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봄처녀, 가을남자…날씨와 감수성의 달콤새콤한 발자취

2016.04.01 19:58 입력 2016.04.01 20:00 수정

날씨의 맛 | 알랭 코르뱅 외 지음·길혜연 옮김

책세상 | 332쪽 | 1만6800원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게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 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퍼뜩 깨달았을 때, 사태는 때로는 비통하고 또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1877년 그림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아트 뮤지엄)  책세상 제공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1877년 그림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아트 뮤지엄) 책세상 제공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2014)에 잠깐 등장하는 ‘햇빛’이란 단어를 볼 때 우리는 비슷한 감각을 공유한다. 햇빛은 따뜻하면서도 예리하고 환하면서도 무섭다. 햇빛은 평이한 삶 속 어떤 비밀스러운 순간을 드러내기도 하고, 또는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인생의 뜻하지 않은 일을 저지르게 하는 물질이라고도 느낀다.

300~400년 전 사람들도 햇빛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지금의 우리들처럼 그런 감정, 정서를 가졌을까. 더 나아가 비, 바람, 눈, 안개, 또 뇌우(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내리는 비) 같은 날씨에 대해 예전 사람들은 어떤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었을까. 감수성도 시대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을까. 변화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날씨의 맛> 저자인 알랭 코르뱅은 ‘감각과 감수성 역사 연구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역사학자다. 그는 날씨에 대한 사람들의 감수성 변화상을 살피기 위해 지리·기상·사회·문학 분야 전문가 10명과 함께 작업에 나섰다. 날씨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발자취를 연구한 것이다. 다양한 문학작품은 물론 각종 문헌 등 방대한 자료를 통해 날씨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꼼꼼하게 탐색했다. <날씨의 맛>은 그 결과물이다.

저자는 날씨(기상)에 대한 개인의 감수성이 본격적으로 싹튼 시점을 18세기 말로 본다. 이 시기에 기상과 관련된 수사법이 구축되고 또 세련됐다는 것이다. 당시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때이고, 유럽 미술이 기존 전통으로부터 이탈하며 프란시스코 고야, 윌리엄 블레이크 등 혁신적인 예술가들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책과 삶]봄처녀, 가을남자…날씨와 감수성의 달콤새콤한 발자취

비의 경우를 보자. 르네상스와 근대의 예술가들이 쓴 글에서 표현되는 비는 대홍수의 비였다.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고 공포에 떨게 하는, 한밤중의 악몽처럼 격렬하게 퍼붓는 비다. 이는 성경적인 비로, 현대의 비가 가진 감미로움이나 일상적인 느낌이 거의 없다. 이후 17세기가 되면 비는 물질적인 불편을 주는 존재로 묘사된다. 17세기 중반 프랑스 작가 드 세비녜 후작부인은 딸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서한집’에서 “비와 바람, 추위로 몹시 불쾌한 날씨”라고 썼다. 그는 편지에서 비가 거추장스러운 존재이며, 몸과 마음을 축축하게 만들고, 마차를 타고 가는 데 장애가 된다고 강조했다. 비는 주로 우울한 기분이나 지독한 슬픔, 눈물과 연관돼 언급됐다. 당시 비에 젖는다는 것은 수세기 동안 위생을 유지해준 ‘건조함’을 방해하는 일이었다.

18세기 후반이 되면 비는 감상의 대상이 된다. 프랑스 작가·식물학자인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는 <자연에 관한 연구>(1784년)에서 비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적었다. “비가 오는 광경을 보면 내게 비를 피할 보금자리가 있다는 사실과 바람이 불 때 따뜻한 침대 속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 나 자신의 인간적 비루함이 가라앉음을 느낀다. 소극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화가인 피에르 앙리 드 발렌시엔도 비를 ‘자연에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을 부여’한 것으로 느꼈다. “비는 이 풍경들에 음울한 기품을 부여한다. 강에서 멀리 떨어진 제방 위에 어둠의 베일을 드리우며 비는 이따금 즐거운 거리두기 같은 뭔가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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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에 대한 감수성은 1750년에서 1960년 사이 약 200년 동안 완전히 뒤바뀐다. 18세기까지만 해도 햇빛을 지나치게 쬐면 몸에 해롭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또 무더위와 가뭄으로 인한 재난은 태양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을 더욱 부채질했다. 의사인 조세프 퓌스테는 “햇빛에 노출된 (…)사람과 짐승은 질식사했고 야채와 과일은 햇빛에 시들거나 벌레가 먹었다. 땀이 비오듯 쏟아져 몸은 땀으로 줄곧 목욕을 하는 것처럼 불쾌했다”(1793년)고 썼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면, 건강을 위해 햇빛을 쬐는 것이 권장되고 살균효과 같은 발견이 이뤄지면서 긍정적 측면이 강조된다. 유럽에서 일광욕, 산책 열풍이 대대적으로 일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자신의 소설들에서 충만한 태양을 통해 존재의 진실에 관한 생생한 은유를 만들어냈다. 에밀 졸라는 <사랑의 한 페이지>에서 감미로운 햇빛으로 죽어가는 쥘리에트의 몸속에서 온기가 살아나는 지극히 행복한 감정을 연출했다. 1920년대부터는 부르주아 계층이 휴가를 중시하면서 태양은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풍미와 욕망으로 장식된다. 햇빛은 이제 ‘행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는 피부암 등 때문에 일광욕 예찬이 조금 사그라들기도 했다. 저자 중 한 명인 역사학자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햇빛 특유의 행복한 분위기와 쾌적한 느낌 때문에 근대로 올수록 날씨에 대한 감수성이 획일화됐다고 주장한다.

책에는 비나 햇빛처럼 바람, 눈, 안개, 뇌우에 대한 흥미로운 감수성의 변천사가 펼쳐진다. 공동저자인 마르탱 드 라 수디에르는 날씨에 대한 감수성 역사를 크게 3단계로 구분한 뒤, 우리는 이전과는 새로운 형태로 날씨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날씨만큼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없다”는 롤랑 바르트의 발언이 되새겨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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