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부러진 화살’인가… 억만장자 사형판결에 ‘무권유죄’ 사법부 불신

2012.02.07 19:27 입력 2012.02.09 15:44 수정
글 홍인표 http://inpyohong.khan.kr

중국에서는 요즘 여성 기업인이며 백만장자이던 우잉(吳英·29·사진) 전 저장(浙江)성 번써(本色)그룹 회장의 사형 판결로 시끄럽다.

그는 2007년 금융 사기혐의로 체포됐다. 7억7000만위안(약 1386억원)을 불법으로 모았다는 이유에서다. 우잉은 올해 1월18일 2심인 저장성 고등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체포된 지 5년 만의 일이다. 변호사는 “사업을 위해 돈을 빌렸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변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잉은 이제 최고법원 승인만 떨어지면 형장에서 목숨을 잃을 판이다.

그런데 네티즌이나 신흥 중산층 사이에선 우잉에 대한 동정론이 일고 있다. 중국은 연간 6000명 이상을 사형집행하고 있는 것으로 국제 인권단체들이 추정하고 있을 뿐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당국이 발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e-세상 속 이 세상]중국판 ‘부러진 화살’인가… 억만장자 사형판결에 ‘무권유죄’ 사법부 불신

우잉에 대한 동정 여론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 더 나아가 공산당에 대한 불만이다. 사람을 죽이지도 않은 경제범죄에 극형을 선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중국 형법을 1979년 처음 만들었을 때 사형 판결을 할 수 있는 범죄는 모두 28개였다. 이 중 절반이 반혁명죄였다. 그러다가 1980~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경제범죄도 사형 판결을 할 수 있는 범죄에 포함됐다. 법적으로는 우잉에게 얼마든지 사형판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기 피해자 11명은 모두 우잉의 친지·친척인데, 그들은 우잉의 처벌을 원치 않으며 우잉도 빚을 갚으려고 애를 썼다. 당국도 경제범에 대한 사형선고를 줄이는 추세다. 더군다나 대다수 부패 관리나 살인범조차도 사형집행유예 판결을 받는 마당이다. ‘사형집행유예’는 중국에만 있는 제도다. 사형 판결을 내리되 집행을 2년 유예했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해주는 것이다. 우잉에 대한 동정론의 밑바닥에는 ‘나랏돈을 삼킨 당 간부들은 사형시키지 않으면서 경제인을 사형시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우잉이 조사 과정에서 뇌물을 준 관리들을 발설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공무원들이 줄줄이 다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우잉이 얼른 죽기를 공무원들이 바란다는 것이다.

중국은 3월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 초안에서는 최고법원이 하급법원의 사형선고를 승인할 때 피고를 반드시 면담하도록 했다. 하지만 개정안 2차 시안에서 ‘반드시’가 ‘할 수도 있다’로 바뀌어 인권단체들을 실망시켰다.

또 하나는 중국의 고질적인 금융체제에 대한 불신이다. 중국의 민간기업들, 특히 중소기업들엔 은행 문턱이 너무 높다. 그래서 민간 기업인들은 알음알음 친지들에게 고리대를 빌려 사업자금으로 쓸 수밖에 없다. 우잉도 그런 경우다. 그가 가장 비싸게 꾼 돈은 연리 72%의 살인적인 이자였다.

우잉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15세의 어린 나이로 미장원을 꾸려갔다. 그러다가 친지로부터 돈을 빌려 건물도 사고 부동산 투자를 해서 저장성의 큰손이 됐다. 물론 현지 지방 관리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었다. 문제는 그가 20대에 억만장자 반열에 오르면서 불거졌다. 모두들 어떻게 그처럼 많은 돈을 모았느냐에 관심을 가졌고, 사정 당국도 조사에 나섰다. 결국 그가 남의 돈을 빌려 부동산 투자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경찰은 불법 금융사기 혐의를 적용해 잡아들였다. 우잉이 체포되면서 사업체는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렸다. 그가 사업을 망쳐 두 손을 든 것도 아니고, 경찰에 잡히지만 않았다면 계속 사업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된 것이다.

우잉 동정론은 지금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장 큰 문제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다. 중국은 유전무죄이면서 동시에 유권무죄다. 권력이 있으면 면죄부를 받는 게 다반사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 국유은행의 횡포도 만만찮다. 은행 문턱이 높아 민간 중소기업들은 고리대나 금융사기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저장성(성도 항저우)은 민간경제가 가장 활발한 곳이다. 어렸을 때부터 기업에 취직하기보다는 창업에 관심이 많다. 10대 때 창업하면 돈은 어디서 가져오나. 친지나 친척에게 돈을 빌려 장사를 하고, 대박이 나면 갚아주는 방식으로 민간경제가 운영된다. 당국이 문제를 삼으면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다.

우잉의 사형 여부는 개인의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지만 중국 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 글 홍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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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경향신문 국제부장으로, 8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중국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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