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대법원, 동성커플·비혼남성 대리모 허용

2021.07.12 15:54 입력 2021.07.12 17:15 수정

이스라엘의 한 동성 커플이 11일(현지시간) 텔아비브의 자택에서 딸과 함께 앉아 있다. 텔아비브|AP연합뉴스

이스라엘의 한 동성 커플이 11일(현지시간) 텔아비브의 자택에서 딸과 함께 앉아 있다. 텔아비브|AP연합뉴스

이스라엘 대법원이 동성 커플과 비혼 남성의 대리모 출산 계약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현행법은 이성 커플과 비혼 여성의 대리모 계약만 허용하고 있는데, 동성 커플과 비혼 남성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11일(현지시간) “더는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 의회에 6개월 안에 동성 커플과 비혼 남성에게도 대리모 계약을 허용하는 대체 입법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스라엘 대리모법은 이성 커플과 비혼 여성에게만 국내 대리모 계약을 허용한다. 이 때문에 동성 커플과 비혼 남성은 외국에서 편법으로 대리모를 구해왔다. 외국에서 대리모 출산 계약을 하면 비용이 10만달러(1억1500만원) 이상으로 오를 수 있다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이 전했다. 국내에서 계약할 때보다 두 배가 넘는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지난해 2월에도 동성 커플과 비혼 남성의 대리모 계약을 금지하는 대리모법이 위법이라면서 1년의 대체 입법 마련 기간을 뒀다. 당시 대법원은 현행법이 “평등권과 부모가 될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정부는 입법 실현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법 개정을 미뤄왔다.

여야 반응은 엇갈렸다. 집권 여당인 개혁 성향 정당 예시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 외무장관은 “부모가 되는 것은 기본권”이라며 “도덕적, 사회적으로 적절한 결정”이라고 환영했다. 중도 성향 청백당의 베니 간츠 국방 장관도 “남자든 여자든, 이성애자든 성소수자(LGBT)든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초정통파 유대주의 정당인 샤스당의 아리에 데리 대표는 “국가의 유대인 정체성에 대한 중대한 타격”이라고 비판했다. 독실한 시오니스트당의 베잘렐 스모트리치 대표는 “이번 판결이 대리모를 목적으로 하는 여성 인신매매를 합법화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성소수자들은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동성 커플인 야니브 레비(32)는 이날 하레츠 인터뷰에서 “대법원이 의미 있는 단계를 밟았다”고 평가했다. 레비 커플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리모 계약을 체결하려다 사기를 당해 10만세켈(3500만원)을 잃은 바 있다.

■대리모 계약 둘러싼 윤리적 논란도

전 세계에서 대리모 계약을 허용하는 국가는 소수다. 대리모에게 수수료를 내는 ‘상업적 대리모’를 허용하는 곳은 미국의 일부 주와 인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이다. 영국, 덴마크, 벨기에 등은 대리모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거나, 합리적인 비용만 지급하는 이른바 ‘이타적 대리모’ 계약만 허용한다.

상업적 대리모 시장은 주로 저소득 국가에서 발달했다. 인도 델리에 있는 사마 여성건강연구소는 2012년 인도의 대리모 시장 규모를 연간 4억달러(4587억원)로 추산했다. 전국 3000개의 난임 클리닉에서 대리모를 관리하고 있다. 인도 구자라트주 케다 지역에 사는 세 아이의 엄마 사비타 바사바(34)는 지난달 타임지 인터뷰에서 10대 딸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리모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리모 계약에 대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한 방법”이라며 “밤낮으로 일해도 이런 돈을 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2018년에만 대리모 2만5000여명이 출산했다. 대리모 서비스 회사가 받는 평균 수수료는 3400만원~9500만원 정도다. 우크라이나의 대리모 서비스 회사 바이오텍스콤은 아기 성별을 선택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 회사가 밝힌 기본 대리모 계약 체결 비용은 3만9900유로(5430만원)인데, 아기 성별 선택을 두 번 시도하는 경우 4만9900유로(6790만원), 무제한 시도할 경우 64900유로(8830만원)로 비용이 올랐다.

대리모에 대한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법률은 없다. 이 때문에 대리모가 낳은 아기가 무국적자가 되는 등 다양한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BBC가 지적했다. 대리모가 마음을 바꿔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한다면 법적 다툼의 소지도 있다. 일례로 인도에서는 대리모 비용을 낸 ‘예정 부모’를 법적 부모로 간주하지만, 영국에서는 대리모를 법적 어머니로 간주한다.

빈곤 국가들이 빈곤 여성을 착취하는 “아기 공장”이 됐다는 윤리적 비판도 나온다. 미콜라 쿨레바 우크라이나 대통령 직속 아동권리국장은 지난달 ‘이머징 유럽’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대리모 산업의 3분의 2가 불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정 부모와 대리모 모두 대리모 서비스 회사에 과도한 비용을 낼 수도 있다. 일례로 예정 부모가 대리모 서비스 회사에 내는 돈은 4만7000달러(약 5400만원)가 넘지만, 정작 인도의 대리모가 받는 돈은 6200달러(710만원) 정도라고 타임지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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