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돋보기

산책 중 반려견 다툼, 목줄 당기던 견주 손가락 물었다면?

2021.11.12 15:20 입력 2021.11.12 19:15 수정

일러스트 김상민

일러스트 김상민

산책 중 반려견이 다른 반려견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다가 말리던 견주의 손가락이 물렸다. 하지만 개는 목줄을 차고 있었다. 상대방 견주를 처벌할 수 있을까.

지난해 7월22일 오후 6시쯤 서울 관악구의 한 공원에서 남성 A씨는 생후 2개월된 삽살개를 산책시키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같은 시각 고교생 B군도 반려견을 산책시키다 A씨와 마주쳤다. A씨와 B군의 개는 서로를 향해 짖으며 달려들었다. 양측 견주 모두 목줄을 잡아당겼지만, 두 개 사이의 거리는 좁혀졌고 결국 B군의 오른쪽 검지 손가락이 개에 물렸다. 검찰은 반려견의 목줄을 제대로 붙잡고 있지 않는 등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해 B군이 전치 6주의 절단상을 입었다며 A씨를 약식재판에 넘겼다.

동물보호법은 견주에게 외출시 목줄 등 안전조치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이런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다치게 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은 외출할 때 2m 이내의 목줄 또는 가슴줄을 하거나 이동장치를 해야 하며 3개월령 미만의 동물은 직접 안아서 외출할 수 있다는 예외를 뒀다.

정식 재판을 청구한 A씨는 지난 3월30일 첫 공판기일에 변호사 없이 혼자 출석해 “개의 목줄을 느슨하게 하지도 않았고, B군의 손가락을 문 건 B군의 개”라고 주장했다. 이어진 5월18일 증인신문에는 피해자인 B군이 출석했다. B군은 “손가락을 다쳐 수술까지 했지만, A씨가 합의하려는 노력도 없었고 오히려 잘못을 떠넘기고 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B군의 아버지도 법정에 함께 나와 A씨를 향해 분통을 터트렸다.

A씨도 “B군이 강아지를 제대로 붙잡지 않고 다가온 것이 원인”이라며 억울하다고 했다. 반려견 산책 중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처음이 아니라고도 했다. 이전에도 반려견들이 서로에게 달려든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A씨의 손이 물렸고, B군이 재판을 받았다.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최창훈 부장판사는 B군의 손가락을 문 것이 누구의 개였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목줄을 느슨하게 한 것만으로는 동물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며 A씨에 무죄를 선고했다. 목줄을 하지 않은 것과 목줄을 느슨하게 관리한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라는 것이다.

최 부장판사는 “목줄을 느슨하게 관리한 것을 동물보호법상 안전조치 의무 위반 조항을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시행규칙의 의무조항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형벌 규정의 정비는 원칙적으로 입법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목줄을 찬 반려견이 사람을 다치지 않게 관리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 처벌하는 것은 법을 보강해야 할 문제라는 뜻이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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