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에 갇힌, 그날의 진실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이태원 수사관’은 더 묻지 않았다

2023.12.19 06:00 입력 2023.12.19 11:54 수정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비상 행동에 돌입했다. 이들은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에서 희생자 분향소 설치 1주기를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0일까지 159시간 비상 행동을 시작한다고 알렸다. 야당 주도로 지난 4월 발의된 특별법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여당은 ‘이미 광범위한 수사와 조사가 이뤄졌다’며 특별법 제정을 반대한다. 유가족들은 왜 여전히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할까.

참사와 관련된 논의는 주로 실정법에 따른 책임을 따져묻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사전예방·사후대응에 실패한 이들을 찾아내 죗값을 묻자는, ‘책임자 처벌’ 구호가 블랙홀처럼 논의를 빨아들였다. 정작 재난관리에 어떤 문제가 있었으며 참사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각 기관의 조직문화와 체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는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특히 행정안전부, 서울시, 경찰 공무원 등 수사 과정에서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이들과 조직·체계의 ‘구조적 무능’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소속 활동가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23.12.18 한수빈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소속 활동가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23.12.18 한수빈 기자

이태원 참사를 수사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행안부 수사기록을 확보해 살펴보면 이 같은 구조적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행안부는 사고 책임과 관련해 거론된 정부기관들 중 특수본 수사에서 가장 비켜나 있던 기관이다. 특수본은 행안부 관계자 총 36명을 광범위하게 조사했지만 형식적인 문답이 오가는 수준에 그치는 장면이 곳곳에 나타났다. 수사 의지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동시에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이라는 방법론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내가 무슨 일 하는지 모르는 공무원

“모르겠습니다.” “답하기 곤란합니다.”

이태원 특수본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행안부 공무원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다. 당시 행안부 재난협력실 사회재난대응정책과장은 비상 근무 범위, 긴급문자 수신 후 조치, 매뉴얼 존재 여부 등에 대해 모두 모른다고 답했다. “(인명피해가 적힌) 내부 긴급문자(크로샷)을 받았을 때 대형 재난이라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그냥 사고가 났구나, 그런 생각만 들었다”고 했다. 사회재난대응정책과는 자연재해가 아닌 화재, 붕괴 등의 사고를 총괄하는 부서다.

개정 전 행안부 업무분장을 보면, 참사 당시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 산하 재난협력실(현 사회재난실)은 ‘예기치 못한’ 대형·복합재난의 대비체계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적시돼 있다. 재난협력실 소속 부서인 사회재난대응정책과 책임으로는 사회재난과 관련한 ‘사전대비·대응·수습 총괄’이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담당과장은 “우리 부서는 사전예방하는 기능은 없고, 사후 대응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수사관이 유형화된 재난 외의 재난에 대비해 대책을 만든 적이 있는지 묻자 “제가 (이 자리에) 온 이후로는 없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는 그가 해당 보직을 맡은 지 2주 됐을 때 발생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소속 활동가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23.12.18 한수빈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소속 활동가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23.12.18 한수빈 기자

특수본은 보름 뒤 그보다 부서 근무 경력이 많은 팀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답변은 다르지 않았다. 2021년 5월부터 해당 부서에 있었던 그는 ‘재난 예방’은 담당업무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사후 대응을 위주로 한다”면서 “‘사전대비’는 재난이 발생한 후 유사한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 수립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진술했다. 수사관이 “조항만 보면 사전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으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만 답했다. 이어 “예방을 담당하는 부서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는 “한 부서를 특정하기는 곤란하다”는 답을 내놨다. 수사관은 그를 더 추궁하지 않았다.

더 묻지 않은 특수본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이태원 수사관’은 더 묻지 않았다[수사에 갇힌, 그날의 진실]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 관계자들도 법령이 정한 내용과 모순되는 진술을 했다. 상황실 업무에는 ‘위기징후 분석·평가·경보발령에 관한 사항’이 적시돼 있다. 그러나 상황실 소속 서울상황센터 관계자는 “(관련 업무는) 세종시 상황담당관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정작 상황담당관 직원은 “잘 모르겠지만 별도의 위기징후 분석·평가는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왜 법이 정한 업무가 실무에서 유명무실화됐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특수본은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는 행안부 관계자들의 빈틈을 파고들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가 사회재난에 속하는지, 장관이 ‘주의 의무’를 다했다고 보는지, 재난을 예측했다면 어떤 매뉴얼을 만들었을지 등에 대해 “답변이 곤란하다”는 데서 진술이 끝났다. 그러면서 “시스템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재난협력실 소속 재난안전점검과장은 “위험요인을 선제적으로 발굴, 개선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면서도 “현재는 (지자체 통보 없이) 위험 가능성을 인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고 말했다.

특수본 수사는 행안부 팀장·과장급 공무원만 소환조사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특수본은 행안부 관계자 총 36명을 조사했지만 고위직에 대해서는 재난안전상황실장(국장급) 외에는 직접 조사를 하지 않았다. 시스템을 만들고 조정할 권한이 있는 책임자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니 재난 시스템이 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변도 제대로 나올 수 없었다. 특수본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관한 수사보고서에서 “행안부가 사전에 이태원 사고의 위험성에 대해 보고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10.29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졌던 현장. 권도현 기자

10.29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졌던 현장. 권도현 기자

천윤석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태원참사 태스크포스 소속 변호사는 “행안부 공무원들이 업무에 대해 부인하거나 모순된 진술을 하면, 여러 가능성을 다양하게 거론해 뭐가 문제였는지 치밀하게 따져 들어갔어야 했다”면서 “적당히 물어보고 지나가면 수사가 아니라 그냥 문답인 것”이라고 했다. 천 변호사는 “많은 사람을 소환했더라도 정해진 것만 형식적으로 물어보고 돌려보낸 수준이라면 소용이 없다”며 “특히 국장급 이상에 대해 직접 조사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을 수사에 맡겨둔 방법론 자체의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활동을 했던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는 “형사처벌을 전제하는 수사 특성상 관련자들은 최대한 방어적으로 진술할 수밖에 없고, 수사하는 입장에서도 혐의 구성에 직접 연관이 있는 사실관계가 아니면 더 깊이 조사할 이유가 없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수사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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