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유력시되는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홍보수석으로 재직하던 2010년 홍보수석실이 국가정보원에 KBS 내 ‘좌편향’ 인사를 파악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홍보수석실 요청으로 생산된 국정원 문건에 따라 KBS 일부 간부의 보직이 변경됐다. 이 특보가 청와대 재직 시절 공영방송 조직개편에 간여한 정황이 국정원 문건과 국정원 간부의 검찰 진술조서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경향신문이 26일 입수한 2017~2018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불법사찰 등 재판 관련 공판기록·증거기록·진술조서 등을 보면, 국정원은 2010년 6월3일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 홍보수석실에 보고했다. 이 문건 우상단에는 ‘*5.28 홍보수석실 요청사항’이라고, 하단 배포 대상에는 ‘홍보수석’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 특보는 2009년 9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다.
해당 문건을 작성한 국정원 직원의 검찰 진술조서에도 이 특보의 개입 정황이 나와있다. 원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검찰 증거기록을 보면 해당 문건을 작성한 국정원 국익전략실 직원 A씨는 검찰에 “당시 KBS가 2010년 6월4일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고 조직개편 이후 간부급 직원들에 대한 인사가 예정되어 있던 상황이었다”며 “2010년 5월28일경 BH(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KBS 간부급 인사가(에) 반영하기 위해서 좌편향 등 부적격 간부에 대해서 파악을 해달라는 취지로 보고서 작성 지시가 있었고, 그와 같은 지시가 국정원 지휘부를 통해 저에게 시달됐다”고 진술했다.
국정원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①좌편향 ②무능·무소신 ③비리 연루 등 세 가지 기준을 세워 색출할 인사 대상자를 선별했다. 국정원은 해당 문건에 “좌편향 간부 → 반드시 퇴출, 좌파세력의 재기 음모 분쇄”라고 적시하며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해온 인사들을 나열했다. 특히 “정연주 전 KBS 사장 추종 인물”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 고수”라고 명시했다. 정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KBS 사장직에서 해임됐다.
국정원은 “현안에 대한 시국인식 결여” “좌파 눈치보기 체질화” “국정지원에 소극적” “좌파세력 비호에 골몰”한 인사들을 무능·무소신 간부로 규정했다. 보도국장 등 주요 보직에 있으면서 정부 정책 홍보를 제대로 못하거나 정부 비판적 보도를 막지 못한 이들을 이렇게 규정한 것이다. 국정원은 또 “내부 정보를 야권 이사에게 흘려 물의를 야기”하고 “좌파 외주업체들의 ‘젖줄’로 지목”된 경우를 비리 연루자로 규정했다.
국정원 문건에 ‘좌편향 인사’로 적시된 KBS 간부 중 일부는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했다. 시사 프로그램 ‘취재파일 4321’ 부장 B씨와 ‘추적 60분’ 책임PD C씨는 2010년 6월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이 문건을 청와대 홍보수석실에 보고한 뒤 문건 내용이 일부 실행된 것이다.
국정원 직원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보고서 문건에 따른 실행이 이뤄졌다면 누구를 통해 이뤄졌는지 묻자 “아마도 KBS 담당인 IO(정보담당관) 또는 BH 홍보수석실에서 KBS 사장단 등에게 이야기를 해서 하차를 시켰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진술했다.
경향신문은 이 특보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이 특보는 문자로 보수 성향의 언론비평단체 미디어연대가 이날 낸 성명을 다룬 기사를 보내는 것으로 갈음했다. 미디어연대는 성명에서 “면직 처분된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의 후임 인사조치와 관련해 민주당이 언론 장악이라는 논리로 공세를 편다”며 “이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자 적반하장”이라고 주장했다.
이동관 특보실은 문자로 “이 특보는 과거부터 해당 문건에 대해 요청한 적도, 보고받은 적도, 본 적도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표명해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