남북경협’을 촉구하고,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2차 핵실험, 유엔의 대북 제재로 핵위협이 부각될 바로 그 시점에 허를 찌르는 ‘남북간 재래식 무기감축’을 제의하고, 남북대결로 상호 적대감이 치솟고, 북한 고립으로 통일 비용이 증가할 때 ‘통일세 논의’를 제안했을 것이다. 어떤가. 매번 엉뚱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아는 척하면 대책 있어 보인다?

이번 김정일 방중도 마찬가지다. 남한·미국과는 멀어지고 점점 중국으로 기우는 북한, 신냉전으로 가는 한반도. 정부는 무엇하고 있나, 구경만 하나. 그런 질책이 쏟아지리라는 정도는 청와대도 안다. 안 봐도 비디오요, 안 들어도 귀가 따가울 것이다. 대응방법? 치고 나가기. 먼저 공개하는 것이다. 다 알고 있는 척하면 대책도 있는 듯 보일 수 있다. 남의 정상회담이지만 이러쿵저러쿵 대신 해설도 해주고 마치 자기 일처럼 호들갑을 떨면 ‘구경만 하나’ 이 소리는 좀 잦아들 수 있다. 그리고 막판에 용기를 내서 역공하는 것이다. 그게 뭐 그리 나쁜 일이냐. 김정일이 중국에 자주 가서 경제발전 볼 기회가 많으면 배우는 게 있지 않겠나.

미스터리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을 풀자고 괜한 일을 한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남의 속을 까발리는 것이 뭐 그리 좋은 일이라고. 허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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