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저항과 실험… ‘자본주의 내부’서 일군 불완전한 천국

2013.11.08 21:47 입력 2013.11.10 15:52 수정

▲ 나우토피아…존 조던·이자벨 프레모 지음·이민주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488쪽 | 2만9000원

‘유토피아’(Utopia)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유토포스’(U-tops)와 행복한 장소를 뜻하는 ‘에우토포스’(Eu-topos)를 합친 말이다. 토머스 모어의 조어대로 여태까지 ‘현실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 존재한 적은 없다. 물론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인류의 노력과 시도는 진보와 약진의 기반이었다. 하지만 집단 특히 국가가 유토피아를 절대 지상 과제로 삼고 완벽과 획일성을 추구했을 때는 강제수용소나 대량학살 같은 처참한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최대 다수의 꿈과 욕망을 제어하고 지배하려는 일부의 환상이야말로 바로 ‘행복의 장소’에 대한 비전을 역사 속의 악몽 같은 순간으로 변질되게 한” 것이다.

[책과 삶]저항과 실험… ‘자본주의 내부’서 일군 불완전한 천국

유토피아 대신 기후 재앙, 경제 위기, 자원 전쟁 같은 디스토피아에 직면한 지구에서 이제 ‘행복할 수 있는 장소’는 없는 것일까. 유토피아는 포기해도 좋은 것일까. 사회운동가인 저자 존 조던과 이자벨 프레모는 21세기 유토피아의 새 비전을 제시한다. 그런 유토피아가 지금 여기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유토피아는 모어의 그것, 구소련의 그것과는 다르다. 불가능한 것, 완벽한 것과 거리가 멀다. 이들은 “완벽한 사회가 곧 나타날 거라는 생각, 그런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바로 유토피아를 속임수로 여기게 만드는 허황된 약속”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이 말하는 ‘여기의 유토피아’ 즉 ‘나우토피아’(Nowtopia)는 구체적이다. 나우토피아는 “자본주의 소비천국이라는 배경에도 근본적으로 다른 현재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방식”이다. 또 나우토피아의 사람들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회가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사회보다 훨씬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저자들은 이상향의 꿈을 실험의 장으로 변화시키려는, 대안 프로젝트를 실천하는 공동체 11곳을 여행했다. 나우토피아의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먹고 생산하고 나누고 공동체에 속하고 함께 결정하고 가르치고 또 기존 질서에 반항하는 대안적 방법”을 수행한다. 이 장소들은 유토피아의 뜻을 지금 실현 가능한 실천의 태도라고 재정의한다. 이 공동체가 있는 곳은 ‘자본주의 내부’다.

기행문과 르포를 결합한 이 책에 처음 등장하는 공동체는 영국의 ‘21세기시민불복종캠프’다. 2007년 여름 1500명의 환경운동가와 시민들이 히스로공항 3활주로 건설 예정 부지를 점거하고 텐트를 쳤다. 활주로 건설을 막기 위해 ‘에코빌리지’를 만든 것이다. 히스로공항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환승객 수가 많은 곳. 만약 히스로공항이 하나의 국가라면 세계에서 일흔한번째로 탄소를 많이 뿜어내는 곳이다. 3활주로가 완공될 경우 연간 탄소 배출량은 케냐와 같은 양이다.

[책과 삶]저항과 실험… ‘자본주의 내부’서 일군 불완전한 천국 이미지 크게 보기

21세기 시민 불복종 운동의 대표 사례로 기록되는 이 캠프엔 위계도, 대표자도 없다. 각 모임에서 번갈아가며 위임된 사람들이 모여 운동 방향을 논의하고 결정했다. 환경캠프답게 태양열 발전 샤워실과 볏짚을 가득 채운 욕조를 만들었다. 양호실은 1970년대에 생산된 캠핑 트레일러를 개조했다. 피자 오븐은 흙으로 빚은 것이다. 영화관은 자전거 에너지로 상영했다. 캠프엔 ‘기후변화는 가난한 자들에게 선포된 전쟁이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21세기시민불복종캠프는 두 가지 방식으로 유토피아 지향 정신을 보여줬다. 우선 뼛속 깊이 민주적이고 철저히 친환경적이었다. 자본주의라는 자멸을 향해 가는 체제가 그 여세를 몰아갈 수 없도록 방해하고 중지시켜야 한다는 근본 신념을 가진 운동이었다. 열흘간 지속돼 결국 활주로 건설을 취소시킨 이 캠프에서 저자들이 강조하는 건 직접행동이다. 직접행동은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해달라고 해당 관청에 요청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세다. 굶주린 사람을 보면, NGO에 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급식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전쟁이 나면 정부에 전쟁을 그만두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게 아니라 전투기를 무장해제시키는 방식이다. 활주로 부지에 모인 이들도 기후변화가 야기할 재난을 그저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탄소 발생의 근원을 없애는 직접행동을 보여주었다. 저자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마치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듯, 이미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사람들인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우리 손으로 직접 건설한 세상이라는 비전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

21세기불복종캠프처럼 나우토피아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환경이다. 17㏊ 크기의 ‘랜드매터스’는 영국에서 생태적으로 가장 지속 가능한 마을이라고 평가받는 곳이다. 이곳의 삶은 느리다. 현대식 부엌이라면 채 10초도 걸리지 않을 물과 불을 얻는 데 3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시내에서 물을 긷고 불을 지펴 식사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삶은 충족적이다. 소비에 집착하는 패션산업 홍보담당자로 일하다가 사표를 쓰고 이 마을로 들어온 한 주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시골에서 사는 게 아니라 지구에서 사는 거예요. 땅과 함께 공생관계를 이루며 사니 뭔가 목적이 생겨나요.” 이들에겐 ‘지구를 돌봄’이라는 가르침이 몸에 배어 있다. 바로 생존을 위한 모든 요소가 에코시스템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다. 지하수를 팔 때도 ‘윤리 문제’를 두고 여러 번 토론했다. 땅을 파고 들어가는 것을 ‘어머니 대지를 피흘리게 하는’ 불경한 짓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지구를 돌봄’은 ‘인간을 돌봄’이란 가치로 이어진다. 이 가치는 “소비지향 사회의 개인주의 폐허 속에서 잊혀진 건강한 공동체와 인간관계를 다시 세우는 데 필요한 능력을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렇다고 랜드매터스 사람들이 세상과 단절한 채 사는 것은 아니다. 톨킨 소설의 호빗이 뛰어나올 것만 같은 풍경이지만 풍력 발전기를 돌려 노트북으로 작업하고, 태양열 발전으로 DJ용 디스크플레이어를 이용한다.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가교와 같은 곳”이다.

[책과 삶]저항과 실험… ‘자본주의 내부’서 일군 불완전한 천국

‘파이데이아 학교’는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운영되는 무정부학교다. 다섯살에서 열여섯살까지 아이들이 다니는 이 학교 식당 벽에는 프루동의 “지배받는다는 것은 감시받는 것이고 규제되는 것이고 교화되는 것이고 훈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또 나무 계단 벽엔 ‘독재자 당신이 보리가 나게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빵을 요구하는가’라는 문장이 적힌 1930년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지배받는 사회를 거부하는 학교의 운영 주체는 학생과 교사다. 점심 메뉴부터 학습과목과 시간표, 갈등 해소까지 모든 사항을 함께 결정한다. 진보적인 저자들마저 당황할 정도로 학교 운영은 자율적이고, 아이들은 독립적이다. 공동 과제 중 하나는 요리인데, 만 다섯살에서 열여섯살 아이들은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를 준비한다. 다섯살짜리 아이가 기다란 칼로 토마토를 써는 모습을 보고 저자들은 불안해한다. 하지만“책임감이나 체험보다는 사회생활에서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려는 의도가 훨씬 중요한, 바로 통제의 문화가 지배하는 세계관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임을 곧바로 자각한다.

학교 목표는 ‘가치’를 기반으로 학생과 교육자의 권리가 동등하게 인정받는 학습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가치는 아나키즘 철학에서 비롯된 평등, 정의, 연대, 자유, 비폭력, 문화 그리고 행복이다. 아이들의 연대는 이렇게 실현된다. 공원에 소풍간 날, 어느 아이가 설사 때문에 더러워진 옷을 벗고 속옷만 입은 채로 화장실 밖으로 나왔을 때, 도시락을 먹던 친구들은 연대정신을 발휘해 그날 내내 모두 속옷 바람으로 지냈다.

나우토피아는 여러 대안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스페인 마리날레다의 농민, 노동자는 어느 귀족의 17만㏊에 이르는 땅에서 1200㏊를 점유하기 위해 수백 번 점거하고 단식 투쟁을 했다. 이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땅을 공동 소유하고 있다. 마리날레다 시는 대출 없이 15유로의 비용으로 사람들에게 주택을 공급한다. 도시 곳곳에 체 게바바라의 이미지가 걸린 이 소도시의 모토는 ‘평화를 향해 가는 유토피아-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이다.

저자들의 여행 경로엔 1968년 5월 혁명 영향을 받아 만든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롱고마이도 포함됐다. 유럽 12개국 출신 청년들이 1972년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유럽, 인권선언에 기초한 공동생활과 협동조합 형태를 바탕으로 한 농사와 수공예, 그리고 산업 분야의 노동을 통한 자체적 생계유지를 실험하는 공간”을 목표로 만든 곳이다. 민영화와 감축을 거부하고 노동자의 자주경영을 관철시킨 제약공장 ‘유고레메디야’가 있는 세르비아의 즈레냐닌, 섹스와 해방된 사랑을 삶의 가장 큰 매력으로 활용하는 독일의 ‘에로틱한 유토피아’ 제그도 찾았다. 알코올 중독자 같은 사람을 쓰레기로 취급하지 않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불안정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스웨덴의 공동체 ‘크리스티아니아’도 다녀왔다. 여행을 마친 저자들은 “유토피아란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을 뜻한다”고 말한다.

책은 나우토피아를 무조건 미화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딜레마와 고민도 다룬다. 어떤 곳은 불화하고 갈등한다. 개발 광풍에 땅값이 오르고 콘크리트에 둘러싸여 위기를 겪는 곳도 있다. 도피처를 찾아온 약물중독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이단 종교집단이라는 비난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기도 한다. 나우토피아는 진행형인 불완전한 천국에 가깝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섬이었다. 저자들이 여행한 장소도 제각각 편재된 작은 섬으로 보일지 모른다. 저자는 “모어가 꿈꾸던 유토피아와는 반대로, 탈자본주의 시기의 유토피아들은 섬이 아니라 반란을 일으킨 일련의 군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시공간 논리에 저항하는 이곳이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책은 신랄한 자본주의 비판서다. 곳곳에서 ‘자본주의의 유토피아’를 거듭 비판한다. ‘영원한 물질적 진보’라는 환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천국은 20세기 유토피아들 가운데 가장 전체주의적이고 이데올로기의 추상적 측면에서 가장 완전한 유토피아일 것이라고 말한다. 대다수 희생으로 일부만 부를 쌓을 수 있는 소비천국 아래서 ‘경제발전’을 나타내는 통계지표는 추상적인 악몽일 뿐이다. 둘러보면, 한국도 자본의 유토피아가 넘친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최저임금도 받기 힘든 ‘알바’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천국(topia)이란 말이 들어간 ‘알바천국’의 광고는 현 사회의 유토피아의 허구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현 정부가 장담하는 ‘행복한 대한민국’이란 유토피아는 또 어떤가.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