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메이드 인 팝랜드’전
“앤디 워홀 식의 팝아트가 아닌, 우리 시대에 부합하는 팝아트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메이드 인 팝랜드(MADE IN POPLAND)’는 이 같은 질문으로 만든 전시다. 널리 알려진 서양의 팝아트 형식만 들여와서 만들어진 팝아트가 아닌, 다른 방식의 아시아적 팝아트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팝아트는 대중매체와 대중문화, 대량 소비사회의 범람하는 이미지들을 차용, 전용, 복제해 재맥락화하는 미술 양식. 때문에 아시아의 팝아트는 아시아 대중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게 된다. 형식보다는 내용적 측면에서 아시아적 상황을 보여주는 팝아트 전시를 위해 1980년대 후반 이후 대중매체와 대중문화 이미지에 근간한 한·중·일 3국의 현대미술 작가 42명의 150점을 전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권호 학예연구사는 “한국의 팝아트는 앤디 워홀이나 유럽의 팝아트 양식만 들여와 만들어졌다는 평가도 있어서 팝아트의 실체를 살펴보고자 했다”며 “일본, 중국과 비교하면 그 모습이 분명히 보일 것 같아 아시아권에서 대중사회·문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을 모아 구성했다”고 말했다. “넓은 의미의 팝아트를 보여주는 전시이자, 팝아트란 고정관념을 깨고자 한 전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네 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과거에 영웅은 역사적 인물이나 정치 지도자 등으로 단순했지만 대중문화의 홍수 속에서 영웅은 슈퍼맨 등 대중문화 캐릭터, 유명 브랜드, 연예인 등으로 다양화됐다. 첫번째 주제 ‘대중의 영웅’에서는 대중이 자신의 삶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담아 만든 또 다른 영웅의 의미를 찾아본다. BMW 로고로 문신한 신체를 표현한 김준의 사진작품 등이 전시된다.
‘스펙타클의 사회’에서는 대중매체에서 조장하는 소비문화가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모습을, ‘억압된 것들의 귀환’에서는 대중매체 산업의 발달로 금기시됐던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즐기는 새로운 문화의 등장을 보여준다. 미디어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쉽게 접하고, 그럼에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에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은 ‘타인의 고통’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한·중·일 유명 작가의 작품이 대거 등장한다. 한국의 홍경택·이동기·정연두·이불·최우람·이형구·김동유 등과 중국의 웨민쥔·정 판즈·왕 광이, 일본의 나라 요시토모·무라카미 다카시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이런 구성 때문에 기획자의 의도를 떠나, 이 전시는 일반 관람객들이 즐기기 좋은 전시다. 한·중·일 삼국의 현대 사회 모습을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구성은 약점이 되기도 한다. 기획의도에서 말한 대로 팝아트의 의미를 너무 넓게 잡다보니, 오히려 ‘굳이 팝아트라고 이름붙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작품들도 많다. 다양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방대하게 모아 놓은 전시에서 전시 제목에서 말하는 주제의식을 찾으려 하다보니, 이 전시로 작품의 새로운 면을 감상할 수 있게 되기보다는 작품이 전달할 수 있는 느낌이 오히려 한정되는 것 같다. 관람료 성인 5000원. 전시는 내년 2월2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