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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운동, 효과 있을까?

2023.08.25 07:00

지난해 10월23일 서울 서초구 SPC본사 앞에 설치된 ‘추모의 벽’. 한수빈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해 10월23일 서울 서초구 SPC본사 앞에 설치된 ‘추모의 벽’. 한수빈 기자.

※뉴스레터 점선면 8월23일자(https://stib.ee/6uY8)에 게재된 글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뉴스레터 점선면] 불매운동, 효과 있을까?

[뉴스레터 점선면] 불매운동, 효과 있을까?

독자님, 안녕하세요.

혹시 특별한 날 친구에게 기프티콘을 선물하려다 망설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곳곳에 가맹점이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의 기프티콘을 선물하려다 머뭇거리는 일이 많아졌어요. 웬만한 프랜차이즈 기업이 한 번씩은 저와 제 주변의 ‘불매운동 리스트’에 오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는 얼마 전 동료에게 배스킨라빈스 기프티콘을 선물했다가, 동료가 ‘죄송하지만 이 브랜드는 더이상 먹지 않는다’고 거절해 선물을 취소했다고 해요. 친구의 동료가 배스킨라빈스를 먹지 않은 이유는 배스킨라빈스가 SPC그룹 계열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불매운동이 거셌던 SPC에서 얼마 전 또 다른 산업재해 사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8월8일, SPC 계열사인 샤니 제빵 공장에서 반죽 기계에 끼인 노동자가 병원으로 이송됐고 이틀 뒤 숨졌어요. 이에 다시금 SPC 불매운동이 불붙고 있습니다.

오늘 점선면은 일상이 된 ‘불매운동’을 들여다봅니다. 지난주 예고해 드렸더니 많은 독자님이 불매운동 경험을 공유해 주셨어요. 독자님의 경험과 의견을 바탕으로 레터를 준비했습니다. 2018~2019년 불매운동을 연이어 취재한 반기웅 기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불매운동, 효과 있을까?

1. 빵공장에서 사람이 죽었다

· 지난 8월8일 낮, SPC 계열사 샤니의 성남 제빵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반죽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몸통이 끼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된 노동자는 결국 이틀 뒤 사망했어요.

· 노동자는 2인 1조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해요. 함께 일하던 동료 작업자가 노동자를 인지하지 못하고 기기를 작동시켰고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시찰 결과 기계가 작동할 때 경보음이 울리지 않은 정황이 파악됐습니다.

2. SPC 끼임 사고, 한두 번이 아니다

· 왠지 이 소식, 얼마 전에도 들은 것 같으시죠. 맞습니다. 10개월 전에도 SPC 계열사 빵공장에서 비슷한 사망 사고가 있었거든요.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어 숨졌습니다.

· 이뿐 아니에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받은 ‘최근 5년 SPC 3개 계열사(파리크라상·SPC삼립·샤니)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2018년부터 올해 3월까지 산재보상 승인 기준으로 파리크라상에서는 148명, SPC삼립에서는 63명, 샤니에서는 35명의 재해자가 보고됐습니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성남 제빵공장에서만 이미 5년간 14건의 끼임 사고가 있었고요.

* 파리크라상을 지주회사로 하는 SPC그룹은 상장사 SPC삼립과 24개의 비상장 자회사를 가지고 있어요. 파리크라상에는 파리바게뜨·쉐이크쉑·카페 파스쿠찌·리나스·잠바쥬스·피그인더가든과 같은 브랜드들이 속해있습니다. SPC삼립에는 삼립·빚은 등이, 비알코리아에는 배스킨라빈스·던킨도너츠가 있어요. 이 밖에 포켓몬빵을 만든 샤니, 편의점에 샌드위치 등을 납품하는 샌드팜 등도 SPC 계열사입니다.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숨진 지 열흘째 되는 지난해 10월26일, 서울 서초구  SPC그룹 본사 앞에서 여성·노동단체 관계자 등이 추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숨진 지 열흘째 되는 지난해 10월26일, 서울 서초구 SPC그룹 본사 앞에서 여성·노동단체 관계자 등이 추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3. “피 묻은 빵, 먹을 수 없다”

· 지난해 사망 사건 후 SPC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불매 움직임이 거셌습니다. SPC그룹 허영인 회장이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향후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3년간 1000억을 투자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음에도 불매운동은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확산했습니다.

· 이미 사건 뒤 SPC 측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동료 노동자들을 데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제빵 작업을 이어간 일, 숨진 노동자의 빈소에 파리바게뜨 빵을 상조품으로 보낸 일 등이 알려졌기 때문일까요? 게다가 재발방지 약속과 사과 이틀 만에 성남에 있는 샤니 제빵공장에서 40대 노동자의 손이 기계에 끼어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해 공분을 샀어요.

· 당시 파리바게뜨의 매출이 매장마다 약 30% 줄어들었다고 가맹점주들은 말했습니다. 멤버십 앱인 해피포인트 이용은 물론이고 품절대란이었던 포켓몬빵 매출까지 감소했고요. 유통업계는 삼립호빵 판매를 망설였고, 소비자들은 제과제빵업계 대목인 연말에 SPC 계열사 케이크를 사지 않는 등 불매를 이어갔습니다.

· SPC는 후속대책으로 지난해 11월 안전경영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이 위원회는 올해 4월 간담회를 열고 지난 반년간 안전장비 도입과 작업환경 개선 등을 위해 165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며 “안전경영 활동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겁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불매운동, 효과 있을까?

지난해 10월, 계열사 공장에서 사망 사고 후 거센 불매운동을 맞았던 SPC그룹에서 10개월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불매운동, 효과 있을까?

[뉴스레터 점선면] 불매운동, 효과 있을까?

1. 내 삶 곳곳 불매운동

지난주 독자님들께 오늘 레터 주제를 예고하고 불매운동 경험을 여쭤봤어요. 답을 남겨주신 분 중 대부분이 불매운동에 참여해 보셨더라고요. 특히 SPC를 불매하신 독자님이 많았어요. 독자님들이 전해주신 SPC 불매 이유를 몇 가지 소개할게요.

· 피 묻은 빵을 먹을 수 없어서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몌님)
· 지난번에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별다른 개선점이나 진심 어린 사과가 보이지 않았고, 과거부터 이런 문제가 심각하다는 회사인 것을 알게 되면서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다. (새말님)
· 매번 사고가 발생하고 노동자가 죽어가는데도 해결하지 않아서요. (아영이님)

남양유업을 불매하셨다는 독자님들도 여럿 계셨습니다. 대리점 갑질 사건과 여성 노동자 차별이 불매 이유였어요.

· 우유, 분유 등 양육 관련 제품을 다루는 기업에서 육아휴직, 임신 등을 이유로 여성 노동자를 차별하는 모습이 괘씸해서요. (아영이님)
· 2021~2022년 경 해당 기업의 육아휴직 불이익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같은 여성의 입장으로서 ‘남양이라는 알 만한 기업에서조차 여성의 임산·출산·육아는 함께 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에 불매하게 되었습니다. (익명의 독자님)
· 과거 가맹점 갑질사건과 임신한 직원 관련 사건 이후로 계속 불매 중입니다. (DB님)

유니클로 등 일본 기업을 불매했다는 독자님도, 퇴임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법률고문을 맡긴 농심을 불매했다는 독자님도 계셨어요. 지난해 칼럼에서 오수경 작가가 표현했듯 많은 이들에게 “‘불매운동’은 어느덧 이벤트가 아닌 생활”이 됐습니다. 오 작가는 “이른바 ‘대리점 갑질’을 한 남양유업 제품을 수년째 불매하고 있고, 쿠팡이나 마켓컬리 등 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곳의 불매 목록은 늘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불매운동은 뿌리깊다. 8가지 쟁점에 따라 한국 불매운동을 정리했다. 그래픽 김규연 디자이너. 참고: 천혜정, <한국 소비자 불매운동사>(2020) 이미지 크게 보기

한국의 불매운동은 뿌리깊다. 8가지 쟁점에 따라 한국 불매운동을 정리했다. 그래픽 김규연 디자이너. 참고: 천혜정, <한국 소비자 불매운동사>(2020)

2. 불매운동 성과, 왜 보이지 않을까

‘부조리한 편리함’을 내려놓고 불매를 실천하지만, 어쩐지 세상이 그대로인 것 같을 때가 있죠. 응답하신 독자님의 3분의 2는 “불매운동의 효과를 실감했다”고 답해주셨는데요, 3분의 1은 “불매운동이 별 효과가 없다고 느낀다”고 하셨어요. 확실히 불매운동 효과는 일률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픽 김규연 디자이너.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미지 크게 보기

그래픽 김규연 디자이너.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살펴본 결과, SPC삼립의 영업이익에서 불매운동의 뚜렷한 영향을 확인할 수 없었어요. 오히려 임종린 민주노총 화섬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의 단식농성, SPL 제빵공장 노동자 사망 사고에 연대하기 위한 불매운동이 있던 시기 영업이익이 증가했습니다.

SPC의 지주회사는 파리크라상이지만 불매운동이 집중적으로 전개됐던 최근 수치를 보기 위해 분기보고서를 공시하는 상장사 SPC삼립의 영업이익을 확인했습니다.

반면 지난해 10월 평택공장 사망 사고 직전 8만4000원을 호가하던 SPC삼립의 주식은 사고 직후 급락했습니다. 당월 주가는 전월 대비 17.74%나 내렸어요. 주가는 이후 반등하지 못해 8월22일 오전 기준 6만7500원선에 머물렀습니다.

그래픽 김규연 디자이너.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미지 크게 보기

그래픽 김규연 디자이너.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남양유업은 비교적 불매운동이 집중된 시기에 영업이익이 급락했어요. 2015년에는 잠시 반등했지만 다시 떨어져 지난해에는 868억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신생아 수가 감소하면서 유업계 시장 전체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같은 업계의 매일유업이 6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불매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모든 효과를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브랜드 이미지의 추락, 기업 정책 및 경영관행의 변화, 법과 제도의 개선 등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으니까요. 불매운동의 대상이 된 기업들은 상당한 이미지 추락을 겪었어요. “제품의 맛이나 가격 등 일반적인 제품 선택 기준이 아니라, 회사명을 보고 흠칫거리거나 상품을 내려놓게 되는 지인들이 많아졌다고 느꼈다”는 ‘DB’ 독자님의 말처럼요.

위기를 느낀 사업주가 고개 숙이며 사과를 하거나 공식석상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죠. 분명히 타격을 입은 기업이 불매운동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며 적극적으로 변하지 않은 이유는 뒤에서 좀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3. ‘애먼’ 가맹점주만 고통?

정작 기업들은 건재한데 애꿎은 가맹점주 같은 ‘을’들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도 불매운동이 거세질 때마다 나옵니다. 이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칼럼을 통해 이렇게 전했습니다. “기업 불매운동 비판에도 공리주의가 등장했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근로조건 개선 요구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SPC 불매운동을 벌였는데, 이것이 민주노총 조합원 200여명에게만 행복이고 가맹점주, 한국노총 소속 제빵기사, 기업 임직원 등 2만 7400명에게 고통을 주고 있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럼 불매운동을 하지 않아야 하는 걸까요?

“국민 분노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크다. 이런 분노가 생업을 이어가는 일반 가맹점들에게는 큰 고통이지만 그 고통이 안전한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고객들의 질타보다 크다고 할 수는 없을 것”

지난해 사망 사고 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는 매출 급감을 호소하면서도 “회사에 철저한 원인 분석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 안전경영 강화 계획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겠다”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아닌 ‘안전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기업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2017년 6월,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MP그룹 회장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갑질논란’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정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회장직 사퇴를 발표한뒤 자리를 떠났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미지 크게 보기

2017년 6월,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MP그룹 회장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갑질논란’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정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회장직 사퇴를 발표한뒤 자리를 떠났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하지만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그룹의 잘못으로 가맹점주들이 손해를 입는 것은 온당치 않아보여요. 미스터피자, 호식이두마리치킨, 아오리라멘 등 사업주의 위법행위 혹은 부도덕한 행위로 가맹점이 매출 하락을 겪는 일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가맹점주를 보호하는 제도가 있긴 합니다. 소유주의 갑질로 불매운동이 전개되고 이에 가맹점들의 피해가 줄을 잇자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거래법)이 개정됐어요. 본사나 본사 경영자의 잘못으로 가맹점이 피해를 입으면 가맹점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가맹거래계약서에 기재해야 한다는 내용이 생겼습니다. 일명 ‘오너리스크 조항’입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약서에 본사 배상 책임을 명시하면 가맹점주들이 적극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요, 실제론 제약이 많습니다. 버닝썬 사태의 중심에 있던 승리가 운영한 프랜차이즈 아오리라멘 가맹점주들은 가맹거래법 개정 이전에 가맹계약을 맺어서 위의 조항 적용을 받지 못했어요. 점주 26명이 아오리라멘 본사, 전 대표 승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습니다.

지난해 SPC 불매운동 때,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도 이 조항을 적용받기 어려울 거란 해석이 많았습니다. 파리바게뜨의 본사는 파리크라상이고 노동자가 사망한 공장은 SPL이라, SPL이 파리바게뜨의 가맹본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가맹점주들을 위한 법적 안전장치는 아직 미비합니다. <한국 소비자 불매운동사>를 쓴 천혜정 이화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업의 책임 있는 경영을 위해서는 해당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가맹본부 또는 가맹본부 임직원의 책임있는 사유로만 명시돼 있어 창업주가 지분만 보유하고 임직원으로 일하지 않는 경우 손해배상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며, 본사 임직원이 위법행위를 저질러도 피해 입증 책임이 가맹점주에 있어 가맹점 브랜드 이미지 하락과 같은 무형적 손해를 가맹점주가 입증하기 어렵다”며 “오너리스크의 요건과 범위, 배상책임과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하며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통합시켜 동일한 불법행위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불매운동, 효과 있을까?

불매운동은 브랜드 이미지 추락, 기업 경영 관행의 변화, 제도 개선 등 장기적 효과는 숫자만으로는 추산하기 어려운 광범위한 효과를 가집니다. 불매운동이 벌어질 때마다 가맹점들도 손해를 보는데요, 기업에 책임을 묻는 보완 입법이 시급합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불매운동, 효과 있을까?

1.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그간 사회 개혁과 무관한 것으로 간주돼 온 매일매일의 일상적 소비행위, 혹은 구매하지 않는 행위가 보다 나은 시장과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주의의 유력한 수단으로 부각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자신의 소비행동을 시민적 관여의 한 형태로 인식하고 소비를 사회 변화를 자극하는 수단 혹은 연대의 수단으로 간주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천혜정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윤리적 소비’ ‘정치적 소비’가 확산하면서 쇼핑이 정치적 행동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기존 정치가 혐오 대상이 되는 한편, 소비자 장바구니가 정치적 표현의 장이 된 것입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에서 “계급 정치의 퇴조가 뚜렷한 상황에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정치 참여의 한 유형으로 간주된다”며 “기업들이 거의 예외 없이 스스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치고 나선 것이야말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영향력을 말해주는 좋은 방증”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정치적 소비주의운동가들은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는 슬로건도 내세웠다고 해요.

나쁜 기업을 불매하는 ‘보이콧’뿐 아니라 좋은 기업을 소비하는 ‘바이콧(buycott)’도 권장되고 있어요. ‘돈쭐’이 대표적인 바이코팅 운동인데요, 최근 소비자들이 ‘좋은 사장님/기업의 물건을 많이 팔아주자’는 뜻으로 ‘돈(으로 혼)쭐을 내주자’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율적인 소비자 주권이 있어서 시장경제는 윤리적 가치, 환경적 가치, 동물복지와 생명다양성의 가치 등 다층적 가치를 포괄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이를 통하여 불평등, 환경 파괴, 불공정 무역과 착취 등 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장 내의 기제가 마련된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비자의 윤리적 소비가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칼럼에 이렇게 썼습니다.

2. 제도권이 바통 이어받아야

불매운동의 영향이 시장에만 머무르면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시장 특성상 돈이 많아 구매력이 큰 소비자는 더 큰 영향력을, 구매력이 작은 소비자는 더 작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거든요. 더불어 전문가들은 “공적인 문제를 개인 소비자의 책임으로 환원시키고, 시민에게 소비자로서의 정체성만 부각시키”는 문제가 있으며 “계급 투쟁 대신 모든 문제를 소비자 관점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소비자 운동은 모든 시민이 정치적으로는 동등한 주권을 가진, 정치의 영역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2018년 피죤, 남양유업 등 소유주의 갑질로 불매운동의 대상이 된 기업을 추적한 반기웅 기자는 <갑질 기업의 반성은 그때뿐이다> 기사에서 “‘갑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갑은 잠시 잊힐 뿐 결코 반성하지 않는다”며 “갑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미비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반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하도급법과 제조물책임법에 일부 도입돼 있다지만 배상을 인정받기 위한 요건이 까다로워 활성화되지 못했다. 증권분야에 한정적으로 도입된 집단소송제 역시 소송 제기 절차가 어려운 데다 높은 비용부담으로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갑질 근절과 을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발의된 공정거래법과 상법 등 공정경제 관련법안 13개는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15년 전국주부교실중앙회 등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원들이 경품 행사를 통해 입수한 고객 개인정보를 불법 유출한 홈플러스 불매운동 선포식을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2015년 전국주부교실중앙회 등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원들이 경품 행사를 통해 입수한 고객 개인정보를 불법 유출한 홈플러스 불매운동 선포식을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소비자 불매운동의 바통이 정치권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2010년대 중반, 소비자들은 개인정보를 불법 거래한 홈플러스 등에 대해 불매운동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2019년 국회는 되려 ‘데이터 3법’을 통과시켰어요. 데이터 3법은 기업이 개인의 동의 없이도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줬습니다. 정치권이 소비자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은 것입니다.

천혜정 교수도 “한국 사회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불매운동의 배후에는 소비자의 의식 부족이 아니라 문제 기업에 대한 강력한 처벌의 부재가 있다”며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공적인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분노는 넘쳐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도를 마련해 기업을 압박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무력감을 학습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분노마저 미약해지는 사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고용노동부는 올 초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계열사 샤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고용노동부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노동부가 어디까지 책임을 묻고, 얼마나 구체적으로 개선을 요구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3. 불매운동의 딜레마: 반민주적 불매운동

불매운동에도 딜레마가 있어요. 불매운동이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데 활용되기도 하거든요. 천혜정 교수에 따르면, 1930~40년대 나치는 유대인 기업 불매를 주도했습니다. 20세기 들어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불매운동이 있기도 했고요. 스타벅스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을 때, 맥도날드가 ‘게이 프라이드 감자튀김’을 상품으로 내놓았을 때 미국결혼협회 등이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차별적 불매운동’ ‘반민주적 불매운동’은 한국에서도 있었어요. 2018년에는 ‘메갈 게임 목록’이 공유됐고, 게임계 여성인력을 상대로 대대적인 ‘사상검증’과 퇴출이 이뤄졌습니다. 2021년에는 GS25를 비롯한 기업과 공공기관이 ‘남성 혐오’ 논란에 휩싸여 불매운동 대상이 됐고요. 천 교수는 이를 두고 “반민주적·차별적 불매운동”이라 표현했으며, 강준만 교수도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사회적 약자 탄압의 양상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강 교수는 “올바르지 않은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올바른 정치적 소비자 운동으로 깨는 것”이라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2018년 게임 업계 ‘메갈 사냥’ 이후, 피해를 본 작가 14명은 ‘내일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를 열기 위해 소셜 펀딩을 해서 목표액의 1000%가 넘는 약 9400만원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2019년 일부 남초 인터켓 커뮤니티 사이트의 평점 테러를 받은 영화 <걸캅스>는 개봉 후엔 여성들의 응원에 힘입어 손익분기점을 넘겼고요.

더 나은 불매운동을 위해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할까요. 오늘도 불매운동을 이어나가는 이유에 대해 ‘DB’ 독자님이 남기신 이야기를 전하며 점선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불매운동과 환경운동은 함부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이 아니라고 느껴져도 이 행동이 나아가 큰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한다는 점에서요. 개인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치지 않고 사회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SPC가 개선의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계속 불매할 예정입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불매운동, 효과 있을까?

소비자 운동이 시장에만 갇히지 않고 제도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정치가 응답해야 합니다. 차별이나 혐오를 조장하는 ‘반민주적 불매운동’에는 자정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 줄 점선면

▶ SPC그룹처럼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없는 기업, 갑질 기업 등을 향한 불매운동이 점점 대중화하고 있어요.

▶ 잘못을 저지른 기업들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도 경영 관행을 개선하지 않고 ‘갑질’을 반복합니다.

▶ 전문가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등 기업을 처벌하고 가맹점을 보호할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불매운동, 효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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