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오래 쓰고 기후 위기 막자” 수리권 논의 확산

2021.10.05 15:32 입력 2021.10.05 16:52 수정

전자제품을 수리해서 쓸 권리를 주장하는 유럽의 수리권 단체(Right to Repair Europe)에서 만든 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전자제품을 수리해서 쓸 권리를 주장하는 유럽의 수리권 단체(Right to Repair Europe)에서 만든 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최근 세계 각국에서 스마트폰을 수리해 오랫동안 쓸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면 전자제품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과 폐기물에 의한 환경 오염을 크게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유럽 정부는 이미 소비자의 수리권을 명시한 법령을 만들었고 한국에서도 국회 논의가 시작됐다.

스마트폰이 2년만 되면 고장이 난다거나 수리비가 비싸게 책정돼 새 제품을 사도록 유인하는 데 대한 비판은 예전에도 있었다. 제조사의 ‘계획된 노후화’란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애플은 소수의 공인된 수리센터에만 자사 부품을 공급하고, 사설 센터에서 수리할 경우 품질 보증을 거부하는 등 폐쇄적인 수리 정책으로 불만을 샀다.

이런 불만이 본격적으로 수리권 확대 논의로 진전된 것은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때문이다. 유럽환경국은 “유럽에서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 수명을 1년 연장하면 자동차 200만대의 운행을 중지한 결과와 같다”고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난 4일 미국 CNN은 애플이 아이폰13 1대를 만드는데 광물 채굴부터 정제, 부품 생산, 조립, 배송까지 총 64㎏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인 12억5000만대를 곱하면 매년 스마트폰 구입으로 약 8000만t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할 수 있다.

비소·납·수은 등 중금속이 포함된 폐기물 처리도 문제다. 블룸버그그린에 따르면 2019년 스마트폰을 포함한 전자제품 폐기물은 5360만t인데 그 중 오염을 줄이는 방식으로 재활용된 것은 17%에 불과하다. 전자제품 공급망 문제를 연구해 온 콜 스트래튼 인디애나대 강사는 CNN에 “가장 친환경적인 스마트폰은 우리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오래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미국 CNN 보도에서 탄소 배출을 야기하는 스마트폰 생산 과정을 설명한 그림. CNN 홈페이지 캡처

지난 4일 미국 CNN 보도에서 탄소 배출을 야기하는 스마트폰 생산 과정을 설명한 그림. CNN 홈페이지 캡처

혁신을 담았기 때문에 저가 수리가 쉽지 않다는 스마트폰 업체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배터리 일체형으로 바뀌고 방수·방진 기능이 강해지면서 스마트폰에 특수 접착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수리를 하려고 한번 뜯으면 다시 붙이기 쉽지 않다. 공간 효율을 위해 부품 여러개를 하나의 모듈로 만드는데, 부품 하나만 고장나도 모듈 전체를 바꿔야 한다. 애플은 제품 보안과 안정적인 수리 등을 이유로 폐쇄적인 수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의 수리권을 주장하는 단체에선 ‘그렇다 하더라도 제조사가 부품과 매뉴얼을 외부에 개방해 중소 업체에서도 쉽게 수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수리권협회의 게이 고든 번 사무총장은 CNN에 “우리가 낸 기기 값엔 제품을 수리할 권리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전자제품 수리 시장을 활성화해야 제조업체의 독과점이 깨지고 소비자에게 이익이라는 경제 논리도 동원된다.

미국·유럽 정부는 올해 들어 이러한 수리권 주장을 법령에 반영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공급자가 수리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명시한 ‘미국 경제의 경쟁 촉진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실상 애플의 폐쇄적인 정책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유럽연합은 지난 3월 10년간 부품을 보관하고 수리 설명서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수리권 보장법을 시행했다. 현재 세탁기, 냉장고, TV 등에 적용 중인데 향후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대상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도 김상희 국회 부의장이 지난달 ‘소비자 수리권 보장법’(단말기 유통법 개정안)을 발의해 법안 논의에 착수했다. 휴대전화 제조사가 합리적 이유 없이 수리에 필요한 부품, 장비 등의 공급·판매를 거절하거나 지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정명령이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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