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론은 맞다. 그걸 이해 못하는 인간이 틀렸다."

2018.11.23 15:05 입력 2018.11.23 21:17 수정

“100%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 물리학 연구의 방식이라지만,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48)는 오늘도 텔레비전에 나오고,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대중강의를 하고, 여러 매체에 글을 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곳도 인문학공동체인 서울 연희동의 수유너머104였다. 지난 20일 저녁 김상욱은 이곳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누가 죽였나’란 제목의 양자물리학 특강을 하기로 돼 있었다.

대중적 인지도 측면에서 김상욱은 지금 가장 뜨거운 과학자다. 지난 3년간 <김상욱의 과학 공부> <김상욱의 양자 공부> <떨림과 울림> 등 3권의 대중과학서를 내놓았고, tvN <알쓸신잡3>에 출연 중이다. 스스로 “내성적이고 혼자 있기 좋아한다”고 했지만, 그를 찾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김상욱을 만나 대중과 과학의 접점에 대해 물었다. 왜 수식과 전문용어에 익숙하던 전도유망한 양자물리학자는 대중의 언어를 습득하기로 했을까.

물리학자 김상욱  경희대 교수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물리학자 김상욱 경희대 교수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면서요. 그런데 당신은 고등학교 때 양자역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요.

“아버지가 사주신 양자역학 개론서를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해했다기보다는 꽂혔다고 할까요. 이야기가 신기하고, ‘이런 게 물리학이구나’ 싶기도 하고….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긴 하는데, 선생님께 물어봐도 잘 모르시더라고요. 노벨상 수상자가 즐비한 중요한 분야인 것 같은데 제대로 배울 수 없으니 직접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대학교(카이스트)에서도 재미있었나요.

“처음엔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좋아한다고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3학년이 돼서야 조금씩 성적이 오르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인 ‘양자중첩’에 따르면 “한순간 두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양자역학은 나온 지 100년 가까이 된 이론인데 여전히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이런 경우가 흔치는 않을 겁니다. 현대의 공학은 많은 경우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합니다.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도 양자역학의 산물입니다. 컴퓨터 사용에 지장은 없지만, 작동원리는 제대로 모르잖아요. 그 원리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좀처럼 이해가 어렵습니다. 미국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에 실용주의적 태도로 접근합니다. 이론에 모순이 없고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 이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태도입니다. 반면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같은 독일권 학자들은 끝까지 원리를 이해하려다 실패했고요. 알파고의 한 수를 두고 많은 프로 기사들이 ‘틀렸다’고 했는데, 결국 인간이 틀렸잖아요. 모든 과학이론을 인간의 두뇌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 과학이론이 틀린 게 아니라, 그걸 이해 못하는 인간이 틀린 겁니다.”

-양자역학까지 가지 않더라도, 고전 물리학의 이론들도 사실 몸으로 받아들이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당장 지금도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체감하진 못합니다. 물리 법칙을 쉽게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나요.

“17세기까지도 천동설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천동설이 세계를 잘 설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릴레오의 정밀한 관측이나 케플러의 복잡한 타원 궤도 계산이 없었다면 지동설을 지탱하기 어렵죠. 빅뱅 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우주가 최초에 터지는 순간을 보진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모든 과학적 방법은 실험적 증거에 입각한다는 점입니다. 증거가 있는지 먼저 묻는 자세가 돼 있어야 하겠죠. 과학은 ‘믿어라’ ‘외워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그에 맞는 데이터는 언제라도 볼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보어 같은 20세기 초반 물리학자 이야기를 읽으면 그야말로 ‘천재’라는 생각이 들던데요.

“상식적으로 이해 안되는 걸 이해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두뇌는 고도의 수학을 잘하기 위해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음식 냄새를 맡고, 호랑이를 피해 도망가고, 멋진 이성을 감지하는 것처럼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했죠. 뇌도 육체의 일종인 만큼, ‘천재 과학자’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과학 잘하는 능력, 달리기 잘하는 능력, 레고 잘 맞추는 능력이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지난 200~300년간 과학이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했기에 과학자를 대우해주는 것뿐이죠. 조선 시대에도 수많은 뉴턴이 태어났지만 노비로 살다가 죽었을 겁니다. ‘천재’란 시대가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달렸을 뿐입니다.”

김상욱 경희대 교수는 한때의 밀리터리 마니아였다. 그는 이날 만난 곳이 한국전쟁 당시 104 고지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며 한참을 설명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김상욱 경희대 교수는 한때의 밀리터리 마니아였다. 그는 이날 만난 곳이 한국전쟁 당시 104 고지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며 한참을 설명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김상욱의 최근작 <떨림과 울림>을 관통하는 주제는 “우주에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뜻하지 않은 복잡성이 운동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거기에 어떤 의도나 목적은 없다. 생명체는 정교한 분자화학기계에 불과하다”는 문장이 나온다.

-‘우주에 의미가 없다’는 건 과학적 사실이겠지만, 어떤 점에선 충격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라는 문장으로 타협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저도 물리지상주의자였어요. 인간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멸종하더라도 다른 생명체가 살아남지 않겠나 하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붕괴합니다.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라는 주장은 그 변명의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하라리는 역사학자면서 수십만년 전 인류의 탄생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사실에 대한 해명도 시도합니다. 과학자가 보기에 틀린 점은 없나요.

“슈뢰딩거는 물리학자였지만,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통해 과감하게 생명에 대해 언급했어요. 물론 그의 주장 중 많은 부분이 틀렸지만, 슈뢰딩거의 아이디어는 훗날 왓슨과 크릭이 유전 물질을 찾는 길을 열었습니다. 욕먹을 걸 두려워하면 다른 학문 분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틀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용기를 내는 것이 학문간 소통의 자세입니다. 제가 평생 양자 공부만 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우주의 시작부터 인간의 미래까지를 아우르는 글도 써보고 싶습니다.”

-경향신문에 디자인 전문가와 함께 글을 쓰고 계십니다. 현대 학문은 워낙 깊게 세분화돼 있어서,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대화가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죠. 유전자 가위 기술을 연구하는 분들이 연구의 함의를 모르면 안되죠. 가습기 살균제 문제만 해도 과학자들은 그 유해성을 알았을 겁니다. 자기 분야의 사회적 함의를 모르면 깊은 지식은 오히려 해가 됩니다. 저도 인문학자하고 대화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그들의 언어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저도 책에 칸트를 인용했지만, 제가 칸트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소통은 먼저 그들의 언어, 눈높이로 시작해야 합니다. ‘결국 과학이 모두 말할 것이다’ 같은 태도는 좋지 않아요. ‘빅 히스토리’도 역사 전공자인 데이비드 크리스찬이 시작했습니다. 빅뱅, 진화론을 얘기하는데, 처음엔 과학자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었어요. 틀린 부분이 많거든요. ‘인문학자가 이공계 연구비 타먹으려 한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만나보니 존경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역사학자가 마음을 열고 먼저 과학에 손을 내밀었잖아요.”

[백승찬의 나직한 인터뷰]"과학이론은 맞다. 그걸 이해 못하는 인간이 틀렸다."

[백승찬의 나직한 인터뷰]"과학이론은 맞다. 그걸 이해 못하는 인간이 틀렸다."

과학자는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귀가 솔깃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새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그보다 앞선 수백 편의 논문을 검토한다. 하나의 실험 결과를 제시하기 위해 수백 번의 실험을 실시한다. 그렇게 내놓은 결론이 매력적, 획기적이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김상욱은 “좋은 과학 논문의 특징은 새로운 사실의 발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논문의 한계를 명확히 한다는 데 있다”며 “결론을 부풀리려는 욕망은 아주 위험하다”고 했다.

-한국사회는 충분히 ‘과학적’입니까.

“물질적 증거에 입각해 결론내리는 태도, 증거가 없으면 모른다고 말하는 태도를 과학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면 과거에 비해선 많이 나아졌습니다. 언론의 ‘팩트 체크’도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했습니다. 과학적이려면 ‘누가 그렇게 말했다’가 아니라 ‘증거를 대라’라고 말해야 합니다. 보통 ‘증거 대라’는 말을 들으면 ‘밥맛 없는 태도’라고 보거나 ‘날 못 믿냐’고 반응하지만, 증거가 쌓이는 와중에 신뢰도도 높아진다는 점을 알아야죠.”

-매년 10월이면 노벨상 발표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한국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나요.

“과학은 커뮤니티가 만듭니다. 노벨상은 그 커뮤니티 안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받을 가능성이 높고요. 현재 주요한 과학 커뮤니티는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네이처, 사이언스 같은 학술지는 지금 어떤 연구가 중요한지 결정합니다. 우리는 연구 자주권을 빼앗긴 셈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한국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한국의 연구 그룹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니 행복한 일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는다 해도 외국 과학 커뮤니티에 속해있는 한국 국적 과학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노벨상은 특정한 분야를 처음 개척한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예를 들면 지금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군소(바다 달팽이)의 신경을 연구해 학습과 기억의 원리를 밝힌 에릭 캔델이 받는 거죠.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인공지능이 아니라 달팽이 연구를 한다고 하면 연구비를 받을 수 있을까요. 솔직히 우리나라 같은 경제규모에서 기초과학의 저변을 넓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과학자로서 저변이 넓어지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가 국제사회에 속해 있으면 됩니다. 과학엔 국경이 없으니까요.”

-언제 행복하십니까.

“혼자 책 읽거나 영화 볼 때입니다. SF나 역사영화는 거의 챙겨봅니다. 색감을 중시해서 팀 버튼, 타셈 싱, 웨스 앤더슨 같은 감독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대학원 때까지는 밀덕(밀리터리 덕후)이기도 했습니다. 유럽에 들를 기회가 있으면 2차대전 전적지나 전쟁박물관을 찾곤 합니다. 말로 합의하지 못한 인간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모든 자원을 내걸고 싸우는 것이 전쟁인데요, 그런 점에서 전쟁은 역사의 특이점입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이라는 특이점, 국제사회는 2차대전이라는 특이점이 결정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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