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정신건강 영향평가’ 연구책임자 백종우 교수
완치 후 후유증 ‘롱 코비드’ 숙제
영국 등은 관련 TF에 클리닉도
‘찾아가는 정신건강서비스’ 위해
정부·지자체·병원 등 발맞춰야
아픔은 기록돼야 새 정책 나와
투병 사례 모집에 적극 참여를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면서 우리 국민 상당수가 재난 피해자가 됐습니다. 해외 선진국들의 코로나19 가이드라인을 보면 3분의 1 이상이 정신건강서비스인데요, 이제 우리 정부도 국민들의 심리 방역에 나서야 합니다.”
코로나19 확산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우울·불안을 느끼는 증상이 팽배하다. 코로나19로 생겨난 우울감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를 넘어 급기야 화가 나는 ‘코로나 레드’, 좌절과 절망·참담함을 느끼는 ‘코로나 블랙’ 등 여러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함께 ‘코로나19로 인한 정신건강 및 사회심리 영향평가’를 실시하는 경희대병원·서울대병원 연구팀의 연구책임자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 12일 인터뷰에서 “일반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자살을 생각해본 자살경향성이 17%나 됐는데, 이는 피해자 조사 집단에서나 나오는 심각한 수치”라고 밝혔다.
또한 중증도 이상의 우울감은 29%로 코로나19 유행 전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고, 불안과 외상 후 스트레스, 불면 등 다른 항목들도 과거보다 크게 나빠졌다. 백 교수는 “최근 정신건강 조사를 한 나라들 모두 고위험 우울증군이 20%가 넘고 자살경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특히 취업이 힘들어진 20~30대, 비정규직 서비스업에 종사하거나 양육부담이 큰 여성들, 장애인·만성질환자 등 취약계층의 정신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정신건강 악화는 곧 특정집단에 대한 혐오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백 교수는 “자연재해·인재와 달리 감염재난은 전 국민적·전 지구적인 영향을 끼치는 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상대하기에 주변을 의심하게 된다”며 “그러다보니 혐오가 나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실 혐오는 재난에 대처하는 정상반응이기도 합니다. 더러운 것을 보면 피하는 것은 과거 중요한 생존요소였어요.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오히려 피해자나 희생자들을 혐오해 그들이 2, 3차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한국의 경우 역설적으로 방역이 잘돼 확진자가 적은 점이 확진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어요. 방역수칙에 어긋난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확진자들은 숨고, 바이러스는 더 잘 전파되는 것이죠.”
사정이 이렇다보니 백 교수의 연구팀 역시 격리자 및 확진자를 대상으로 한 세부연구에서 사례자들이 모집되지 않아 현재 애를 먹고 있다.
백 교수는 “확진자·격리자들의 경우 자신들을 드러내기 어렵겠지만 연구과정에서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장된다”며 “팬데믹이 심한 해외에선 확진자가 코로나19 투병과정을 공개하는 등 정보 공유에 적극 나서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픔은 기록돼야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희망이 생긴다. 그들이 적극 참여해서 우리 사회가 한번 더 성장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감염 후유증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완치되더라도 감염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피로·두통·불면증·우울·미각상실 등 다양한 후유증을 겪는다. 심지어 완치 6개월 후에 갑자기 후유증이 나타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가리켜 백 교수는 ‘롱 코비드’라고 표현했다.
그는 “확진자가 많은 나라에선 이제 ‘롱 코비드’가 중요한 이슈가 됐다. 병이 낫더라도 실제론 나은 상태가 아닌 것”이라며 “그러다보니 불안과 우울증상을 심화시켜 사회 적응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미국·캐나다·영국 등은 현재 ‘롱 코비드’에 대한 태스크포스를 꾸렸고, 영국의 경우 전국에 관련 클리닉을 60~70여개 마련해 운영 중이다.
“코로나19는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 공격합니다. 홀로 사는 노인들, 자영업자 및 비정규직들, 장애인·만성질환자, 돌봄 부담이 큰 여성들처럼요. 선진국들의 경우 이들을 위한 ‘찾아가는 서비스’가 이미 있고 코로나 위기가 오면서 이 서비스들을 비대면으로만 바꾸면 됐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서비스 자체가 아직 확립돼 있지 않습니다. 해법은 이미 코로나19가 보여주고 있어요. 마치 코로나19 감염자를 추적 관찰하듯이 취약계층을 찾아 그들에게 맞는 여러 서비스를 정부와 지자체, 지역센터, 병원 등이 함께 지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