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랑이 온다’

2010.12.01 18:59 입력 2012.05.11 10:18 수정
문학수 선임기자

가정폭력의 악순환 끊기… 담백한 무대·탄탄한 연기

아비는 폭력적이다. 돌이 갓 지난 딸이 밤새 울며 보채자 벽에 집어던졌다. 아이는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어미는 그 아비에게 30년 넘게 두들겨 맞으며 사는 동안, 성한 치아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만신창이가 됐다. 아들도 역시 아버지의 폭력에 무자비하게 당했다. 마당 한쪽의 감나무 기둥에 발가벗겨 묶인 채 “복날 개 패듯이” 휘두르는 아버지의 가죽 혁대에, 몽둥이에 온몸을 두들겨 맞았다. 그러다 결국 열다섯 살에 가출했다.

집 나갔던 아들이 15년 만에 돌아온다. 연극 <사랑이 온다>는 그렇게 시작한다. 한데 그는 혼자가 아니다. “나도 이 여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며 ‘여자1’을 데려온다. 착한 여자다. 그냥 착한 게 아니라 ‘대책 없이’ 착하다. 아들은 그 여자 앞에서 자신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당하며 살았는가를 ‘리액션’으로 펼쳐보인다. 폭력의 표상인 아버지는 이제 중풍에 걸려 걷지도 못하는 신세.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다가 여자1에게 갑자기 폭력을 행사한다. 마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눈앞에서 여자1을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팬다. 그러면서 외친다. “난 저 애한테 손을 대기 시작하면 미쳐요. 내 속의 짐승새끼가 환장을 한다고. 이 괴물, 짐승새끼는 멈출 줄을 몰라. 이 짐승새끼는 원래 주인을 죽이기 전엔 안 죽어. 그 주인이 먹여 키웠거든.”

[객석에서]연극 ‘사랑이 온다’

<사랑이 온다>는 끔찍한 가정폭력의 기억을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대물림되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 아울러 폭력의 희생자이자 당사자였던 아들이 그 악순환의 고리에서 힘겹게 빠져나오는 과정을 그려낸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실주의 연극. 무대미술가 하성옥이 관객의 눈앞에 펼쳐놓은 공간은 1970년대 서울 변두리의 평범한 슬래브 단독주택이다. 부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밥을 굶는 것도 아닌 소시민의 집안 풍경을 사실적으로 무대 위에 재현했다. 녹슨 철대문, 작은 방 두 개, 마당 오른쪽에 연탄광, 왼쪽은 수돗가. 거기에 마당 뒤쪽의 헐벗은 감나무가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부채질하고, 세숫대야, 고무 대야, 크고 작은 항아리 몇 개가 눈에 띈다.

지금의 40~50대에게 그것은 기억 속의 ‘우리 집’이다. 50대 초반의 극작가 배봉기는 그 숱한 기억 속에서 하필이면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괴물’을 핀셋으로 꺼냈다. “여전히 우리의 심성 깊숙이 스며 있는 폭력의 뿌리”를 더듬겠다는 의도일 것. ‘작가의 말’을 통해 털어놓고 있듯이, 그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남성성”에서 폭력의 뿌리를 찾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연극은 때때로 불편하다. 폭력의 근원을 ‘가부장적 남성성’에서 찾아내고, 아버지로부터 그 폭력성을 물려받은 아들이 여성의 고통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을 극복한다는 도식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탓이다. 남성성이 곧 ‘남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극 속에서 폭력은 남자의 전유물로 드러난다. 아버지는 다만 폭력의 표상으로만 기능할 뿐, 그 자체로서 최소한의 인간적 갈등도 내비치지 않는다. 그것은 역으로, 모든 여성을 폭력의 희생자로 몰고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결국 어머니를 비롯해 극 속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여성은 모두 희생양이다. 아울러 아들은 ‘외부의 여성성’을 통해 내면의 트라우마를 해결하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폭력성에 대한 총체적이고 사회적인 탐색이라는 측면에서 못내 아쉬움을 남긴 연극. 하지만 연출가 심재찬의 무대는 담백하고, 여섯 배우들의 연기는 대부분 탄탄하다. 박경근, 길해연, 황정민, 김수현, 이소영, 이태린 출연. 오는 5일까지, 서강대 메리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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