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가로서 실패자’

2001.06.27 19:14

중국 옌볜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노작가 김학철씨의 산문집 ‘우렁이 속 같은 세상’(창작과비평사)이 나왔다.

1986년부터 최근까지 ‘장백산’ ‘연변일보’ 등에 발표한 글 중 28편을 골라 묶은 이 산문집에서 그는 자신은 소설가로서 실패자라며 대표적인 장편소설 ‘격정시대’에 대해 가차없는 비판을 했다.

“10여년 전에 쓴 장편소설 ‘격정시대’를, 그러니까 70세에 쓴 것을 정리하느라고 83세에 다시 읽어보니 어이가 없다 못해 서글픔이 앞설 지경이니, 이를 어쩌랴. 소설인지 르포인지 아니면 숫제 자료집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 없는 것이다.…내가 끝내 정복을 못하고 만 정상. 그게 바로 이 망할 놈의 소설인 것이다”.

작품 몇 개 써놓고 대가(大家)인양 행세하고 다니는 풍조에 비춰볼 때 노작가의 이런 선언은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다.

그는 또 봉오동전투나 청산리대첩, 일본군 투항사건 등 지금까지 과대포장된 독립운동사를 고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독립군으로서의 전과(戰果)도 ‘열번에 아홉번쯤은 지는 싸움’을 했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조선의용군이 윷진아비마냥 자꾸 지면서도 일본군이 무조건 항복을 하는 날까지 계속 달려든 것’이라고 말한다.

문학과 역사에 대한 꼿꼿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이 산문집에 실린 글들은 딱딱하지 않고 따스한 위트가 넘친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가 그래야 평등하다고 생각하는지 ‘절름발이 할애비’와 뽀뽀를 할 땐 꼭 한 쪽 다리를 들고 한다는 이야기나 이를 잡아 입 속에 넣고 피만 빼먹고 껍데기는 톡톡 다 뱉어버리며 ‘내 피 내가 도루 찾아먹는데 웬 참견이냐’고 항변하는 감옥 동료 류씨 이야기 등은 읽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짓게 만든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보성고보 재학중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조선의용대에 입대했다. 41년 일본군과 교전중 부상을 입어 포로가 됐고 일본 나가사키형무소에 수감됐다.

해방후 월북하여 ‘로동신문’기자로 일하다 중국으로 망명을 했다. 문화혁명 와중에 소설 ‘20세기 신화’ 필화사건으로 중국 추리거우(秋梨溝) 감옥에서 10년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지난 2일 조선의용대 참모장이었던 윤세주 열사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한국에 온 그는 지금 서울 적십자병원에 있다.

겨드랑이 종양 수술을 받았는데 이왕이면 내시경 검사도 받아보자고 한 것이 탈이나 아직도 입원중이다. 한 열흘은 더 있어야 퇴원할 것 같다는 그는 어쨌거나 그 탓에 자신의 산문집 출간을 옌볜이 아니라 서울에서 지켜봤다.

〈윤성노기자 ysn0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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