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

2010.09.03 21:19

‘소년과 10㎝ 소녀’의 교감… 익숙한 세계 다르게 보기

‘다른 세계’에 대한 감각은 중요하다. 나 아닌 너, 우리 아닌 그들, 인간 아닌 자연과 공생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감각이다.

[리뷰]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동화는 매력이 있다. 미국의 픽사와 함께 매번 명품 수준의 애니메이션을 내놓은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 <마루 밑 아리에티>(사진)는 영국의 동화 <마루 밑 바로우어즈>를 원작으로 한다. 지브리의 좌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기획·각본을 맡았고, 요네바야시 히로마사(37)가 지브리 사상 최연소 감독으로 발탁돼 연출했다.

세상에는 인간의 물건을 ‘빌려’ 쓰며 살아가는 키 10㎝가량의 소인들이 있다. 그들의 불문율은 인간에게 들키면 지체 없이 그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것. 교외 외딴 저택에 엄마, 아빠와 사는 14살 소녀 아리에티는 인간의 물건을 빌리기 위한 첫 작업에 나선다. 그러나 마침 큰 병 때문에 수술을 앞두고 이 저택으로 휴양온 인간 소년 쇼우에게 정체를 들킨다. 쇼우는 소인들과 친해지기 위해 애쓰고 아리에티도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선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엔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익숙한 세계를 다르게 보는 재미가 있다. 인간이 일상생활에 쓰는 티슈, 각설탕, 못, 빨래집게 등의 물건이 소인들에겐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 소인에게 인간 세상은 우선 공포로 다가온다. 시계의 똑딱이는 소리가 공장 기계처럼 큰 소리로 들리고, 인간의 말소리와 문소리는 재난을 예고하는 천둥소리 같다. 흔한 물건과 소리를 반대편에서 바라보고 들어, 때론 우습게 때론 무섭게 형상화하는데 지브리는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낯설게 보기’는 모든 예술의 기본이다.

인간과 소인, 크기는 다르지만 누군가 다치기를 원치 않고 대화하고 싶어하는 마음만은 같은 두 족속이 공존할 수 있을까.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미야자키와 지브리의 대표작에서 인간과 자연(혹은 요괴)이라는 두 세계는 대체로 화해했지만 가끔 불화했다. 궁극적으로는 낙천주의에 가까웠던 지브리 아티스트들의 세계관도 이제 희망의 원동력을 잃은 걸까. <마루 밑 아리에티>의 두 세계는 지브리의 작지만 중요한 변화를 알려주는 시금석이 될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연출했다면…” 하는 가정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장쾌한 스펙터클이나 극적인 이야기 구성없이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한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의 작품목록에서 본다면 ‘소품’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소품이든 대작이든 지브리는 관객을 실망시킨 적이 거의 없다. 9일 개봉.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