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 비키니’ 후일담

2012.05.10 21:51 입력 2012.05.11 00:22 수정
정희진 | 여성학 강사

내가 자주 들르는 여성주의와 관련한 인터넷 카페가 있다. 모임의 성격상 구성원 거의가 여성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내 주변에는 고양이와 반려하는 독신 여성이 많은데 이 카페도 그렇다. 얼마 전 카페의 메인 페이지에 고양이 사진이 등장했다. 그러자 익명 게시판에 ‘저기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저는 고양이가 무섭습니다. 첫 화면에 고양이가 나오니 위축되네요. 죄송하지만 다른 화면으로 바꿔주세요.” 운영자와 성원들의 답글이 이어졌다.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바로 교체하겠습니다” “익명 게시판에 쓰신 것이 조금 걸리네요, 우리 카페가 이런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운 분위기인가요? 그렇다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고양이 때문에 카페 접근권이 제한된다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등의 의견이었다.

[정희진의 낯선 사이]‘나꼼수 비키니’ 후일담

이번에는 반대 상황이다. 며칠 전 ‘진짜’ 카페에 커피 원두를 사러갔는데 고양이 달력이 있었다. 원두를 분쇄하는 동안 12장의 예쁜 고양이 사진과 매달 적힌 고양이 애호가들의 문구를 읽다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다음 생에 쥐로 태어날 것이다”라는 글귀와 마주쳤다. 순간 섬뜩했다. 자신이 고양이를 좋아하면 그만이지 싫어하는 사람을 적대해, 고양이 먹이로 간주하는 이 저주에 가까운 사고방식은 무엇인가? 고양이 사랑을 방해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생각을 할까?

타인의 취향에 대한 상반된 태도, 두 가지 고양이 관련 경험은 다른 사건을 연상시켰다. 최근 이른바 ‘나꼼수 비키니’ 사건에서 <나꼼수> 측이 사과하지 않다가, 그들의 행동 관행이 총선에서 태풍급 이슈로 발전했다. ‘막말’ 파동이 그것이다. 나는 일반적인 분석처럼 <나꼼수>가 “야당 15석을 날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 때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스캔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는 그들보다 표현상, 인식론상으로 더 심한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책임이 있다면 야권의 대응능력이지 <나꼼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평소에 이런 문제에 <나꼼수>가 약간의 감수성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턱없이 보수 여론의 볼모로 ‘희생’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여성의 비키니와 고양이 사진은 의미가 다르다. 여성은 술, 담배, 개와 동격이 아니다. 인간의 몸을 소비, ‘눈요기’하는 것을 반려동물, 기호식품과 같은 수준으로 다루는 상황 자체가 여성 모욕적이다. 고양이를 ‘좋아한다’ ‘싫어한다’는 개인 취향일 수 있지만 ‘나는 담배를 좋아하듯이 여성의 벗은 몸을 좋아한다’는 정치적 편견, 사회적 투쟁 대상이다. 이는 취향으로 옹호, 양해, 묵인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과와 교정, 때로는 법적 처벌이 필요한 인권 침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비슷한 사건에서 많은 경우 남성들의 태도는 이렇다. “난 그런 사진이 좋은데 넌 왜 내 권리를 침해하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 네가 틀렸다” “내가 싫으면 네가 나가라”….

삶에서 취향의 영역은 생각보다 좁다. 나를 포함해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적 행위가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모든 행위가 구조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이를 계속 문제제기하는 집단이 있다면 삶은 불편하고 피로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 달리 취향과 올바름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정치 구조적 문제를 취향으로 포장할 자원이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들조차 언제든 소수자가 될 수 있고 타인의 취향이 자신에게 인권 침해로 돌아올 수 있다. 기호와 윤리의 기준이 모호한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성원들에게 서로 다른 위치성(position)을 부여한다. 그 위치가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입장과 이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여성은 대머리나 키 작은 남성에 대한 비호감을 취향이라고 주장할지 몰라도, 남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남성(문화)에게 인권 의식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모욕당한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단순한 기호라고 주장하기 전에 5분은 생각해야 한다.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해서. 여성의 몸은 남성 사회가 주장하는 취향의 가장 약한 고리다. 그만큼 ‘계몽’이 멀었다는 이야기다. 이로 인해 손해, 망신, 경우에 따라 사법처리 대상이 되는 집단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임을 알아야 한다.

비키니 사건에 대한 여성들의 항의는 여성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꼼수>와 우리 사회를 위한 ‘큰 정치’였다. 문제제기의 기본 취지는 타인을 위한 조언이다. 그러나 <나꼼수> 측은 “사소한 일로 (정권교체 같은) 큰일 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다”는 식으로 약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짜증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나꼼수>의 “닥치고 정권교체”를 지지하는 시민들 중에는 ‘비키니’ ‘막말’이 대선 때 터지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큰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큰일을 망치지 않을까 염려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