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피에타, 암매장, 대동세상…판화로 본 5·18항쟁

2018.05.17 16:21 입력 2018.05.17 16:26 수정

광주시립미술관과 5·18기념재단이 공동 개최한 ‘2018 민주·인권·평화 세계 민중 판화’전에 다녀왔다.

▶기사보기 : 권력이 짓눌린 참혹한 시대, 민중을 위한 예술의 역할 환기

한국 오윤(1946~1986), 독일 케테 콜비츠(1867~1945)와 일본 도미야마 다에코(1921~) 3인전이다. 세계 판화전인데 세 사람? 작품 무게나 의미로 보면 부족함이 없다. 세 사람 작품을 눈으로 본 건 처음이다. 광주를 그린 도미야마 다에코는 일본 전쟁 책임과 반성을 줄기차게 촉구한 지식인이자 예술가다. 1980년 도쿄에서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듣자마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한달 동안 작품에 매달렸다. 그 작품이 ‘쓰러진 사람들을 위한 기도-1980년 5월 광주’ 연작이다.

도미야마 다에코, 광주의 피에타, 1980, 실크스크린, 41.5x56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도미야마 다에코, 광주의 피에타, 1980, 실크스크린, 41.5x56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도미야마 다에코, 광주의 레퀴엠, 1980, 실크스크린, 57.5x30.5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도미야마 다에코, 광주의 레퀴엠, 1980, 실크스크린, 57.5x30.5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도미야나가 슬픔과 절망의 상황만 묘사한 건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시민들을 그려내기도 했다.

도미야마 다에코, 시민의 힘, 1980, 리놀륨판 99.5x139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도미야마 다에코, 시민의 힘, 1980, 리놀륨판 99.5x139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도미야마 다에코, 자유광주, 1980, 리놀륨판, 71.5x72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도미야마 다에코, 자유광주, 1980, 리놀륨판, 71.5x72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5월 광주와 판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바로 홍성담이다. 홍성담은 도미야마 다에코와 인연이 있다. 1998년 한국과 일본에서 광주학살을 주제로 2인전을 열었다. 그는 “1980년대 내내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도미야마와 나, 두 사람이 서로 얼굴도 모른 채 동일한 주제의 그림을 그리다가 1998년 최초로 만나 의기투합이 되었다”고 했다. 두 사람 인연은 최근 출간한 <5월>(단비)에 나온다. 책 부제는 ‘5·18광주민중항쟁 연작판화’인데, 5·18을 소재로 작업한 판화 50점을 묶은 것이다. 홍성담의 연작엔 광주의 분노와 투쟁,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의 기록이 빼곡하다. 홍성담은 50점 각각에 붙여 시도 썼다.

홍성담, 햇불행진, 25.5x43cm, 목판, 1983. 단비 출판사 제공

홍성담, 햇불행진, 25.5x43cm, 목판, 1983. 단비 출판사 제공

‘길을 따라 한없이 이어졌다/세상의 모든 길이 불을 밝혔다/어두운 밤을 물리칠 씨앗//우리는 그 날/땅 속 깊이 심었다/불꽃’(‘햇불행진’ 전문)

경향신문은 17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일부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무등산에 암매장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단독]5·18 진압 7공수, 10일간 무등산에 남아 시민 암매장 의혹 홍성담의 이번 화집엔 ‘암매장’도 들어갔다.

홍성담, 암매장, 34.2x26.2cm, 고무판, 1989. 단비 출판사 제공

홍성담, 암매장, 34.2x26.2cm, 고무판, 1989. 단비 출판사 제공

“아무도 몰라/내가 어떻게 죽어 갔는지/내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아무도 몰라/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그들의 작전지도에서 지워져 있는 곳/나도 몰라(하략)”(‘암매장’ 중에서)

다음 ‘동생을 위하여’는 오월항쟁 당시 전남대 학생회장으로 학생 시위를 이끌던 박관현과 그 누나를 그린 것이다. 박관현은 누군가의 밀고로 1982년 체포된 뒤 광주교도소에서 수감하다 5·18진상규명과 재소자 처우개선을 외치며 단식투쟁을 하다 쓰러져 전남대 병원에 이송된 뒤 숨졌다. 홍성담은 영안실에서 동생을 부둥켜안고 절규하던 모습을 직접 봤다고 한다.

홍성담, 동생을 위하여, 16.5x27cm, 목판, 1983. 단비 출판사 제공

홍성담, 동생을 위하여, 16.5x27cm, 목판, 1983. 단비 출판사 제공

“발/저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고/발/저 발로 마당을 내려와/발/저 발로 잔디밭을 가로질러/발/저 발로 거리를 달리고/발/저 발이 오늘 내 품에 안겨/발/저 발이 오늘 내 눈물을 받고 있다/발”(‘발’ 전문)

홍성담, 대동세상-1, 42x55.5cm, 목판, 1984. 단비 출판사 제공.

홍성담, 대동세상-1, 42x55.5cm, 목판, 1984. 단비 출판사 제공.

“사람을 부른다/사람이 사람을 부른다//세상의 순결한 이름들이/서로 눈길로 답하고//용기 있는 사람들이 서로 살을 부빈다//오늘/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세상이다”(‘대동세상-1’ 전문)

광주시립미술관 전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민중 판화전’ 대표격으로 내세운 작가는 콜비츠다. 콜비츠는 한국 민중미술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십수 년 전 평전을 읽은 적이 있었다. 책 도판만 해도 강렬했는데, 실제 판화작품은 그 강도나 감동이 더 컸다. 전시장 콜비츠 섹션 벽면엔 이런 글이 있었다. “나의 작품 행위에는 목적이 있다. 구제 받을 길 없는 이들, 상담도 변호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나의 예술이 한 가닥 책임과 역할을 담당했으면 싶다”는 글이 적혀 있다. 콜비츠 작품은 15점 나왔는데, 작품에 묘사된 이들은 ‘구제 받을 길 없는’ 이들이다.

케테 콜비츠, 어머니들, 1922-23, 목판, 34x40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케테 콜비츠, 어머니들, 1922-23, 목판, 34x40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1921~23년 제1차세계대전 참상을 고발한 ‘전쟁’ 연작 판화 7점이 나왔다. 제목은‘희생’, ‘지원병들’, ‘부모’, ‘어머니들’, ‘사람들’, ‘과부Ⅰ’, ‘과부 Ⅱ’. ‘어머니들’은 제1차세계대전 때지만, 광주에 대입해도, 팔레스타인에 대입해도 상관없다. 콜비츠의 작품은 특수 상황을 묘사하면서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농민전쟁’ 연작 중 하나인 1906년 작 ‘쟁기 끄는 사람들’도 그렇다. 인간 이하의 취급과 착취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다.

케테 콜비츠, 쟁기 끄는 사람들, 1906, 에칭 에쿼틴트, 31.4x45.3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케테 콜비츠, 쟁기 끄는 사람들, 1906, 에칭 에쿼틴트, 31.4x45.3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케테 콜비츠, 자화상, 1934, 석판, 20.8x18.7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케테 콜비츠, 자화상, 1934, 석판, 20.8x18.7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1980년대 민중미술 대표 작가인 오윤의 작품도 출품됐다. 도깨비 같은 전통 소재를 끌어들여 한과 신명 같은 민중들의 정서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삽화를 많이 그리기도 했다.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표지화를 그리기도 했다. 전시엔 오윤의 삽화가 들어간 책도 전시중이었다.

오윤, 애비, 1981, 목판, 36x35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오윤, 애비, 1981, 목판, 36x35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오윤, 춘무인 추무의, 1985, 고무판 채색, 63.5x47.5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오윤, 춘무인 추무의, 1985, 고무판 채색, 63.5x47.5cm.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