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와 페트병, 버려진 것들을 미학 도구로…소수자를 위한 진혼과 위로의 작업 진행하는 하차연

2021.08.05 13:16 입력 2021.08.05 23:33 수정

엇비슷한 모양의 형상이 액자 20개에 담겨 전시장 벽에 걸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질감도 두드러진다. 검은색 유화 물감으로 그린 추상화일까.

“비닐봉지에요.” 지난달 24일 서울 서교동 대안공간 루프에서 만난 작가 하차연이 말했다. “추모 뜻으로 각각의 액자에 담았어요.” 작품명은 ‘스터디 리턴 홈’이다. ‘리턴 홈(Return Home, 집으로)’은 8년 만의 한국 개인전 제목이기도 하다.

‘집으로’는 난민의 비극을 담았다. 2009년 아프리카 대륙을 탈출한 난민들의 배가 지중해에서 난파했다. “그 주검들이 다시 해류에 밀려 리비아 해안에 떠밀려와 널브러졌는데, 시커먼 비닐봉지들이 주검마다 씌워져 있는 거예요.” 하차연은 당시 뉴스를 보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 콩고 출신 난민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도 떠올렸다. “그 마을에서 제일 건강하고, 똑똑하며 정신력도 강한 친구들을 선택해 배에 태운다는 거예요. 유럽에 도착하면 불법 체류자로 살며 일해 번 돈을 마을에 보내는 거죠.”

‘스터디 리턴 홈’과 ‘집으로-지중해 난민들을 위한 헌정’.

‘스터디 리턴 홈’과 ‘집으로-지중해 난민들을 위한 헌정’.

영상 작품 ‘집으로-지중해 난민들을 위한 헌정’. 하차연은 난민들이 더 이상 부유하지 말라는 뜻으로 비닐봉지에 유리판을 얹었다. 비닐봉지는 희생자들의 관이기도 하다.

영상 작품 ‘집으로-지중해 난민들을 위한 헌정’. 하차연은 난민들이 더 이상 부유하지 말라는 뜻으로 비닐봉지에 유리판을 얹었다. 비닐봉지는 희생자들의 관이기도 하다.

하차연은 영상 작품에서 추모와 위로의 제의를 실행한다. ‘집으로-지중해 난민들을 위한 헌정’은 프랑스 브르타뉴 두아르네 해변에서 진혼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작가의 모습을 담았다. 하차연은 바다에 띄운 비닐봉지를 하나하나 육지로 끌어올려 모래에 놓은 뒤 유리판을 봉지마다 얹는다. “비닐봉지는 이들의 시신이며 액자는 관(棺)이기도 합니다. 더 부유하지 말라는 뜻으로 유리판을 얹었고요.” 그는 유럽 전시 때마다 이 작품을 전시한다. “유럽 땅에 끝내 당도하지 못한 그 영혼들에 유럽 여행을 시켜주는 거죠.” 영혼들의 여행지에 한국도 추가된 셈이다.

비닐봉지는 하차연이 즐겨 쓰는 오브제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 때 하차연은 ‘비닐봉지 설치 작가’로 소개됐다. 2008년 작 싱글 채널 비디오 영상 작품인 ‘Balade de Carola(캐롤라의 여정)’도 이번 개인전에 내놓았다. 영상은 파리 생 마르탱 운하 주변에서 우연히 만난 비닐봉지의 여정을 좇는다. 이 봉지는 보행도로와 차도의 경계를 위태롭게 오간다. 차바퀴에 깔릴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비켜난다. 사람 발에 챈 뒤 다시 길바닥 위를 스치듯 날아간다. 비닐봉지의 여정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이들을 떠올린다. 풍파에 휘둘리는 인생을 대입해본다.

우연히 조우한 비닐봉지를 좇아가는 내용의 영상 작품. ‘캐롤라의 여정’.

우연히 조우한 비닐봉지를 좇아가는 내용의 영상 작품. ‘캐롤라의 여정’.

왜 비닐봉지인가? 하차연은 “버려진 것을 다시 제 손을 거쳐 좀 쓸모 있게 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의 작업은 ‘쓸모없음’의 ‘쓸모’를 찾는 일이다. 영상 작품 ‘컬렉팅’은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하차연이 파리의 한 아파트 단지 공동 쓰레기 적치 구조물에서 비닐봉지를 골라내고, 집에 가져가 빤 뒤에 빨랫대에 말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업 과정은 수행과 비슷하다. 코로나19 시대에서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컬렉팅’은 2020년 작품이다. 그는 “위험한 걸 모르는 건 아니다. 그냥 뭔가 홀린 듯이 한다”고 말한다.

하차연 ‘컬렉팅’. 그는 작업에 쓸 비닐봉지를 직접 수거한다.

하차연 ‘컬렉팅’. 그는 작업에 쓸 비닐봉지를 직접 수거한다.

하차연 ‘컬렉팅’. 검정비닐봉지를 쓰레기통에서 고르고, 쌓고, 빨고, 말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비닐봉지는 작품에 쓴다. 대안공간 루프 제공

하차연 ‘컬렉팅’. 검정비닐봉지를 쓰레기통에서 고르고, 쌓고, 빨고, 말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비닐봉지는 작품에 쓴다. 대안공간 루프 제공

이처럼 하차연은 쓸모없는 것들을 자기 미학의 도구로 삼는다. ‘쓸모없다’고 폐기된 또 다른 미학의 도구가 페트병이다.

프랑스 님므 대학에서 공부할 때인 1987년 작업실에서 나무 한 그루를 만든다. 생수 페트병을 태워 만든 나무 설치 작품이다. 유독 성분을 마셔가며 페트병을 태웠다. 대량생산 같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을 비판하고, 플라스틱 환경오염을 환기하는 내용의 작품이란 해석이 붙곤 한다.

당시 하차연이 이 작품 앞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이 전시에 나왔다. 사진 속 페트병 기둥은 대형 산불이 난 뒤 몸통과 잔가지만 남은 시커먼 나무 같다. 군사정권 때의 사회적 억압,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현대사에 관한 고통이 이 작품에 은연중 배였다.

하차연이 1987년 패트병 나무 작업 당시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차연이 1987년 패트병 나무 작업 당시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차연은 “초기 유화 작업을 할 때 어두운 숲과 무참히 잘린 나무를 곧잘 그리곤 했다. 둥치에서 흐르는 피 같은 걸 묘사했다. 어두웠던 한국의 정치사회 상황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고 말한다. 숲은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공간, 나무는 희생자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하차연은 현대미술, 설치미술의 난해함을 걷어낸다. 제목에서 작품 뜻을 분명히 밝힌다. ‘매트, 보트, 카펫 - 나의 매트, 가족을 실을 배, 모두를 위한 양탄자’는 페트병과 노끈을 활용한 작품이다. 허술한 페트병 배는 절망의 현실, 이산의 고통을 반영하면서도 가족애라는 보편의 정서와 하늘을 나는 마법의 양탄자라는 희망과 낙관의 전망을 담아낸다.

‘매트, 보트, 카펫 - 나의 매트, 가족을 실을 배, 모두를 위한 양탄자’는 패트병과 노끈을 활용한 작품이다.

‘매트, 보트, 카펫 - 나의 매트, 가족을 실을 배, 모두를 위한 양탄자’는 패트병과 노끈을 활용한 작품이다.

하차연은 비닐봉지 같은 오브제가 상징하는 게 무소속, 탈소속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유럽에 가면 ‘이방인 작가’, 한국에 오면 ‘재불 작가’다. 결국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대변한 게 비닐봉지인 셈이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을 지구에 소속됐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이 지구인은 퍼스펙티브를 항상 낮은 곳에 둬왔다. 소수자, 가난한 이들, 아웃사이더에 대한 강한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

이 작업 때 거리두기란 없다. 2006년 생 마르탱 운하에 텐트를 치고 살던 노숙자들과 35일간 함께 생활했다. 이 공간을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스위트 홈(Sweet Home)’ 시리즈의 출발점이다. 2013년 서울 문래예술공장에서 작업할 때 영등포 쪽방촌을 발견했다. 쪽방 살림을 전시 공간에 재현하곤 ‘둥지 틀기 - 쪽방 프로젝트’라는 제목을 붙였다.

하차연은 유럽에서 이주민과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기력을 소진하기도 했다. 2016년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에 머물면서 정주의 소망을 담은 ‘토지지기’라는 영상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매지리 마을의 흙을 비닐봉지에 담아 산 중턱에 고이 둔 작품이다.

‘매트, 보트, 카펫 - 나의 매트, 가족을 실을 배, 모두를 위한 양탄자’(왼쪽 바닥)와 ‘스위트 홈 4’. 이주와 이산의 고통을 은유한다. 하차연은 1983년 프랑스로 유학 갔다. 프랑스 님므 대학, 독일 브라운쉬바이크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석사 학위도 이곳에서 받았다. 그는 서구 유력 국가의 미술계가 한국인 여성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 선택의 결과가 ‘스위트 홈’ 연작이다.

‘매트, 보트, 카펫 - 나의 매트, 가족을 실을 배, 모두를 위한 양탄자’(왼쪽 바닥)와 ‘스위트 홈 4’. 이주와 이산의 고통을 은유한다. 하차연은 1983년 프랑스로 유학 갔다. 프랑스 님므 대학, 독일 브라운쉬바이크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석사 학위도 이곳에서 받았다. 그는 서구 유력 국가의 미술계가 한국인 여성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 선택의 결과가 ‘스위트 홈’ 연작이다.

이주민들의 강제이주를 은유한 ‘스위트 홈4’. 대안공간 루프 제공

이주민들의 강제이주를 은유한 ‘스위트 홈4’. 대안공간 루프 제공

이번 개인전에 낸 ‘스위트 홈 4’ 영상 작품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제되고 추방된 이주민의 삶을 은유한다. 굴착기는 도로변에서 여행가방, 매트리스, 이불 보따리 같은 물품들을 집어 올려 내동댕이치길 반복한다. 주거와 이동의 필수품인 이 사물들은 강제 이주의 상황에 놓인 이들의 처지를 가리킨다. 자본주의 작동 방식과 이른바 복지사회라는 여러 서구 국가의 빈부차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도 담았다.

하차연이 자리매김하려는 데가 이런 곳들이다. 그는 “놓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수행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장미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작품의 생산성, 상품성엔 관심이 없다. 프랑스와 독일의 미술계는 그에게 이른바 동양적인 것들, 한국적인 것들을 기대했지만, 부응하지 않았다. 그는 “제 작품의 중심은 (상품이나 서구인이 기대하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내가 선호하는 건 동시대 사람과 공감대를 마련하고, 교감하려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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