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진보적 이상을 현실화하는 과정”···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 별세

2023.06.23 20:18 입력 2023.06.23 20:54 수정

“역사는 인류 사회와 인간이 추구해 마지않는 이상을 현실화시켜 가는과정입니다.” 23일 별세한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늘 강조한 말이다. 그는 역사의 진보를 믿는 역사학자였다. 2010년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노예제, 농노제를 결국 인간이 극복한 점을 예로 든다. “인간이 지향한 이상이 하나하나 현실화됐”다고 했다. 지금 역행하는 듯한 시대에 세상이 나아진다는 신념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실천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이다. 그는 아무리 현실이 암당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여겼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2016년 12월2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동체의 회복은 개개인의 자의식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가 매일 산책하는 강원 양양 하조대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2016년 12월2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동체의 회복은 개개인의 자의식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가 매일 산책하는 강원 양양 하조대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강 명예교수는 2017년 경향신문 인터뷰 때도 “헤겔이 말한 대로 역사는 한 사람(독재자 왕)만이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자유로운 사회에서 만명의 사람이 자유로운 시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명예교수는 연장선에서 공화주의를 강조한 역사학자였다. 2019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3·1운동을 두고 독립운동인 동시에 공화주의 운동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일본의 메이지유신, 중국의 신해혁명 같은 것 없이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죠. 그나마 3·1운동이 일어나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비로소 공화주의가 시작되는 겁니다. 우리 정도의 문화 수준을 가진 민족사회가 공화주의 채택을 20세기에 들어서야 했다는 것은 좀 뒤처진 거죠.” 임시정부도 공화주의를 지향한 점을 주목했다.

강 명예교수는 193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을 경험하며 역사 공부에 뜻을 뒀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를 연구했다. 1959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하다 1967년 모교 교수로 임용됐다.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1972년 유신 뒤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논설문을 썼다. 1980년 광주항쟁 직후 항의집회 성명서 작성 등에 나섰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강 명예교수를 해직했다. 1984년 4년 만에 복직했다. 정년 퇴임하던 1999년까지 진보적 민족사학 발전을 위한 학술 활동을 벌였다. 2001년 상지대학교 총장을 맡아 학원민주화를 위해 일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때 약 10년간 통일고문을 역임했다. 2000년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를 창간했다. 2007년부터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을 설립해 청년 연구자들 학술 활동을 지원했다. 그는 사재로 이 일들을 해왔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고쳐 쓴 한국근대사>, <역사가의 시간> 등의 18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펴냈다. 1978년 낸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은 냉전 논리를 극복하며 평화통일의 역사관을 제시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반공주의나 대북적대주의가 고착화되는 동시대를 평화통일을 지향하며 극복해야 하는 ‘분단시대’라 이름 지은 것은 당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는 평을 받았다.

강 명예교수는 2010년 출간한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창비)에서 자신의 삶을 두고 “남북동포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는 민족주의자로, 철저한 평화주의자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미래지향주의자로 살려 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은 이날 “평생을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서는 등 역사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고 부고를 전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여러 추모 글이 올랐다. 여러 역사 연구자나 시민들이 부고 기사를 전하거나 명복을 빌었다.

빈소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고양시 청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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