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에 빠진’ 현대인의 초상

2006.03.01 17:52

“자기, 이 샤넬에 대고 맹세해!”

권오상 ‘the flat 13’

권오상 ‘the flat 13’

미국 ABC 방송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는 친구의 비밀을 남자 친구 에이단에게 이야기한 후, 그 비밀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샤넬’ 투피스에 대고 하게 한다. 성경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잡지광고에 등장하는 명품들이 대신하는 물신주의의 한 단면이다.

3일부터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The Sculpture(조각)’전을 여는 권오상(32)은 홍익대 조각과를 졸업하고 조각과 사진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3가지 시리즈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줄곧 천착한 주제는 단 하나, 광고가 드러내고 있는 이미지다. 광고야말로 명품들에 올리는 반복되는 예배이자 전도가 아닌가. 그래서 한달간 조명작업을 끝내고 그의 전시를 시작하는 전시장 벽 색깔도 보석 브랜드 티파니를 나타내는 하늘색이다.

2001년 시작한 사진조각인 ‘데오도란트 타입’은 막 윗도리를 머리로 벗겨내는 남자, 옷을 입는 여자, 어딘가로 걸어가는 남자처럼 일상의 한 순간을 잡아냈다. 수백장의 사진을 찍어서 틀 위에 잘라서 붙인 이 ‘사진 조각’에 대해 작가는 장르와 주제에 관한 두가지를 짚어냈다. “19세기 로댕이 포착한 것과 같은 ‘순간’을 잡아냈다”는 것과 “그 순간은 바로 광고에서 나오는 동작들”이라는 것이다. 막 좌대 위로 올라가려는 남자를 표현한 ‘스텝’은 패션쇼 무대로 올라가는 광고의 이미지를 모방한 것이기도 하고, 좌대 위로 올라가야 조각의 취급을 받았던 로댕 시대 고전조각에 대한 경의이기도 하다.

권오상 ‘Red sun’

권오상 ‘Red sun’

2003년부터의 시리즈 ‘더 플랫(The Flat)’은 얼핏 보면 그냥 사진이다. 수많은 명품시계와 명품브랜드 보석, 화장품들이 화면 가득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사진 속의 시계와 보석들 뒤에 가느다란 철사가 보인다. 작가는 “수많은 사진가들이 공들여 멋지게 찍은 명품 광고사진을 오려내 뒤에 철사를 대고 ‘사진 조각’으로 세워놓고 찍은 작품”이라며 “저작권 소송이 걸릴 수도 있지만 너무나 많은 사진들이 들어가 있어서 아직 문제 제기는 없었다”고 농담하듯 덧붙였다.

그런데 올해 새로 선보이는 시리즈가 바로 이번 전시제목 ‘The Sculpture’다. 한 대에 몇억원씩 한다는 명품 슈퍼카 람보르기니를 청동으로 만들고 그 위에 주황도료를 입혀 붓자국을 낸 작품. 전통조각의 소재인 묵직한 청동에 현대적 명품자동차의 조합은 마치 로댕이 현대에 되살아난다면 했을 법한 작업이란 느낌을 준다.

작가는 “광고는 현대를 가장 잘 반영해주면서도 약간의 판타지가 곁들여진 매체라서 매력 있다”며 “과거엔 광고가 미술을 많이 차용했지만, 요즘은 미술이 광고에서 차용하기도 하고, 그 이미지들이 서로 계속 꼬리를 물며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돌아가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아라리오가 지난해 중국 및 인도 작가를 전속하면서 함께 계약한 국내 젊은 작가 10명 중 첫 개인전이다. 다음달 9일까지. (041)551-5100

〈이무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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