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밟기

2011.11.01 20:51
손홍규|소설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들추다가 혹은 벽장이나 책장 구석에서 오래된 책을 꺼내 펼쳤다가 뜻밖의 책갈피를 만나기도 한다. 바싹 마른 네잎 클로버일 때도 있고 아기 손처럼 앙증맞은 단풍잎일 때도 있다. 내 책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책갈피를 꽂아둔 기억이 없을 때도 있고 한참을 걸터듬어 본 뒤에야 어떤 사연이 담긴 것이었는지를 떠올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그것이 내 책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라면 나는 기꺼이 즐거운 공상에 빠지곤 한다. 코팅을 한 경우도 있지만 날것 그대로를 갈피에 묻어둔 경우도 있어 조심스레 손가락 끝으로 잡아 들어올리면 가볍고도 찬란한 추억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물이든 추억이 깃든 사물에서는 경건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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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을 타 반들반들해진 오래된 목제 가구의 손잡이거나 옛집의 기둥이거나 누군가의 숨결과 손길이 화인처럼 남은 사물들에서 삶을 통째로 느낀다. 하물며 책이라면 말해 더 무엇할까. 시집이거나 소설책이거나 혹은 딱딱한 전문서적이거나 상관없이 그런 책갈피를 발견하게 되면 그 순간 책은 추억의 책으로 바뀐다. 그 추억에서는 사람의 향기나 난다. 그이가 의도했거나 의도하지 않았거나 그이는 나뭇잎 한 장을 갈피에 묻어두는 순간, 책을 읽던 순간까지 그이를 이루었던 모든 것을 함께 끼워두는 것이다. 슬퍼서거나 기뻐서거나 책갈피에는 독서하던 사람의 시선과 숨결이 배어 있다. 그래서 이처럼 가을이 깊어가고 노란 은행잎이나 붉은 단풍잎이 바람에 굴러다니는 걸 보게 되면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반드시 그런 낙엽 가운데 하나를 집어올려 겨드랑이에 낀 책을 펼치고 거기에 끼워놓을 듯만 해 조심스레 발을 골라 디디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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