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부른 것은 인간이다.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이 이를 잘 담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의 대규모 사용,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플라스틱 제품 양산 등 인류가 저지른 일들이 지질학적 흔적을 남길 정도로 자연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후위기를 “인간이 벌인 짓”이라 말하는 것을 “불충분한 표현”이라 지적하는 학자가 있다. 심지어 그는 인권학자다.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한 인권침해 사건을 두고 ‘인간의 짓’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기후위기 역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는 관점에서 ‘기후 생태 정의’라는 개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환경위기는 곧 인권위기라는 문제의식을 담은 책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를 펴낸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61)를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조 교수는 10여년 전부터 기후·생태 문제와 인권을 연관지어 설명해왔다. 그는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를 인권의 근본적인 침해로 보고, 정의·사회불평등·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 사회가 초래한 환경악화가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공동체를 와해시키며, 이것이 촉발한 갈등과 폭력이 대규모의 인명 손실을 낳는 연쇄작용에 주목한다. 특히 환경파괴로 인한 피해가 여성, 어린이, 장애인, 저소득층, 난민, 노인 등 사회의 약한 고리에 집중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핀다.
환경파괴와 인권파괴는 함께 일어난다. 조 교수는 책에서 베트남전쟁·한국전쟁을 비롯해 생태와 인간을 함께 공격한 숱한 전쟁의 역사,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가뭄·폭염 등이 일으킨 대규모 인명 사고 등 다양한 사례를 망라한다. 그러나 가장 생생한 예시는 지금 우리 곁에 있다고 말한다. 기후변화가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코로나19를 비롯한 인수공통 감염병의 영향은 비정규직, 경력단절여성, 노인 등 약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한층 가혹하다.
조 교수는 ‘인권을 지키려면 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구를 살리려면 인권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인권위기와 환경위기의 연계가 그만큼 긴밀하다는 분석이다. 조 교수는 책에서 “생태계를 대규모로 극심하게 파괴하는 에코사이드(생태살해)와, 인간계를 대규모로 극심하게 파괴하는 제노사이드(집단살해)가 그물망처럼 연계”돼 있다면서, 그 연계의 핵심에서 ‘다양성’을 삭제하려는 인간 사회의 일원적 욕망을 찾아낸다.
조 교수는 “확장된 개념에서 에코사이드는 자연의 다양성을 없애고 사람에게 필요한 몇몇 단일 작물만 남기는 행위를, 제노사이드는 인간학살을 넘어 인간집단의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자연 개발 때문에 토착민들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가서 기존의 문화적 연결망을 잃게 되는 것 역시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연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생물도, 인간사회도 단일하게 만드는 방식의 나쁜 영향들은 결국 사회와 지구 전체를 망가뜨린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에코사이드와 제노사이드가 얽히며 벌어지는 재난 속에서 우리가 안정을 유지하려면 사회와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다양성이 사라진다면 다양한 사회집단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삶의 지혜들도 함께 사라진다”면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만 보더라도, 세상의 불편함을 볼 줄 아는 장애인의 시선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어야만 노약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접근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 소수자 집단이 주류 사회가 감각하지 못하는 억압 구조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말해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지구 환경도 못 지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논리가 그대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논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 내의 다양한 사회적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지배하지 않고 공존할 때, 인간도 자연을 지배하지 않고 생태와 공존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인권을 침해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왔다. 그렇다면 기후 생태 문제에서도 그래야만 한다. 조 교수는 “정의와 인권의 관점 없이는, 기후와 생태 문제에서의 책임 소재 역시 두루뭉술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위기를 ‘인간의 문제다’라고 뭉뚱그려 표현할 게 아니라 ‘특별한 인간집단의 문제’가 훨씬 크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컨대 지금까지 온실가스 누적치의 79%가 일찍이 산업혁명을 이룬 미국과 유럽 국가, 일본 등 선진국에서 발생했다”며 “지난해 12월 필리핀에서 태풍으로 400명 넘게 사망했는데, 실은 이들 선진국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했다.
책에서 그는 에코사이드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도록 에코사이드를 국제 범죄로 격상하려는 시도와, 환경을 파괴한 기업 또는 정부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처벌하려는 움직임을 자세히 소개한다.
조 교수는 “자연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인간부터 살고 봐야지” 식의 논리는 더 이상 성립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인권 개념에 대한 과감한 변화가 없으면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던 인권까지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서 “인권 문제를 더 구조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조 교수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초과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회-생태 전환’이다. 그는 단순히 ‘탄소중립’만 외치는 기술관료주의적 접근법에 반대한다. 그는 “예컨대 재생에너지로 전기톱을 충전해 실컷 벌목하는 건 괜찮냐는 의문이다. 탄소만 줄이면 예전과 변함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해법 제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제시한 ‘도넛 경제 모델’이나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과 함께 최고임금도 제한하자는 ‘소비의 회랑’ 등의 개념을 소개하며 구조적 전환을 위한 “거대한 대화를 촉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위기를 상상하는 방식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위기는 할리우드 디스토피아 영화처럼 어느 날 갑자기 멸망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습니다. 속으로는 곪더라도 겉으로는 멀쩡한 사회가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덧 코로나19에 익숙해졌지만, 사회적 취약계층의 삶은 훨씬 더 힘들어진 것처럼요. 지금의 위기를 보지 못하면, 앞으로도 위기를 보지 못할 것이란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