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공’ 이복현 금감원장,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2023.03.03 03:00 입력 2023.03.03 03:02 수정

현 정부의 금융 실력자는 단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으로 보인다. 은행권 돈잔치 질타에서 금융지주 지배구조와 은행산업 개편에 이르기까지 각종 현안을 두고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등장부터 파격적이긴 했다. 1999년 금감원 출범 후 첫 검사 출신 원장이다. 검사 시절 경제·금융 범죄를 주로 다룬 데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이기도 하다. 일견 ‘스타 금감원장’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의 행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오관철 경제에디터

오관철 경제에디터

우선 이복현식 관치 논란이다. 지난 연말부터 5대 금융지주 중 3곳(신한·우리·농협)의 회장이 교체됐다. 신한·농협은 연임 분위기가 지배적인 곳이었다. 우리는 라임사태와 관련,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회장이 소송을 제기하며 연임에 도전하려 했지만 이 원장의 압박을 버티지 못했다. “반성하고 개선해야 하는데 자꾸 소송 논의만 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다”는 식으로 퇴진을 몰아붙였다. 물러난 우리·농협 회장 자리는 윤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 인사와 전직 관료가 선출됐다.

금융지주 회장이 이사회를 친분 있는 인사들로 채우고 셀프 연임을 하는 행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셀프 연임을 강력히 비판하며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최고경영자 승계 과정에서의 잡음은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그간 해법을 찾지 못했던 난제다. 그러나 이것이 관치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수는 없다. 검사 시절 형성된 ‘당신들이 감히…’란 식의 사고가 이 원장에게 남아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다음은 시장과 금융회사들이 느끼는 혼선이다. 금감원장은 금융위원회 의결과 금융위원장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금융정책은 금융위 업무에 해당한다. 물론 2000여명에 달하는 금감원 조직 없이 금융위가 임무를 수행하긴 쉽지 않다고 해도 엄연히 금융위가 상급기관이다. 이런 점에서 이 원장이 지난달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언급한 은행 과점체제 개편 발언은 금융위 패싱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며 “은행의 돈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뒤 이 원장 발언이 보도됐으니 실세란 평가는 더욱 굳어졌을 것이다.

역대 정부는 은행의 경쟁력을 위해 대형화가 필요하다면서 합병을 유도해 왔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메가 뱅크가 대세이기도 했다. 은행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은 신중해야 할 문제로 즉자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선 곤란하다. 이 원장은 자신의 말 한마디가 어떤 식의 정책으로 구체화됐는지 검증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제에 기여하는 몫에 비해 엄청난 소득을 가져가는 금융사들을 흔히 ‘테이커스(takers)’라 부른다. 국내 은행들은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고 예대마진 위주의 이자 장사 영업에 안주하고 있다는 지탄을 받아 왔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기를 틈타 막대한 이자이익에 성과급 잔치를 벌였으니 국민 공분이 큰 게 사실이다. 대통령과 금감원장이 직접 호통을 치니 후련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가 민생대책 실패에서 벗어나기 위해 은행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대출금리 인하와 예금금리 인상을 유도하다 은행권에 돈이 몰릴 조짐을 보이자 예금금리 인상 억제를 주문하는 식의 오락가락 개입에 대한 반성은 들리지 않는다. 금융감독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해선 안 되며 금감원이 대통령실이 부는 피리에 장단만 맞추려 해선 곤란하다.

금감원은 검사권을 갖고 있고 재량 범위가 넓어 마음만 먹으면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칼을 휘두를 수 있다. 그간 금감원이 금융회사의 인사와 경영에 간섭하고 행정지도란 명목으로 팔 비틀기를 하는 폐해도 많았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감독당국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게 되면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금융시스템 안정과 금융소비자 보호가 금감원의 양대 책무다. 군림하는 규제기관이 아니라 금감원의 영문명에 서비스란 표현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지원기관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무엇보다 금감원장은 뒤에서 일하는 자리다.

이 원장은 자신이 금감원의 업무 목표를 달성할 최적의 인물이란 점을 앞으로 입증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를 말하는 정부에서 ‘보이는 손’이 금융권을 지배하고 있다는 식의 말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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