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옛 포스터로 꼼꼼히 훑어본 1950~1980년대 한국 영화사의 흐름

2019.03.01 13:34 입력 2019.03.01 20:28 수정

영화의 얼굴

양해남 지음

사계절출판사 | 448쪽 | 3만3000원

[화제의 책]옛 포스터로 꼼꼼히 훑어본 1950~1980년대 한국 영화사의 흐름

소년은 영화 안에 살고 싶었다. 그에게 영화는 곧 세계였지만, 극장을 나서는 순간 곧장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는 고심 끝에 영화를 갖기로 했다.

이 책의 저자이자 국내 가장 독보적인 영화 자료 수집가 양해남 이야기다.

20대 중반인 1989년 수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현재 2400여점의 영화 포스터를 소장하고 있다. 이 중 절반이 유일본이나 희귀본이며 방송이나 영화에서 사용되는 옛 포스터 상당수는 그의 소장품을 복사한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1950~198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 248점을 골라 10년 단위로 한국 영화의 흐름을 개괄한다. 그와 함께 옛 포스터들을 훑다보면 어느새 한국 영화 100년이 손 안에 잡히는 듯하다.

“‘촉석루의 비화’ 왜장을 껴안고 죽은 논개의 설움은?” 1956년 영화 <논개>의 포스터 위의 붉은 글씨가 강렬하다. 직접 그린 논개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비장한데 그 아래 배치된 흑백의 전투 장면은 조악하다. 지금 보기에는 다소 산만한 포스터지만, 6·25전쟁으로 피폐해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다. <논개>는 앞서 개봉해 흥행을 거뒀던 <춘향전> 이후 대거 등장한 사극 영화 중 하나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광복영화’로 불렸다. 그렇게 1950년대 한국 영화는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 매체로 자리매김했다.

김기영 <화녀>(1971) 포스터 ⓒ양해남 컬렉션

김기영 <화녀>(1971) 포스터 ⓒ양해남 컬렉션

‘한국영화의 황금기’ 1960년대가 시작되자마자 우리 영화사의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가 펼쳐진다. 신상옥·최은희의 <성춘향>과 홍성기·김지미의 <춘향전>이 격돌한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춘향전을 원작으로 한 데다 감독과 배우가 부부 사이였기에 대결 구도가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포스터만 맞대 봐도 긴장감이 팽팽하다. 두 작품 모두 와이드 스크린을 뜻하는 ‘시네마스코프’를 강조했고 춘향이 몽룡에게 다소곳이 안긴 모습을 내세웠다. 결국 1961년 1월 설을 앞두고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승리는 신상옥·최은희 부부에게 돌아갔고, 홍성기·김지미 부부는 영화의 흥행 실패와 함께 파국을 맞는다.

이처럼 저자는 포스터마다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감독과 배우에 얽힌 흥미진진한 일화, 포스터 디자인과 제작 방식, 레터링과 카피 작법의 변화 등을 꼼꼼히 짚었다. 199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찾아오기 직전까지 40년 동안 한국 영화가 어떻게 성장기와 황금기, 쇠퇴기를 거치며 한 사이클을 매듭짓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저자가 사상 최초로 공개하는 김기영 감독의 <화녀> 포스터에 다다르면 일찍이 우리 영화가 이룬 성취에 새삼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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