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족의 탄생

2023.12.10 20:42

최근 경기 평택에서 발생한 ‘대리모 사건’이 온라인상에서 적잖이 이슈가 되고 있다. 평택시의 출생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 과정에서 생사가 불분명한 아동이 있어 경찰이 수사한 결과 대리모를 통해 낳은 아이로 밝혀진 것이다. 아이는 친부와 별 탈 없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친부는 총 3명의 아이를 대리모들을 통해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리모는 국내법상 불법이지만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친부가 애국자 아니냐”라며 생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부 국가처럼 대리모를 합법화하자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0.7명이라는 통계청 발표와 맞물려 저출생의 한 해법으로까지 등장한 ‘웃픈’ 현실의 단면이다. 지난주 뉴욕타임스는 칼럼을 통해 “한국이 현재 합계출산율을 유지한다면 한 세대만 지나도 200명이 70명으로 줄어든다”며 “14세기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를 넘어설 것”이라는 다소 섬뜩한 경고까지 날렸다.

저출생 위기 경보는 기실 20여년 전부터 본격화됐다. 2002년 합계출산율 1.18명으로 초저출생의 기준인 1.3명 미만을 처음 기록한 후 2018년엔 0.97명으로 떨어졌다. 인구 1000만명 이상 국가들 중 20년 넘게 초저출생을 기록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의 출생률이 유례없는 속도로 낮아지는 배경에 대해선 인구학의 석학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등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도 ‘높은 경쟁 압력’과 ‘고용·주거·양육 불안’을 그 이유로 꼽았다. 콜먼 교수는 여기에 더해 “가부장적인 가족문화, 낮은 성평등 의식, 비혼 동거문화와 출산에 대한 폐쇄성” 등 한국적인 원인도 지목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혼인 건수 감소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 대부분 혼인관계에서 출산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비혼 동거문화가 보편화되고, 혼외 출생 자녀에 대해서도 똑같은 지원을 하면서 혼외 출생아 비중이 높다. 프랑스 61%, 아이슬란드 69% 등이며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도 43%에 이른다. 반면 한국은 2.3%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저출산고령위원회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대다수 일반 시민들도 이제는 동거 등 다양한 가족을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어 의미가 크다.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의 비중이 2012년 29.8%에서 2022년 39.6%로 확대되는 등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치권 및 정부의 제도적 수용성은 더디기만 하다. 여성가족부는 2021년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법률혼과 혼인 제도에 한정된 가족 개념을 넘어 가족 다양성 인정,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금지 등을 포함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부 보수단체의 반발이 이어지자 현 정부 들어 모두 없던 일이 됐다. 정의당이 발의한 생활동반자법·혼인평등법·비혼출산지원법 등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유럽보다 보수적인 미국에서조차 미혼 부모와 함께 사는 18세 이하 자녀는 1960년대 13%에서 현재 32%로 급증했다. 미 인구조사국은 2020년부터 동성 커플 여부를 묻는 항목을 인구 설문조사에 추가하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저출생 해법 중 하나로 지원체계를 부모·법률혼 중심에서 ‘아이 중심’으로 전환하고 다양한 가정 형태에 대한 제도를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베네수엘라의 텔레노벨라(일일연속극)가 원작인 미국 드라마 <제인 더 버진>에는 놀랄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이 등장한다. 주인공 제인의 엄마는 고교 때 출산한 비혼모이고, 제인은 의사 실수로 인공수정이 돼 가정 있는 남성의 아이를 갖게 된다. 제인의 생부는 뒤늦게 제인의 존재를 알고서 제인의 엄마와 결혼하지만 또 다른 여성과 인공수정을 통해 딸을 낳는 등 한국적 정서에서 보면 막장의 끝을 달리는 내용이 가득하다. 그런데도 인물들은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더불어 살아간다.

미국 메인대 사회학 교수인 에이미 블랙스톤은 “가족을 이루는 방식이 하나뿐이라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 폐기됐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가족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말했다. 과학 발전과 사회 환경에 따라 가족 형태와 개념도 변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언제쯤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볼 수 있을까.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