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된 공동체 정원들

2021.07.21 03:00 입력 2021.07.21 03:03 수정

걷고 싶을 땐 집 근처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으로 간다. 작은 정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큰 단지로, 각각의 정원에는 크고 작은 텃밭과 꽃밭 그리고 창고로 쓰이는 작은 집들이 있다. 정원의 주인들은 보통 주말에 나와 작물과 꽃을 심고 가꾼다. 주중은 오는 이들이 별로 없어 조용하지만, 주말과 날씨가 화창한 날엔 정원마다 분주해진다.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흘러나온다. 4월엔 벚꽃과 라일락, 5월엔 수국과 유채꽃, 6월엔 장미와 양귀비와 접시꽃 등이 만발한다. 달마다 다른 꽃이 피는 정원을 구경하는 일은 평화로우면서도 신비롭다. 길고 긴 록다운으로 갈 곳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곳은 탁 트인 위로의 공간이자 힐링의 정원이었다.

“우리도 이곳에 정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청해볼까?” 잔디밭 테이블 의자에 앉아 해를 쬐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앵무새처럼 말을 되풀이했다.

이동미 여행작가

이동미 여행작가

독일의 클라인가르텐은 역사가 오래됐다. 집 근처에 있는 본홀머 정원 단지만 해도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 작은 정원들은 개인 소유가 아니다. 주정부, 베를린시, 철도국 등의 땅을 저렴한 비용으로 개인들이 장기 임대해 가꾸는 일종의 공동체 정원이다. 이 공동체 정원을 운영하는 협회가 도시마다 있고, 단지마다 소규모 커뮤니티 협회가 또 따로 있다. 독일에는 이런 클라인가르텐이 100만개 넘게 있으며 정원을 운영하는 이들도 400만명에 이른다.

이 공동체 정원이 100년 넘게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좁은 아파트 건물에 사는 많은 보통 사람들이 저마다 정원을 갖고 가꿈으로써 정신적·육체적 휴식을 얻고, 자연을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아이들에게는 자연의 놀이터를 선사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노인들에게는 자연을 통한 일종의 귀농 경험과 커뮤니티 소속감도 준다. 또 이 대단위 공동체 정원들은 도시의 기온을 3~4도씩 낮추는 환경 기능을 하는데, 우리는 산책할 때마다 이 온도 차를 피부로 실감하곤 한다. 도시가 새로운 주거지를 짓는 데에만 몰두하지 않고, 이 넉넉한 부지를 교외로 내몰지 않고, 여전히 베를린 도심 안에 놔두고 100년 넘게 지켜오는 부분은 부럽고 감동적이다.

정원은 협회를 통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문제는 대기자가 너무 많다는 것. 임대받은 사람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 정원을 가질 수 있고, 정해진 임대 기간도 없다. 고령의 부모가 직계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도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일단 정원을 내놓는 회원이 거의 없는 데다, 내놓는다 해도 대기자가 많아 기본 4년은 기다려야 순서가 옵니다. 그나마 지금은 대기자 받는 것도 잠시 중단한 상태예요.”

순서가 돼도 아이가 있는 젊은 가족이나 난민에게 먼저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다. 정원을 갖는 것도 어렵지만 가꾸는 데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고 노력이 까다롭게 든다. 4년을 기다리면 순서가 올까? 오늘도 나는 정원협회에서 운영하는 단지 내 비어가든으로 노트북을 싸 들고 간다. 모두가 이웃처럼 어김없이 맥주 한잔을 하러 오고, 어울려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 사람들 사이에서 맥주를 마신다. 이 정겨운 비어가든이라도 올 수 있는 게 어디냐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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