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께

2024.06.16 20:35 입력 2024.06.16 20:38 수정

선생님,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은 자연재해와 전쟁 따위로 숱한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사시는 나라에는 미움도 원망도 탐욕도 자연재해도 전쟁도 없겠지요?

선생님께서 2005년 5월10일에 쓴 유언장을 다시 읽어 봅니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중략)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선생님,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환생할 뜻을 미루셔야 할 듯합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나라마다 힘을 키워 서로 잘 먹고 잘 살아 보겠다며 악과 기를 쓰며 헐뜯고 사납게 다투고 있습니다. 단 하루라도 전쟁이 끊이질 않고, 사람이 사람을 속이고 괴롭히고 죽이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갈수록 우리 삶의 마지막 목적지인 ‘용서와 사랑’마저 아득히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모두 편리함과 탐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인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지난 5월17일,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 만든 권정생문학상 수상식 날에, 수상 소감으로 선생님이 남기고 가신 시 ‘밭 한 뙈기’를 읽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선생님 뜻을 따라 살려는 농부들 모임 때, 이 시를 읽고 마음을 나누어 왔습니다. “(앞부분 생략)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그날, 이 시를 읽으며 스스로 묻고 또 물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두의 것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는지?’

선생님 이름이 새겨진 이 상은 ‘온 세상 모두의 것’입니다. 더구나 선생님 뜻을 따라 자연에서 배우고 깨달으며 스스로 가난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 저는 1996년부터 생명공동체운동을 하면서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마다 선생님이 쓴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었습니다. 서른아홉 나이에, 밑줄을 치며 읽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 책을 오늘 다시 읽으며 스스로 다독거립니다.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 가난한 자 곁에서 함께 가난해지는 것뿐이다.” “한국에선 농사꾼이야말로 영육을 함께 살리는 하느님의 일꾼일 것이다. 정말 똥짐 지는 목회자는 없는 것일까? 예수님이 지금 한국에 오신다면 십자가 대신 똥짐을 지실지도 모른다.”

선생님께서 쓴 글을 읽으면서 가난한 살림살이가 자랑스러웠고, 스스로 가난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먹었습니다. 어느덧 농부 나이로 열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산밭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식물이 서로 자리를 내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다투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마다 다른 생김새와 빛깔과 무늬로, 때가 되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씨를 맺습니다. 농부가 되고 나서야 식물들은 자기가 살아가는 땅을 ‘내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달라는 선생님 말씀, 내내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지켜봐 주시고, 그 길로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서정홍 산골 농부

서정홍 산골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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