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보도 원칙은 뭔가요”… “편 가르지 않고 시시비비 가릴 것”

2012.02.21 20:35 입력 2012.02.21 21:21 수정
이인숙 기자

경향신문 편집국장과 팔로어와의 대화

지난 1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2층 카페 ‘효재처럼’. 경향신문 트위터 팔로어 30여명과 이대근 편집국장이 마주보고 앉았다. 경향신문이 팔로어 10만 돌파를 앞두고 마련한 자리다. 따뜻한 격려부터 날선 지적까지, 이날 오간 솔직한 대화의 전문을 소개한다.

채성욱 : ‘나는 꼼수다(나꼼수)’,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 ‘뉴스타파’ 등 대체언론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이 상황에서 메이저 언론의 역할은 뭐라고 보나요.

이대근 편집국장(이하 이대근) : 이 세상에서 당파성은 불가피합니다. 정당, 언론 모두 특정 가치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당파성을 띠면 언론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뉴욕타임스, 르몽드 모두 당파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언론들은 일관성이 없는 당파성을 지녔죠. 어떤 당이 날치기하면 폭거고 어떤 당이 하면 의회주의라고 하죠. 그렇다 보니 불신이 커지는 겁니다. ‘대안언론’의 인기도 이런 데서 비롯된 거죠. 대안언론이 기성언론과 대립하는 건 아닙니다. 언론의 신뢰가 바닥인 상황에서 기성언론은 믿지 않고 대안언론에 더 열광하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김진원 :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했는데 경향의 필살기가 있다면.

경향신문 트위터 팔로어들이 지난 1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2층 ‘효재처럼’에서 이대근 편집국장(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경향신문 트위터 팔로어들이 지난 1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2층 ‘효재처럼’에서 이대근 편집국장(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이대근 : 온라인 미디어가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보수언론들이 종편이라는 올드미디어에 올인해 길을 잃고 있는 사이에 우린 미래를 향해 준비하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다른 필살기는 신문의 본령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신문은 사양사업이라고 하고 영향력도 작아졌다고 하죠. 하지만 신문의 힘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참가자 : 경향신문은 진보진영의 잘못을 호되게 비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경향신문의 평소 보도원칙과 선거보도 원칙은 뭔가요.

이대근 : ‘시시비비’입니다. 시시하죠. 그러나 이건 한국 언론이 잃어버린 기본입니다. 따질 것은 따져야 합니다. 편 가르지 않습니다. 이 당연한 것을 어렵게 하는 조건이 많습니다. 현실적 이익, 각자의 이념 등…. 경향은 선거의 해에 시시비비를 완벽히 해내겠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죠. 이쪽을 비판하면 저쪽은 환호하고 다른쪽에서는 공격합니다. 매번 논란이고 시비에 휘말립니다. 피말립니다. 그래도 해보겠습니다. 경향에는 좌우 모두 담겨야 합니다. 제 구호는 ‘보수로부터도 존경받는 신문이 되자’입니다. 오피니언 면에 진보는 물론 극우라는 사람의 의견도 과감히 싣고 있습니다.

이날 대화는 트위터로도 중계됐다.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팔로어들도 트위터로 질문을 보내며 대화에 참여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박원순 서울시장 자제의 병역문제에 대한 경향의 의견은 무엇인가요.(iib***)’

이대근 : 곽 교육감이 진보 교육감으로서 개혁적 교육정책을 계속 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저희 노선에 맞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개인적 잘못은 잘못대로 비판해야죠.

참가자 : 최근 ‘나꼼수’ 비키니 논란 때문에 공격을 당했는데.

이대근 :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 혹은 기성 언론의 잘못 때문에 많은 이들이 ‘나꼼수’에 열광하고 저도 개인적으로 지지합니다. 경향은 이걸 비판한 적이 없습니다. ‘나꼼수’가 한 여러 사안 중 하나를 비판한 거죠.

김진원 : 진보진영은 그간 도덕성을 강조해 온 탓에 작은 흠결만 나와도 더 심하게 두들겨 맞는 것 같아요. 진보가 도덕성 대신 정책으로만 차별성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닌지.

이대근 : 정치는 도덕적인 게 아닙니다. 갈등 속에서 어느 한 쪽을 버리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하죠. 특히 진보정당들이 고생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느냐고 시민을 탓하곤 하는데 그럴 거라면 정치하지 말고 시민운동을 해야죠. 구체적인 노선과 정책을 갖고, 어떻게 사람들의 지지를 모아 권력을 잡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에 찬성한 국회의원 151명의 사진을 실은 1면 등 파격적 1면 편집도 화제에 빠지지 않았다.

김기희 : 국회의원 151명의 사진이 실린 1면을 보고 놀랐습니다. 기자 윤리강령을 실었던 일도 그렇고요. 1면의 탄생과정이 궁금합니다.

이대근 : 처음에는 6면에 들어있던 겁니다. 6면에 놓고보니 ‘그림이 예쁜데 너무 안쪽에 있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1면에 내보니까 더 예뻐요. 그렇게 나오게 됐습니다. 보통 기사를 같이 쓰는데 그날은 사진만 실었지요. 그러려면 무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실패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야죠. 이건 당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겁니다. ‘우리 생각은 이거다’라고 표현한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사실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기록을 남기면서 경향신문의 가치도 보여주는 겁니다. 제가 아침회의에서 강조하는 1면 원칙은 사람들이 생각할 거리가 되거나 또는 논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 것을 싣자는 겁니다. 매일 파격은 아니어도 새로운 걸 담고 싶습니다.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고 따라가기 급급하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다’ 등 날카로운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 국장은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더 능력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참가자 : 한겨레, 경향은 정권 비판의 도가 지나쳐서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대근 : 비판을 위한 비판은 물립니다. 세상에 비판할 게 정권뿐이겠습니까? MB정권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면 이 또한 세상을 왜곡하는 거죠. 그간 경향이 다양한 세상을 보지 않고 그것만 담았으면 비판 받아야죠.

김희태 : 경향은 이슈를 선점하지 못합니다. ‘나꼼수’ 멤버 몇 명이 정권의 비리를 들춰내는 동안 경향은 뭘했나요. 보수언론이 선점한 이슈를 다른 시각으로 쓰는 방식으로 묻어가다보니 ‘늘 비판만 하는 반정부 매체’라는 부정적 시각이 생깁니다.

이대근 : 정권의 부패, 비리를 파헤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견제·감시 기능입니다. 능력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더 키우겠습니다.

참가자 : 삼성 비리와 부도덕을 보도할 수 있나요. 자본으로부터 편집권을 독립시키는 장치는 있는지요.

이대근 : 경향은 자본이나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입니다. 다만 경영상 자립은 완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사도 기업이기 때문에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고 한계도 있고요. 이런 한계에도 시시비비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신문을 만듭니다. 물론 경향신문도 비판의 대상이 되죠. 편집국 내에서 토론이 이뤄지고, 기자들이 고치고 감시합니다.

강동경 : 김상봉 교수의 삼성 비판 칼럼을 싣지 않았다가 기자들의 비판으로 사과문을 실었는데요. 스스로 광고주를 의식해서 싣지 않은 건지, 아니면 실제로 압박이 왔던 것인지요.

이대근 : 그 건은 사과를 드렸습니다. 편집국 안에서 토론해서 입장을 정했고 그 입장대로 가고 있고요. 대기업의 압력을 적절히 견제하고, 우리가 써야할 것을 쓴다는 원칙을 잘 지켜나가고 있고, 그런 일은 되풀이되지 않았습니다.

참가자 : 언론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대근 : 기자는 ‘최초의 목격자’입니다. 최전선에서 다양한 사건의 목격자가 되고, 자기가 보고 해석한 걸로 세상에 전파합니다. 기자는 자기가 제대로 보는 건지, 스스로 회의하고 의심해야 합니다. 좋은 기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이게 전부다’라는 게 깨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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