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천국~ 노래자랑”

2022.06.08 14:20 입력 2022.06.09 15:18 수정

‘국민 MC’ 향년 95세로 별세

6·25 때 홀로 월남한 실향민

송해(1927~2022)

송해(1927~2022)

한국 방송 역사의 산증인이자 ‘일요일의 남자’로 불렸던 송해씨가 8일 별세했다. 항년 95세. 고인은 30년 이상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동안 온갖 향토 음식을 맛보고 아마추어 출연자와 울고 웃으며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다.

경찰과 의료계에 따르면 송씨는 이날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소방당국은 오전 8시19분쯤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송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한다.

올해 들어 송씨는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건강상 이유로 KBS 1TV <전국노래자랑> 하차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제작진과 스튜디오 녹화로 방송에 계속 참여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었다.

고인은 1927년 황해도 재령군 출신으로 본명은 송복희다. 어렸을 때부터 개구쟁이로 유명했다는 그는 1949년 황해도 해주예술전문학교에 입학해 성악을 공부했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홀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당시 통신병으로 근무하며 1953년 7월27일 휴전 메시지를 타전했다는 이야기는 그가 여러 방송을 통해 이야기하며 유명해졌다.

1955년 ‘창공악극단’이란 이름의 순회 악단에서 가수와 MC 활동을 병행했다. MBC <웃으면 복이와요> 등에서 구봉서·배삼룡·박시명씨 등과 함께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다. 1974년부터 KBS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를 17년간 진행했다. 1980년대 이후엔 주로 MC로 활약했다.

■만인의 오빠이자 형님…‘딩동댕’ 인생이었습니다

KBS 1TV <전국노래자랑> 경북 의성군 편에서 송해씨(오른쪽)가 출연자의 말에 파안대소하고 있다. 송해씨는 특유의 친근함으로 어린이부터 100세 노인까지 출연한 이 프로그램을 매끄럽게 진행했다. KBS 화면 갈무리

KBS 1TV <전국노래자랑> 경북 의성군 편에서 송해씨(오른쪽)가 출연자의 말에 파안대소하고 있다. 송해씨는 특유의 친근함으로 어린이부터 100세 노인까지 출연한 이 프로그램을 매끄럽게 진행했다. KBS 화면 갈무리

구봉서와 함께 1세대 코미디언
‘전국노래자랑’ 34년간 진행
최고령 MC로 기네스북 등재
“무대서 노느라 힘든 줄 몰라”

윤 대통령 “국민 마음에 남아”
KBS, 12일 추모 특집 방송

<전국노래자랑>은 고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80년 11월9일 첫 방송을 시작한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40년 넘게 전파를 탔다. 송씨는 1988년부터 MC를 맡았다. 일요일 낮 방송되는 <전국노래자랑>은 전국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일반인 출연자의 노래와 특기를 선보이고, 향토 음식을 만나보는 등 지역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으로 중장년 시청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송씨 특유의 친근한 진행으로 시청자에게 따뜻한 웃음을 전해왔다고 평가받는다.

프로그램에 대한 고인의 애정도 남달랐다. 30년 넘게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그는 스스로를 ‘일요일의 남자’로 불렀다. 송씨는 2008년 경향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세 살 어린아이부터 103세 어르신까지 1세기가 공존하는, 한 세기가 한 무대에서 노는 프로가 바로 <전국노래자랑>”이라며 “방송 중 관객이 날 끌어안고 뒹굴어 갈비뼈에 금이 간 적도 있지만 힘든 줄은 몰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출연자와 허물없이 대화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송씨는 연령과 관계없이 다양한 이들에게 ‘오빠’ 혹은 ‘형님’으로 불렸다. 출연자들이 들고 온 전통주 등 지역 특산품을 즐기는 것도 재미 중 하나였다. 고향인 북녘땅에 대한 그리움을 종종 얘기해왔는데,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금강산과 평양을 방문했던 것을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하기도 했다.

세상의 변화에 대한 유연한 사고는 고인의 장점이었다. 고인은 2018년 11월 KBS 2TV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자신에게 ‘제2의 고향’과 같은 종로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이곳에서 열리는 퀴어축제를 언급하며 “젊은이들도 남녀 쌍쌍으로 있지만 그렇지 않은 모임이 세계적으로 운동이 있다. 퀴어축제 가면 정말 발 디딜 데가 없다. 새로운 문화가 되었다. 옛날 같으면 어른들한테 혼난다. (지금은) 어르신들이 박수도 쳐준다. 거기 가서 배울 게 또 많다. 이런 변화도 체험을 해보는구나 해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고령에도 MC 활동을 이어오다 보니 ‘건강 악화설’이나 ‘사망설’ 등 가짜뉴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럴수록 건강관리에 힘썼다. 평소 애주가로 유명했으나,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건강 악화로 프로그램에 차질을 주지 않기 위해 금주를 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지난 4월 오랫동안 방송을 진행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한국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기려 송씨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윤 대통령은 조전에서 “열정적인 선생님의 모습을 다시 뵐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아쉽지만, 일요일 낮마다 선생님의 정감 어린 사회로 울고 웃었던 우리 이웃의 정겨운 노래와 이야기는 국민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KBS는 고인을 위해 추모 방송을 긴급 편성했다. 이날 오후 10시 KBS 1TV에서 <국민 MC 송해 추모특집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가 방송됐다. 지난 1월 설연휴 특집으로 방송된 프로그램으로 ‘국민 MC 송해’의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트로트 뮤지컬로 담아낸 작품이다. 자정을 넘긴 9일 0시10분에는 <국민 MC 송해 추모특선 KBS 걸작 다큐멘터리-송해, 군함도에서 백두산까지 아리랑>을 편성했다. 오는 12일 방송되는 <전국노래자랑>은 고인의 추모특집으로 꾸려진다.

고인은 부인 석옥이씨와의 사이에서 1남2녀를 두었다. 석씨는 2017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아들 창진씨는 1986년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송씨는 당시 충격으로 방송활동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아들의 사고가 난 한남대교는 이후 절대 가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다. 장례식은 코미디언협회장(희극인장)으로 치러질 계획이다. 발인은 10일 오전 4시30분. 장지는 대구 달성군 옥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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