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일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안과 관련해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신속한 공론화를 지시했다. 초당적 추진을 강조하기도 했다. 학제개편안에 대한 교원단체와 학부모들의 반발이 커지자 업무보고 나흘 만에 교육부 책임을 강조하며 발을 뺀 것이다. 박 부총리도 이날 오후 학부모단체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국민이 정말 원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폐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제개편안의 졸속 추진을 자인한 셈이다.
교육감들은 이날 교육부 학제개편안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원점 재검토를 촉구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교육부는 교육교부금 개편안에 이어 또다시 중요한 국가 교육정책 발표에서 교육청을 허수아비로 취급했다”고 비판했다. 학제개편안을 일선에서 집행할 교육감들을 제쳐놓았으니 교사나 학생, 학부모들의 의견을 듣는다는 발상을 했을 리가 없다.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려면 사전 검토는 물론 각계의 의견 수렴이 중요하다. 특히 이번 사안처럼 대상자가 광범위하고 민감한 정책일 경우에는 더 신경써야 한다. 그런데 박 부총리는 학제개편 추진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책연구기관의 검토 결과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017년 2월 내놓은 ‘학제개편의 쟁점 분석’ 보고서에서 ‘6-3-3-4 학제’, 취학연령 만 5세 하향, 9월 신학기제 도입 등 3가지 개편안을 검토한 결과 “만 5세 취학은 교육적으로 볼 때 설득력이 약하다”고 밝혔다. 같은 기관이 2007년 7~9월 대학생 1200명과 학부모 1550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한 결과에서는 취학연령 만 5세 하향에 대학생의 73%와 성인의 65%가 반대했다. 이런 선행 연구를 검토했다면 이번과 같은 졸속 결정은 애초에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정부 정책이 이렇게 시민의 불신을 받은 사례가 흔치 않다. 일각에서는 이번 소동이 박 부총리의 전문성 부족 탓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누군가의 의지가 강하게 개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대선 공약에도 없던 내용이 대통령 첫 업무보고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박 부총리는 졸속 개편안을 철회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전에 신중히 사안을 검토하고 각계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새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