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도는 한국 인권시계

2011.06.01 20:57

얼마 전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일일교사 부탁을 받고 교단에 섰다. 머리도 기르고 싶어하고, 미니스커트도 입고 싶어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1970~80년대 풍속도를 보여주면 호기심이 생길 것 같아 당시 신문기사와 사진을 가져갔다. 아니나 다를까, 장발 단속에 걸린 어른들이 머리를 깎이는 사진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어른들이 머리 좀 길렀다고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머리카락을 잘리는 모습을 본 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잣대로 무릎과 치마 사이 길이를 재는 미니스커트 단속 사진을 본 여학생들은 어이없어했다.

아이들이 우스워하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한날한시에 모여 퍼포먼스를 하는 것을 ‘플래시몹’이라고 하는데, 당시 전 국민이 오후 6시에 멈춰서서 부동자세로 국기를 바라보는 ‘국기에 대한 경례’도 아이들 눈에는 플래시몹이었다. 그 시절 정부는 ‘전 국민 모닝콜’도 실시했다. 매달 정부가 하루를 정해 도시는 물론 농촌마을에서까지 기상시간에 맞춰 사이렌이나 ‘새마을 노래’를 틀어댔고, 주민들은 부스스한 눈으로 나와 대청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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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년 전 한국은 해외토픽에 나올 만한 인권 후진국이었다. 인권의 잣대로 보면 아이들도 코웃음을 칠 만했다. 머리 길이, 치마 길이까지 정부가 통제하겠다고 나섰으니 인권이란 말을 붙이기조차 민망한 수준이었다. 언론·출판의 자유도 제한됐다. 정부를 비판할 경우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붙잡혀가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숱한 사람들이 목숨까지 희생하며 벌인 민주화운동 덕에 한국은 아시아에서 인권국가의 롤 모델이 됐다. 이것은 초고속 경제성장보다 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한국의 인권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내일(3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한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고서가 발표된다. 안타깝게도 내용은 “한국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 견해를 표현하는 개인에 대한 사법처리와 박해가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의 보수적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도 2011년 보고서에서 한국을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시켰다. 2006년에는 196개국 중 31위였으나 2011년에는 70위로 떨어졌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의 인권상황은 참담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사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같은 정치·사회적 사건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도 인권의 후퇴를 피부로 느끼고 있을 정도다. 방사능비가 온다는 문자를 보냈다는 이유로 시민들은 경찰의 수사를 받기도 했다. 공공기관에 대한 디도스 공격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에 이의를 제기할 때 정부는 유언비어 유포로 엄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허위사실 유포자를 처벌한다는 전기통신기본법 47조가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았는데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있다. 신고만 하면 가능한 집회와 시위는 사실상 허가제에 가까울 정도로 변질돼가고 있다. 경찰은 교통 불편 등 갖가지 이유로 집회 금지를 남발한다.

인권이란 잣대로 보면 한국은 지금 위기상황임에 분명하다. 인권에 대한 정부 인식은 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과 별로 다를 바 없다. 11월이면 국가인권위원회가 10돌을 맞는다. 하지만 유엔인권이사회 등 해외 인권단체들로부터 받은 평가를 놓고 보면 2011년은 ‘인권 수치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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