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독주에 동맹으로 맞불…電의 전쟁, 다음 전장은 ‘충전’

2023.07.30 20:45

인프라 경쟁 나선 전기차 업계

테슬라 모델S(위 사진)가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한 전기차 충전시설에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가 싱가포르 모터쇼에서 각각 충전하고 있다. AFP·로이터 제공

테슬라 모델S(위 사진)가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한 전기차 충전시설에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가 싱가포르 모터쇼에서 각각 충전하고 있다. AFP·로이터 제공

현대차·벤츠·BMW 등 7개 제조사
공동으로 충전 네트워크 조성 계획
미국 내 3만곳 짓고 캐나다도 공략

테슬라는 포드 등과 슈퍼차저 공유
생태계 형성·영향력 확대 ‘안간힘’

완성차 회사들의 전기차 힘겨루기가 충전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테슬라가 저변을 넓혀가면서 미국 표준으로 자리매김하려 하자, 현대자동차·기아·메르세데스 벤츠·BMW 등 7개 회사가 ‘충전동맹’으로 맞서고 나섰다.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인 테슬라의 독주를 막기 위해 완성차 회사들이 연합한 모습이다. 당장은 미국 시장에서의 패권다툼 양상이지만, ‘충전 전쟁’은 전 세계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를 팔고 있는 현대차, 기아, 벤츠, BMW, 스텔란티스, 혼다, 제너럴모터스(GM) 등 7개 회사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를 만드는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충전소를 만드는 회사를 공동으로 세운다는 의미다. 이들 회사는 미국 시내와 고속도로에 최소 3만곳의 고출력 충전소를 설치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충전 규격은 모든 회사의 전기차가 충전할 수 있도록 갖출 계획이다. 현재 산업표준 격인 ‘DC 콤보(CCS)’는 물론 테슬라의 충전 규격인 NACS 방식까지 가능하다.

첫 충전소 개장 목표는 내년 여름이다. 이후에는 캐나다로 확대할 예정이다. 조인트벤처는 규제당국의 승인을 거쳐 올해 안에 설립될 것으로 예측된다. 7개 회사는 구체적인 투자 금액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은 7개 회사가 조인트벤처에 최소 10억달러(약 1조2760억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회사는 재생에너지로만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국적도 다른 7개 회사가 뭉친 표면적인 이유는 전기차 인프라를 충분히 갖춰 고객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데 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현대차의 이번 프로젝트 투자는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현대차의 비전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는 “강력한 충전 네트워크는 모두가 동일한 조건에서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상생의 정신으로 함께 구축해야 한다”며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의 집단지성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충전이 불편하거나 어려워 전기차 구매를 꺼리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다. 전기차는 늘어나고 있지만 미국 내 충전 인프라는 충분하지 않다.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7월 기준 미국에는 3만2000대의 공공 고속충전기가 있다. 이를 230만대의 전기차가 이용하고 있다. 충전기 1대당 차량 비율이 72대 수준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테슬라 견제, 충전 시장의 장래성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이질적이고 이례적인 연합의 첫번째 배경으로는 테슬라 견제가 꼽힌다. 테슬라는 전기차는 물론 충전 분야에서도 압도적 1위다. 테슬라는 자체 충전소인 슈퍼차저를 미국 내에 2만2000여곳 갖추고 있다. 미국 전체 급속충전기 중 60%가 테슬라의 슈퍼차저다. 7개 회사가 3만개를 제시한 건 슈퍼차저를 뛰어넘는 보급률을 달성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개별 회사로선 대적하기 힘든 규모를 테슬라는 이미 이루고 있다. 연합하지 않는 한 개별 자동차 회사로선 충전소를 대량으로 구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충전소는 통상 멤버십이나 이용 방식의 익숙함 때문에 많을수록 유리하다.

게다가 테슬라는 미국 시장에서 배타적 방식으로 표준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테슬라는 포드, GM, 벤츠, 닛산, 리비안 등과 슈퍼차저를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계약했다. 슈퍼차저는 NACS 방식을 고수한다.

마치 애플이 충전 커넥터든, 운영체제(OS)든 독자적인 방식을 유지하는 것과 닮았다. 애플의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애플 생태계는 커지고,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의 점유율은 밀릴 수밖에 없다. 생태계 싸움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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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외의 자동차 회사들은 슈퍼차저를 소비자가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 커넥터를 제공하거나 새로 만드는 차에 NACS 충전이 가능하도록 설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체 충전소를 만들어 CCS 방식을 유지하면 이런 불편을 겪을 필요가 없어진다.

CCS가 포함된 DC 콤보 방식은 충전구 1개에 5개의 구멍이 있는 형태로, 완속·급속·비상 급속충전(5㎾ 이하 방전 시)을 모두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점으로는 무겁다는 점이 꼽힌다. NACS는 단일 단자이고 고속충전과 완속충전이 모두 가능하다. 단일 단자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볍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자료를 보면 두 가지 방식 충전단자의 충전속도는 모두 발전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NACS가 250㎾로 상대적으로 빠르다. CCS는 150㎾로 사용되고 있고, 350㎾ 대응 기기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충전 시장의 장래성도 밝다. 미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는 2030년까지 미국 도로에서 3000만~4200만대의 충전식 차량(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이 운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선 18만2000대의 고속충전기가 필요하다. 현재 미국 내 있는 충전기의 5~6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17년 전 세계에 370만대였던 전기차가 2030년이 되면 2억3000만대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명확하고, 그 과정에서 충전 시장 확대도 필연이다. 미국 시장에서 패권을 잡는다면 전 세계 시장으로도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전기차가 늘어나면 충전소는 하나의 문화공간이 될 가능성도 크다. 충전시간 동안 간단한 음식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을 가는 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공간을 상상할 수 있다. 7개 회사는 보도자료에서 “가능한 곳에는 캐노피(지붕과 같은 덮개)를 설치하고 화장실과 음식 서비스, 소매점 등 편의시설을 충전소 단지 안이나 인근에 배치할 것”이라며 “일부 플래그십 충전소에는 추가 편의시설을 설치해 충전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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