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투병 소설가 복거일, ‘역사 속의 나그네’ 26년 만에 완간

2015.07.01 21:30 입력 2015.07.01 21:38 수정
김여란 기자

“암 진단 뒤, 독자와의 약속만 생각했다”

간암 투병 중인 복거일씨(69·사진)가 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문학과지성사)를 26년 만에 완간했다. 2070년대 인물 이언오가 백악기 탐험을 떠났다가 16세기 조선 사회에 좌초한 뒤 미래의 과학 지식으로 조선을 바꿔가는 이야기다. 1991년에 3권까지 출간한 데 이어 이번에 세 권을 추가해 6권으로 펴냈다.

1일 기자들과 만난 복씨는 2012년 간암 진단을 받았던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역사 속의 나그네>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간암 투병 소설가 복거일, ‘역사 속의 나그네’ 26년 만에 완간

“연재를 중단한 25년 동안 왜 안 쓰느냐, 당신 사기꾼이냐며 별 전화를 다 받았어요. 약속 못 지키고 독자를 잃은 아픔이 훨씬 깊었다는 걸 깨달았죠. <역사 속의 나그네> 끝내야지, 병원에 안 갈란다 했습니다. 사람이 곧 죽는다면 정신 집중이 잘된다더니 세 권 쓰는데 1년이 채 안 걸렸어요.”

주인공 이언오는 500년 시차가 불러 온 지식의 간격을 이용해 조선을 근대적 사회로 이끌어 간다. 의학적, 기술적 지식으로 사람들을 돕고 저수지 사업을 벌이며, 반란군을 이끌어 관청을 치기도 했다. 4권부터는 본격적으로 군사를 조직해 노예제를 없애고, 반상은 물론 남녀 평등을 내세우며 이상사회를 실현한다. 현대 지식으로 중세를 발전시키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지식을 얻는 것’을 업이자 꿈으로 여기고, 시장경제와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복씨의 면모가 드러난다. 또 ‘인류 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우리 전통사회의 노예제가 사회 발전을 가로막은 근본 요인’이라고 보는 복씨의 생각도 작품에 풀어놓았다.

소설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주축은 해방된 노예들이다. 복씨는 “자유주의자로서 내 이상은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갖는 것”이라며 “개인들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에 종사하면 사회가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간암 투병 소설가 복거일, ‘역사 속의 나그네’ 26년 만에 완간

복씨는 또 <역사 속의 나그네>를 ‘지적 무협소설’로, 무협소설보다 좀 더 업그레이드된 오락소설을 찾는 독자들을 위한 소설로 설명했다. 이 시대 문학의 역할은 무엇보다 여흥이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하기도 했다.

“1980년대까지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실종되고 언로가 안 트이니까, 문학이 정치와 역사를 대신했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어요. 정치까지도 여흥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문학이 변신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힘듭니다. 어깨에 힘 들어간 신인들이 있는데 우리는 엔터테이너예요. 문학이 감당할 수 없는 걸 짊어지려 하면 문학에도, 작품에도 좋지 않아요. 문학성이라는 게 더해지면 축복이지만 그건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묘하게 찾아오는 것이고요.”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 등 시집 2권을 냈던 복씨는 시집 출간도 준비하고 있다. “시집 2권 더 낼 만큼 써놨습니다. 하나는 생전에 내고 하나는 죽은 뒤에 내려고요, 죽을 사(死)자랑 잘 맞지 않나요(웃음).”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