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넘어가는 ‘코골이’ 습관 아닌 질병입니다

2024.04.27 06:00 입력 2024.04.27 06:01 수정

숨막힐까 조마조마 ‘수면무호흡증’

숨 넘어가는 ‘코골이’ 습관 아닌 질병입니다

직장인 이모씨(35)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남편과의 ‘수면 이혼’을 단행한 적이 있다. 한창 신혼생활의 단꿈에 젖어있을 시기였지만 밤새 남편이 심하게 코고는 소리에 자다 깨기 일쑤여서 과감히 각방을 쓰고 따로 자기로 했다. 이씨는 “남편이 깊은 잠에 들수록 코고는 소리가 점차 고조되다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갑자기 조용해진다”며 “얼마 후 ‘컥’ 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숨을 쉬는데, 듣는 내가 ‘저러다 숨막혀 죽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해서 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이씨는 남편의 수면 상태가 걱정돼 병원의 수면클리닉까지 같이 방문했다. 남편은 하룻밤 동안 수면다원검사를 받은 뒤 ‘수면무호흡증’ 진단을 받고 돌아왔다. 의사의 처방대로 잠을 자는 동안 나타나는 무호흡 증상을 막아주는 양압기를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남편은 수면의 질이 좋아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씨는 “남편이 살을 좀 뺀 뒤로는 양압기 없이 낮잠 잘 때 코는 골아도 숨이 막히는 증상은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수면무호흡 장애는 잠을 자다가 다양한 이유로 호흡이 멈추는 증상을 보이는데, 그중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질환이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이다.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은 공기를 호흡하는 길 주변의 근육들이 수면 중 이완되면서 기도를 막아 10초 이상 호흡이 멈추는 증상을 보인다. 이 경우 몸 안으로 산소를 제대로 공급하기 어려워지면서 저산소증이 나타날 수 있고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주 깨게 된다. 수면무호흡 장애 중엔 중추성 수면무호흡증이나 수면 관련 호흡기능 저하 증후군 같은 질환도 포함되지만 보통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이 가장 대표적으로 꼽힌다.

호흡 길 주변 근육이 기도 막는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이 대부분
몸속 산소부족, 각종 합병 유발

옆으로 자거나 꾸준한 운동 효과
심하면 양압기·구강 내 장치 활용

민현진 중앙대병원 수면무호흡클리닉 이비인후과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중앙대병원 제공

민현진 중앙대병원 수면무호흡클리닉 이비인후과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중앙대병원 제공

수면무호흡증은 숙면을 방해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클 뿐만 아니라, 코골이로 인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숙면까지 방해할 수 있다. 특히 수면무호흡증의 영향을 간과해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은 전체 인구 중 1~2% 정도가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실제 국내에서 이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2022년 기준 11만3224명에 불과했다. 전체 환자 중 약 10% 정도만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민현진 중앙대병원 수면무호흡클리닉 이비인후과 교수는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으로 실제 병원을 찾는 환자는 극히 일부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며 “일반적으로 코고는 현상을 생리적인 습관으로 여겨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코골이로 인한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은 질병으로 간주되며 방치할 경우 상황에 따라 심각한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을 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보통 코를 고는 증상은 잠자는 동안 이완된 근육들이 늘어지면서 이 구간을 지나가는 공기가 주변 점막을 진동시키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공기가 아예 지날 수 없게 막힐 경우 호흡이 반복적으로 멈췄다가 다시 재개되는 무호흡 증상을 보인다. 수면무호흡증은 이런 무호흡을 비롯해 저호흡, 호흡을 재개하기 위해 깨어나는 각성 등의 증상(호흡 이벤트)이 수면다원검사에서 시간당 5회 이상 나타나면서 낮 동안의 졸음이나 불면증, 수면 중 질식감이나 헐떡거림, 고혈압·기분장애·인지장애·심혈관질환 등이 있을 때 진단할 수 있다. 또는 호흡 이벤트가 시간당 15회 이상만 나타나도 진단된다.

윤지은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과 교수는 “수면무호흡증과 코골이를 같은 질환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면무호흡증과 코골이는 다르다”며 “코골이는 수면 중 상기도 일부의 조직이 진동을 일으켜 소음이 발생하는 것이고, 수면무호흡증은 상기도 폐쇄를 동반해 산소 저하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코골이를 넘어 호흡이 멈추는 지경에 이르면 몸속의 산소가 부족해진다. 만성적인 산소 부족 상태는 심장과 폐에 부담을 가중시켜 고혈압과 동맥경화, 심부전 등의 심각한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숨을 다시 쉬기 위해 뇌가 각성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수면의 질이 낮아져 낮에 졸리고 피곤하며 집중력이 떨어지고 불면증이나 우울감이 생길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자는 동안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고 뇌에 쌓이게 해서 치매 유발 위험성도 높인다. 여기에 수면 부족으로 혈당을 조절하는 기능까지 떨어져 당뇨병 증상이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

잠을 푹 자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몸 곳곳에서 심각한 질환을 유발할 위험을 높이는 셈이다. 민현진 교수는 “수면무호흡증 환자의 심혈관질환의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로 인한 돌연사 위험도 있을 수 있다”며 “스트레스와 우울증, 불안장애, 성기능장애, 소화기질환뿐 아니라 암 발생 위험까지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간과하지 말고 전문의를 찾아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면무호흡증을 일으키는 원인 또한 다양하다. 턱이 비정상적으로 작거나 목이 굵은 경우, 편도선이나 아데노이드 조직이 비대해져 상기도 공간이 좁아지는 경우 호흡이 원활하지 못할 수 있다. 비만으로 목 부위에 지방이 축적되거나, 진정작용이 있는 약물을 섭취할 경우, 그리고 흡연과 음주 등도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기 위해선 우선 수면방법이나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좋다. 똑바로 누워 자는 대신 옆으로 누워 자고, 비만이라면 체중을 줄이고 규칙적인 운동으로 근육과 폐활량을 늘리면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보존적인 방법으로 개선이 어려운 경우도 상당하므로 양압기를 활용하는 ‘지속적상기도양압술’ 치료를 받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방법은 수면 중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코를 통해 압력을 가진 공기를 불어 넣어 주는 방식이다. 피부 자극, 입마름, 코막힘, 공기누출 등 가벼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지만 치명적이지는 않다. 그밖의 치료법으로는 기도 확보를 도와주는 구강 내 장치를 착용하는 방법도 있다.

윤지은 교수는 “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지 않으면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고 낮아진 수면 질 때문에 졸음운전으로 큰 인명피해를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며 “흡연 및 알코올 섭취는 상기도 염증을 유발해 수면무호흡증을 악화시키므로 금연과 금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면무호흡증이 미치는 악영향

일상생활의 어려움: 낮 동안 심한 졸림과 피로감, 집중력·기억력 감소, 성욕 감퇴, 만성적인 두통
심폐혈관 질환 유발 위험: 고혈압, 동맥경화, 심부전, 부정맥, 심근경색, 복부 대동맥류, 폐질환, 당뇨병 합병증 뇌와 정신 건강 위협: 뇌졸중, 치매, 우울증, 불안장애, 불면증, 스트레스
성장기 청소년 건강·학업 문제: 성장 발달 지연, 주의력 결핍, 학업 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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