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 자동차 왕국 일본…전기차는 ‘잴라파고스’

2023.02.13 06:00 입력 2023.02.13 06:01 수정

도요타의 순수 전기차 ‘bz4x’. 도요타 제공

도요타의 순수 전기차 ‘bz4x’. 도요타 제공

세계 판매 1위 도요타 등 업체들
뛰어난 하이브리드 기술에 안주
일 정부도 내연차 부품산업 의식
산업 전환에 “의도적 속도 조절”

판매량 세계 1위 도요타를 필두로 한 일본은 자동차 시장 선도국이지만, 새로운 시장인 전기차 쪽에선 후발국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느긋해 보인다.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열고, 저돌적으로 움직였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왜 전기차 시장에선 천천히 움직일까. 전기차로 급격하게 전환하면 일본 내 부품 업체들이 도산하고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애플발 스마트폰 충격에도 일본형 스타일을 고집하다 ‘갈라파고스섬’이 된 것처럼, 하이브리드차에 갇힌 게 아니냐는 일부 시각도 있다. 사실 일본 자동차 기업들도 전기차 시대를 착착 준비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본격 뛰어드는 시점이야말로 ‘전기차 춘추전국 시대’가 열릴 거란 관측이 나온다.

내연 자동차 왕국 일본…전기차는 ‘잴라파고스’

지난해 수출국 1위 자리 지켰지만
중국 전기차 약진 등 변화에 둔감
최근 신차 계획 발표…‘반전’ 관심

■ 쫓기는 1위 일본

일본은 지난해 자동차 수출 1위국 자리를 지켰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1월 기준으로 1위 수출국은 일본(약 345만대)이었다. 세계 시장 판매량에서도 도요타가 지난해 1050만대로 선두를 지켰다.

다만 불안한 1위다. 지난해 자동차 수출량 2위로 성장한 중국은 311만대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중국은 2021년 6위였지만 지난해 2위로 단번에 뛰어올랐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100만대 안팎 수준으로 유지되던 중국의 판매량은 2021년 201만대로 6위로 올라섰다.

일본과 중국은 정반대의 전략을 취했다. 하이브리드차의 선두 주자 일본은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췄다. 여전히 내연기관차가 대세이기 때문에 1위 자리는 지켰다. 반면 중국은 후발주자인 내연기관차 시장을 과감히 뛰어넘어 전기차를 바로 공략했다. 중국의 지난해 수출량 311만대는 전년도 대비 54.4% 증가했고, 이 중 ‘신에너지차’(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수소전기차)가 약 68만대로 21.9%를 차지했다. 중국의 신에너지차 수출은 전년 대비 120% 증가했다. 신에너지차 수출량이 2배 이상 성장세를 보이면서 중국의 전체 자동차 판매 순위를 끌어올렸다.

반면 일본의 대표주자 도요타는 지난해 판매량 1050만대 중 전기차는 10만대 정도로 추산된다. 하이브리드차는 260만대 정도다. 친환경차로 넓게 보면 270만대 수준이지만,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등을 포함한 전기차로 좁히면 세계 시장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 자동차 브랜드 중 전기차를 내놓은 곳은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가 유일하다. 도요타와 혼다는 한국에는 순수 전기차를 안 가져왔다. 일본의 전략이 엿보이는 단면이다.

도요타의 첫 순수 전기차는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bZ4X’다. 지난해 5월 출시했지만 한국에는 들여오지 않았다. 첫 전기차 출시가 지난해 5월이란 점을 보면, 일본이 시장 진입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추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혼다의 첫 전기차는 2020년 출시한 소형 ‘혼다 e’다. 역시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다. 렉서스의 첫 순수 전기차는 2020년 8월 나온 ‘UX300e’로, 국내에도 출시됐다.

내연 자동차 왕국 일본…전기차는 ‘잴라파고스’

■ 안 만드나, 못 만드나

뛰어난 하이브리드 기술을 가진 일본 자동차 그룹이 전기차 진입 속도가 늦은 이유는 뭘까. 배터리에 전기모터를 얹는 전기차 기술 자체는 하이브리드차와 큰 차이가 없어 어렵지 않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배터리의 성능이 관건이지만, 이는 자동차 회사보다는 배터리 회사의 기술력이다. 배터리를 사와 모터를 얹는 기술은 비교적 간단하다는 의미다. 특히나 일본은 하이브리드차를 만들면서 모터를 오랜 기간 다뤄왔다.

일본이 전기차 진입 속도를 늦춘 것은 의도적으로 보인다. 두 가지 대표적인 해석이 있다. 첫 번째는 일본이 ‘하이브리드의 덫, 성공의 저주’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를 1997년 10월 출시했다. 이후 10년 만에 누적 판매대수 100만대를 돌파하며 업계 최초로 성공신화를 썼다. 이후 다시 10년이 지난 2017년 1월에는 1000만대를 넘어섰다. ‘하이브리드=도요타’라는 공식이 생길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전 세계적으로는 전기차 시장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지만, 일본은 하이브리드차에 갇힌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전환 속도를 늦췄다는 해석도 나온다. 기존 내연기관차는 부품 수가 2만여개다. 반면에 순수 전기차는 7000개 정도이다. 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로 전환하면 그 사이에서 부품 납품사들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본차 업계 관계자는 “부품 업체들이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해 일본 정부가 일부러 속도를 늦춘 걸로 보인다”고 했다.

여전히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차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현실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딜로이트그룹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하이브리드차 선호도가 전기차보다 2.6배 높게 조사됐다. 특히 일본에서 하이브리드차 선호도가 48%로 가장 높았다.

사실 일본 자동차 회사들도 본격적으로 전기차 청사진을 발표하고 있다. 도요타는 2030년까지 총 30종의 순수 전기차 모델을 도입할 계획을 밝혔다. 연간 350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렉서스는 2030년까지 전 라인업에 전기차 모델을 도입할 계획이다. 2035년부터는 100%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혼다도 2040년 100% 전기차로 전환할 계획이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장 경쟁에 뛰어들게 되면, 판도는 크게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선두권 일본이 제대로 시작도 안 한 현재는 전기차 패권 다툼이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주도권을 쥐려는 한국, 중국과의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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