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한국에 추상미술 소개’ 박서보 개인전

2010.12.01 19:07
임영주 기자

“캔버스는 내 생각을 비워내는 마당”

“나는 그림은 수신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수신 과정의 찌꺼기가 그림일 따름입니다. 때문에 그림은 생각을 토해내어 채우는 마당이 아니라 비워내는 마당인 것입니다.”

문화적 불모지였던 1950년대 한국 미술계에 추상미술을 소개한 박서보의 작업세계 40여년을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지난달 팔순잔치를 열 정도로 건강을 회복한 그는 다시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

서울 성산동 작업실에서 작품 앞에 선 박서보 작가.  국제갤러리 제공

서울 성산동 작업실에서 작품 앞에 선 박서보 작가. 국제갤러리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연필로 끊임없이 선을 그은 전기 묘법시대(1967~89)를 지나 한지를 풀어 물감에 갠 것을 화폭에 올린 뒤 도구를 이용해 긋거나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 후기 묘법시대(89~현재),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시작한 유채색 모노크롬 작업까지 묘법의 변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총 50여점이 본관과 신관을 채웠다. 한국의 대표적인 화랑인 국제갤러리가 2007년 신관을 연 이후 본관과 신관 전체를 한 작가의 작품만으로 채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갤러리 전시와 함께 오는 10일부터 부산시립미술관에서도 초기 구상작업과 ‘원형질’ 작업으로 대규모 전시회가 열리는 데 이어 11일에는 부산 조현화랑에서도 개인전이 열린다. 작가는 “이전에는 내가 늙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지난해 쓰러지고 난 후 실감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몸이 많이 좋아져 새벽 4시까지 작업하기도 한다”며 “전시 때문에 대작이 엄청 빠져나갔는데도 작품 수장고가 조금만 빈 듯해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작가는 40여년 이상 계속해 온 묘법 작업은 자신에게 ‘수련’이라고 말하면서 “수련을 통해, 캔버스에 내 생각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비워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21세기는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빠릅니다. 스트레스 병동이지요. 예술도 이런 디지털 시대에 대응해 변화해야 합니다. 스트레스가 심한 인간의 정서를 치유하는 쪽으로 가야 예술이 살아남을 수 있어요. 예술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디지털 기술을 강조할수록 사람들의 정신은 더욱 힘들어질 거예요. 과거 그림이 작가의 세계를 쏟아내는 폭력적 방식을 갖고 있었다면, 지금의 그림은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흡인지처럼 빨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형태와 색깔을 갖고 있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최대한 간결하고 단순하게 표현하면서 구도와 비움, 자기 정화, 치유를 추구하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은 “검정도 아름답고, 빨강도 강하지 않다”고 말한다. “현대미술은 너무 개념적인 것이 문제이며, 너무 지적으로만 파고들면 막힌다”고 말하는 그는 “개념을 감성으로 뒤덮을 수 있어야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내년 1월20일까지.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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