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새 기온 2도 오른 몽골, 호수 1200개·강 900개가 말라버렸다

2013.08.28 22:34 입력 2013.08.28 23:03 수정

닥쳐온 지구촌 재앙 ‘사막화’… 몽골 대초원 르포

“내가 젊었을 때는 어딜 가나 풀이 무릎 넘게까지 무성했어. 요즘은 풀이 발목에도 안 와. 그나마 높이 자라는 풀은 가축이 못 먹는 것뿐이야.”

평생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남쪽 투브아이막 에르덴솜 대초원에서 살아온 젠드 할머니(83)는 20~30년 새 달라진 초원을 보며 근심을 털어놨다. 지난 20일 오후였다. 그는 게르(몽골의 전통 천막) 안에서 만난 기자에게 “(울란바토르에서 35㎞쯤 떨어진) 여기는 원래 풀이 많기로 이름나서 근방에서 가축들을 먹이러 몰려들던 곳”이라며 “아직은 다행히 가축들이 먹고살 정도의 풀은 있지만 점점 동물들이 못 먹는 풀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곧 눈으로 목격했다. 울란바토르에서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남쪽 만달고비 지역으로 가는 길에서 본 대초원들은 여기저기 흙이 드러나 보였다. 젠드 할머니가 사는 에르덴솜 대초원도 그 중 하나였다. 사막으로 바뀌어가는 땅에는 사막화 지표식물로 불리는 하르간(좀골담초)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자라나 있었다. 가시가 많고 잎이 날카로운 하르간은 바로 젠드 할머니가 말한 “가축들이 먹지 못하는 풀”이다.

몽골 서쪽 바양노르솜의 한 호수가 지속적인 기온 상승으로 인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주민들은 과거 풀이 보이는 곳까지 호수였으며 호수 크기가 5분의 1가량으로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몽골 서쪽 바양노르솜의 한 호수가 지속적인 기온 상승으로 인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주민들은 과거 풀이 보이는 곳까지 호수였으며 호수 크기가 5분의 1가량으로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 가축이 뜯던 드넓은 초지는 쓸모없는 쇠뜨기풀이 점령
2002, 2010년 이상한파에 가축몰살 유목민 생활파탄

▲ 고향 떠난 환경난민 30만 울란바토르서 빈민 생활
꿈속에선 초원을 그리지만… 국토 90%가 사막화 전망

에르덴솜을 지나 돈드고비아이막 사인차강솜까지 280㎞를 달리는 동안 대초원에서는 또 다른 사막화 지표식물인 데르스(쇠뜨기)도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하르간과 데르스는 땅에서 물을 흡수하는 힘이 강해 주변의 다른 식물을 죽이고 사막화를 촉진시키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수십년 새 급변한 몽골 초원의 풍경은 가축들의 생활양식도 바꾸어놓았다. 주민들은 가축들이 먹을 풀이 부족해지자 먹이를 찾아다니는 시간이 크게 늘어났다고 전했다. 울란바토르 서쪽 바양노르에서 숲 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는 비정부기구(NGO) 푸른아시아의 박찬영 영농팀장은 “전에는 가축들이 하루 1~2시간만 풀을 뜯어먹었는데 풀이 부족해지다보니 이제는 하루 종일 풀을 뜯어먹어야 할 때도 많다”며 “물 있는 곳이 드물어지다보니 가축들에게 물을 이틀에 한 번만 마시게 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예전엔 강이나 호수가 가까이 있어서 한두 시간이면 물을 먹이고 돌아올 수 있었지만, 강과 호수가 말라붙어 물을 먹이고 오는 데 한나절이 걸린다는 것이다. 매일 물을 먹이러 가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뜻이다. 바양노르는 주변에 호수가 많아 이름 자체가 ‘풍요롭다’ ‘많다’는 뜻의 바양과 ‘호수’라는 뜻의 노르를 합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과 가축의 갈증을 넉넉히 씻어주던 거대한 담수호는 온데간데없이 쪼그라들어 있다.

목축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만도 몽골의 초원에선 축복이었다. 몽골을 덮친 폭설과 이상한파로 2002년에는 1000만여마리, 2010년에는 600만여마리의 가축들이 몰사했다. 유목민들의 삶은 한순간에 파탄났다. 몽골 역사상 처음 일어난 이 재앙에 대해 몽골인들은 2002년의 경우를 차강조드, 2010년은 하르조드라고 부른다. 차강은 ‘희다’, 하르는 ‘검다’, 조드는 ‘재앙’이라는 뜻이다. 2002년의 재앙은 초원을 덮은 하얀 폭설로 인해 먹이를 구하지 못한 가축들이 굶어죽었던 탓에 차강조드라는 이름이 붙었고, 8년 후의 하르조드는 봄철에 일어난 이상한파로 인해 가축들이 먹을 풀과 마실 물을 찾지 못해 죽어갔던 탓에 붙여졌다.

가축들이 전 재산이었던 유목민들이 두 차례의 조드 때 먹고살 길이 없어지면서 환경난민으로 전락한 일도 부지기수다. 당시 고향을 등진 환경난민은 30만명가량으로 집계됐다. 몽골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다. 당초 몽골 정부는 울란바토르에 50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도시계획을 세워놓았다. 하지만 대초원 곳곳에서 몰려들어 울란바토르 교외에 게르와 판잣집을 짓고 사는 환경난민들로 인해 울란바토르 인구는 1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볼강히식(31)은 2002년 차강조드 때 기르던 가축의 대부분을 잃고 무작정 동생이 살고 있는 울란바토르로 떠났다. 그는 “지금도 눈은 보기만 해도 무섭다”고 진저리를 쳤다. 11년 전 조드가 덮쳐올 당시 그는 말 400마리와 소 150마리, 염소 600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하지만 폭설이 내린 후 남은 가축은 말 100마리와 소 4마리, 염소 200마리에 불과했다. 가축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똘똘 뭉친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몽골 초원에서는 이렇게 수십, 수백마리가 한데 모여 떼죽음을 당한 가축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볼강히식은 울란바토르에서 동생에게 의지해 살면서 다행히 일자리도 잡았지만, 지금은 다시 초원을 잊지 못하고 돌아와 가축을 기르며 살고 있다. 그는 “9월만 돼도 겨울이 올 것이 걱정된다”며 “지금은 미리 건초도 준비하고, 가축들 덮어줄 천도 준비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과거엔 건초나 천을 준비하지 않고 초원에 방치해도 가축들이 알아서 겨울을 견뎌냈지만 조드가 온 뒤로는 가축들이 지낼 우리를 지어주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40년 새 기온 2도 오른 몽골, 호수 1200개·강 900개가 말라버렸다

이처럼 몽골 사람과 가축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은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약 2도의 기온 상승이다. 지구의 기온이 지난 40년간 0.7도 상승하는 사이 몽골의 기온은 1.92도 올라갔다. 기온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영구적인 동토의 물은 녹아내리고, 모래폭풍이 늘어나 사막화가 급속도로 진행됐으며, 호수와 강은 말라붙었다. 이 기간에 몽골에서는 1200개 이상의 호수가 사라졌다. 900여개의 강도 말라버렸다. 이미 사막이 되었거나 사막화하고 있는 땅은 몽골 땅의 46%에서 78%로 늘어났다. 초지는 20~30%가량 급감했고, 식물 종의 4분의 3이 멸종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몽골 국토의 90%가 사막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몽골 북부의 비옥한 곡창지대를 제외하면 몽골 전체가 사막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몽골에서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은 단순히 온난화 탓만은 아니다. 연간 200㎜ 정도로 사막보다 비가 적게 내렸던 몽골의 강수량이 100~150㎜ 정도로 줄어든 것은 사막화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다. 바다와 접하는 곳이 없는 내륙지대라서 일단 올라간 기온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도 사막화를 부추기고 있다.

몽골 정부와 과학자들은 이러한 자연적 요인과 더불어 유목산업의 구조 변화, 관광객 증가 등이 사막화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꼽고 있다.

몽골 정부는 땅에 나있는 풀만 뜯어먹는 양이나 말, 소와는 달리 뿌리까지 캐먹는 염소가 늘어난 것도 초원을 황폐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염소 한 마리에서 극히 적은 양이 생산되는 고급 옷감 캐시미어 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너도나도 염소 사육을 늘렸고, 전통적으로 양을 많이 기르던 구조에서 염소를 더 많이 기르는 구조로 변했다는 것이다. 현재는 염소 사육두수가 늘어나 캐시미어 가격이 떨어지면서 유목민들이 얻는 이익도 크게 줄어든 상태다.

무분별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몽골 초원 탐방도 사막화를 당기고 있다. 5일 동안 둘러본 몽골의 초원 곳곳에는 관광객들이 자동차를 타고 멋대로 달리면서 생겨난 바퀴자국이 여기저기 황톳빛 길을 만들어놓았다. 관광객을 태운 차량들이 앞서 다른 차량이 간 길로 달리지 않고 새로운 길을 내면서 달린 탓이다. 대초원에는 더 이상 풀이 자랄 수 없는 황폐화된 ‘사설 도로’가 20여개씩 뚫린 곳도 있다.

몽골 환경녹색개발부 바트볼트 국제협력국장은 “몽골의 사막화는 온난화가 1차 원인이지만 과도한 목축, 광산 개발, 관광 등 인위적인 원인도 크다”며 “나무 심기와 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통해 다양한 사막화 방지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몽골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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