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과학, 부정의 과학

2012.01.01 21:01
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인류 역사에서 오늘의 과학이 등장한 것은 불과 300여년 전 일이다. 그 당시 과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근대적인 그릇된 편견들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준 합리적인 사고의 전형이었다. 단순히 유용성을 넘어 세계관, 가치관, 인간관의 변화를 가져온, 그래서 인간에게 새로운 깨우침을 가져다 준 근본적이고 새로운 것이었다. 과학은 변화와 혁신을 의미하는 근대성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과학은 불과 300여년 만에 오늘날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인간 문명을 창조하였다. 과학을 통해 인간은 멸종 동물을 복제하고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신물질을 제조하며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먼 우주를 항해하는 등, 더 이상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자연을 정복하거나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과학은 각종 문명의 이기들을 만들어 내 인간의 삶을 매우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과학기술이 없는 현대사회는 그래서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과학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 부작용 또한 곳곳에서 나타나거나 예측되고 있다. 과학기술에 기초한 산업화가 만들어 낸 온갖 종류의 환경 파괴,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및 심각한 기후변화, 원자력 이용에 따른 방사능오염 및 피폭 가능성, 생명체 조작 또는 복제가 가져올 수 있는 생명 질서에 대한 교란 가능성, 인공 나노물질의 독성 때문에 발생하는 인체 및 환경에 대한 위해 가능성, 다양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한 개인 정보의 유출 및 새로운 전자감시사회의 출현 가능성 등등. 솔직히 우리가 누리는 혜택이 커지는 만큼 동전의 양면처럼 그에 따르는 위험 또한 커진다.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창조의 측면과 부정적인 파괴의 측면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속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과학 오디세이]긍정의 과학, 부정의 과학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과학의 긍정적인 성과 부분은 매우 강조되고 있는 반면,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대체로 언급조차 미미하다는 점이다. 20세기에 있었던 현대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수많은 비판들은 바로 이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한 예로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은 과학기술이 성공을 거둘수록 그 발전의 위험 또한 더욱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으며, 따라서 과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원천이기도 하지만 다른 문제들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하였다. 근대성에 기초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지속적으로 산출하였고, 이제 우리는 이러한 위험들에 직면하여 산업사회를 반성적으로 고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근대적인 합리성에서 태동한 산업사회를 어떻게 반성적으로 성찰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과학이 지닌 합리적 속성이 인간에게 진정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과학이 지닌 합리적 특성을 실용적 가치를 생산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적인 내용의 합리성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과학은 실용적 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에 내재된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성찰적 혹은 비판적 내용의 합리성으로서도 작동할 수 있다.

가령 20세기의 우주물리학은 우주의 본성, 그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물질들의 세계, 그리고 그러한 물질들을 지배하는 조화로운 자연법칙의 존재를 밝혀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우주의 조화로운 질서를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또한 20세기의 생태학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복잡한 상호 연관과 조화를 보여 준다. 이는 인간에게 하나의 완전한 개체로 고립된 채 존재할 수 없으며 무수한 존재자들과의 조화로운 관계 그물망하에서 살아가고, 인간 스스로가 이러한 관계 질서를 깨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간 자신의 생존 환경을 스스로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이처럼 우주와 생명의 전체적 연관성에 대한 현대과학의 이해는 인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설정, 곧 세계관, 인간관, 가치관의 새로운 변화를 요청한다.

한편 생명복제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것이 가져올 긍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 동등하게 이루어져야 생명복제에 대한 올바른 윤리적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비록 과학이 인간 사회에 많은 윤리적 문제들을 야기하였지만, 역설적으로 올바른 윤리적 선택을 위해서 과학이 필요하다. 실용적 가치를 생산하는 ‘긍정의 과학’만이 아니라, 초래될 부정적 결과들을 분석하여 실용성의 논리가 갖는 위험성을 알리는 ‘부정의 과학’이 모두 필요하다. ‘두 과학’의 상보적인 관계를 통한 발전이 있을 때, 현대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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