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잔혹극, 국회가 끝내라

2012.03.01 21:33 입력 2012.03.01 21:40 수정
반이정 | 미술평론가

지난해 12월. 층간소음을 다룬 상이한 사건 셋이 있었다. 파주의 아파트 거주자가 아홉달간 소음으로 갈등을 빚던 위층 주민의 머리를 낫으로 내려쳤다는 보도. 같은 달 MBC 시사프로그램 <2580>도 층간소음을 다뤄 반향이 컸다.

아파트 입주자 카페 게시판에는 ‘입주 직전 위층에 아이가 있는지 살피고 싶다’는 한탄어린 고백부터, ‘위층에 조명이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떨리기 시작한다’는 분노 서린 사연, 건물 구조상 일방적 가해의 조건을 극복하는 다채로운 보복방법(저음 스피커를 천장에 부착해 위층에 진동을 전달하는 반격) 등이 올라 공감대를 얻었다.

또 같은 달 어느 사운드 아티스트가 ‘층간소음극’이라는 제목으로 관객을 단 1명씩만 방 안에 입장시켜, 사전에 채집 가공한 헛기침 소리, 열창 여닫는 소리, 망치질 소리, 진공청소기 돌아가는 소리 등 각종 층간소음들을 청취하게 만드는 괴이한 상황극도 열렸다.

[문화와 세상]층간소음 잔혹극, 국회가 끝내라

현대미술의 상상력, 여기까지 왔다! 서울 방문길에 마주친 웅장한 아파트 단지에 충격 먹고, 한국 아파트를 논문 주제로 정한 프랑스 지리학자가 있다. 그녀에 따르면 한국의 아파트 열풍은 건설시장과 부동산 투기가 활황을 맞은 198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독재자와 밀착한 토건권력은 주거보다 투자 목적형 아파트 문화, 중산층 진입을 표상하는 주거문화를 공동체에 내면화시켰다. 하지만 걸핏하면 시공사와 입주자 간 부실공사 송사를 빚는 한국 아닌가. 거주자를 ‘층층 쌓아올리는’ 아파트 구조와 졸속 공사가 만났으니 층간소음 소동은 자연스러운 귀결이기 쉽다.

아파트는 아니지만 임대 중인 주택 위층 소음에 필자도 애를 먹었다. 집주인을 통해 수차례 주의를 줬지만 구제불능. 연일 시간대 불문하고 만들어내는 위층의 ‘악의 없는’ 소음의 정체는 도무지 확인불가다. 귀가가 염려스러울 지경으로 스트레스가 쌓였고, 귀마개를 착용하는 날도 잦아 결국 방을 뺐다. 극에 달한 스트레스로 소음의 요인을 제거하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는 인식에 이른다. 우리가 왕왕 접하는 층간소음 폭행 사건의 심리적 배경일 게다.

층간소음 사건은 예외 없이 폭행 가해자인 아래층이 사법처리되는 것으로 정리되는 걸 본다. 현행법에 따르면 그리 해석되는지 몰라도 수개월 이상 일방적으로 입은 소음 피해는 고려되지 않은 사법적 판단이다. 맥락이 누락된 처벌은 부당하다. 아래층 주민의 폭력은 지속적인 소음 폭력에 대한 정당방위의 성격이 커서다. 일방적 피해를 보는 아래층 주민의 분통, 나는 진정 이해한다. 소음의 크기와 빈도가 문제는 아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소음에 내면화된 긴장과 초조가 핵심이니까.

‘층층 거주’와 ‘날림공사’가 토착화된 한국 토건문화에서 층간소음은 피할 수 없는 파생상품이 되었다. 건물 구조상 일방적으로 불리한 아래층이 사법적 불이익까지 떠안는 처지를 더는 방치하지 말자. 소음 측정 결과 정상치를 넘으면(50㏈ 이상이면 문제란다), 위층 거주자에게 강제퇴거나 고액 손해보상 책임을 지우고, 나아가 시공사와 시행사도 연대책임을 지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층간소음이 아파트 거주 문화와 부실공사가 일반화된 한국적 삶에 정착된 이상, 개인끼리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공적 개입이 요구되는 사태로 비화되었다. 거주자끼리 내용증명 발송하고 낫질 잔혹극 벌이는 사태를 국가가 더는 방치하지 말길!

19대 국회에선 관련 입법 안건을 제출하는 국회의원이 나타나길! 보수, 진보 너나없이 복지 공약의 후광 뒤에서 유권자를 호객하느라 애쓰던데, 토건권력도 견제하고 공동체의 안전을 보장하는 아주 사소한 복지정책을 세워라. 해서 소모적 층간소음 잔혹극을 이젠 종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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