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의 혁명

2012.08.01 21:57 입력 2012.08.02 01:40 수정
이강진 | 문학평론가·2012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

▲ 일상생활의 혁명 | 라울 바네겜·시울

“자신을 위한 역사의 필요성은 또한 무장 해체된 프롤레타리아트가 잘하면 도달하게 되는 부정적 일관성 안에서 그것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그것은 노동의 급진성을 위협하는 것에 맞선 객관적 경계로서 사방에 존재하는 텅 빈 일관성이다. 내부적으로 노동의 급진성을 위협하는 것은 의식에서 지식과 문화로의 퇴행을 보여주는 지식화, 통제되지 않은 매개자들과 그들의 위험한 관료주의, 기층 게릴라들의 유희적 경쟁심 안에서의 역할들의 소멸보다는 그것들의 갱신에 더 신경을 쓰는, 특권에 대한 집착자들, 그리고 구체적 전복에 대한 포기, 영역의 혁명적 정복에 대한 포기, 분리의, 희생의, 강제노동의, 위계질서의, 모든 형태의 상품이 종말을 향한 국제적 단일한 운동에 대한 포기이다.

[오늘의 사색]일상생활의 혁명

물화가 각자의 창조성에 던지는 도전은 더 이상 이론적인 “무엇을 할 것인가?”에 있지 않다. 그것은 혁명적 사실의 실천 안에 있다. 모든 다른 열정들을 가능케 하는 축이 되는 열정을 혁명 안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쾌락의 그림자만을 가질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상생활의 혁명: 젊은 세대를 위한 삶의 지침서>는 모두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 안에서 개인적 주체성이 자신의 실현을 향해 가는 가장 짧은 길이다. 긴 혁명의 시각에서 그것은 한 지점일 뿐이지만 일반화된 자주관리의 코뮌주의 운동의 출발지점들 중 하나이다. 그것은 하나의 실마리일 뿐이지만 생존의 사회가 그 자신을 향해 발표하고 공장, 시골, 거리의 상황주의자들이 즉각 실행하는 사형 선고의 실마리이다.

우리가 얻을 것은 즐거움의 세계요, 우리가 잃을 것은 권태뿐이다.”

다시 선거철이다. 심판을 벼르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순한 정권교체가 과연 달성된 민주주의의 상태일까?

진정한 가능성은 각자가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재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주의란 눈앞에 놓인 어떠한 제도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기를 열망하는 모든 생활들의 총체를 의미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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