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절망, 비극적 죽음” 또는 “사랑, 아름다움, 열정의 삶”···진은영이 쓴 실비아 플라스 두 가지 이야기

2022.09.30 07:00

<에어리얼 복원본>(엘리)은 실비아 플라스의 딸 프리다 휴스의 말을 빌리면 “그 순간의 나의 어머니”이다. ‘그 순간’은 플라스가 시를 쓰던 나날 또는 세상을 마감하던 당시를 가리키는 듯하다. 복원본은 플라스가 1963년 2월 11일 세상을 떠날 때 책상 위 검은색 스프링 바인더에 남긴 40편을 기초로 한다. 복원본은 즉 플라스가 직접 선별하고 배열한 원고를 수록했다.

복원본은 플라스의 남편이자, 프리다의 아버지였던 테드 휴스가 1965년 영국, 1966년 미국에서 출간한 <에이리얼> 판본과 차이가 있다. 미국와 영국에서 발간된 두 시집도 순서나 수록 작품이 다르다. 휴스는 이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플라스의 비극적 삶과 연계된 비판, 비난이 이어졌다.

시인 진은영이 번역했다. 대학에서 문학상담을 맡은 그는 “상담자들은 종종 내담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한 사람의 삶에 다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라고 ‘옮긴이의 말’에 썼다.

진은영은 플라스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면”이란 가정 아래 ‘배신과 절망과 비극적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사랑과 아름다움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 두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실비아 플라스. 위키피디아

실비아 플라스. 위키피디아

“나, 실비아 플라스는 1932년 10월 27일 아우렐리아 쇼버와 오토 플라스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계 폴란드 출신 이민자였는데 당뇨병을 심하게 앓았다. 그는 내가 여덟 살일 때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후 세상을 떠났다. 나는 병으로 무너진 아빠의 끔찍하고 가련한 모습을 기억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거상’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그 모습을 그려 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하버드에 입학한 남동생 워런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리곤 했다. 젊은 나이에 혼자되어 두 아이를 키워낸 엄마에게 죄책감과 동시에 증오심을 느꼈다. 두 번의 자살 시도 후에 끔찍한 전기치료를 받기도 했다. 나는 영국 시인 테드 휴스와 결혼했다. 불임으로 한동안 고민했고 유산으로 고생을 한 적도 있다. 작가로서 성공하기를 꿈꿨지만 남편이 승승장구했던 것과 달리 내 작품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몹시 인색 했다. 나는 가정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남편이 우리 가족과 꽤 가까이 지내던 여성 시인 아시아 베빌과 불륜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남편과 별거를 시작했고, 그 후 두 달간 머물렀던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나는 가스 오븐을 틀어놓은 채 세상과 작별했다. 1963년 2월 유난히도 추운 아침이었다. 몇 년 뒤 남편의 외도 상대였던 아시아 베빌은 나와 같은 방식으로 자살했다. 그것도 자신과 테드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딸을 데리고서. 이것은 나의 삶, 배신과 절망과 비극적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 실비아 플라스의 삶은 다르게 이야기될 수도 있다. 나는 아름답고 유머가 있었으며 승마를 좋아했다. 명문으로 이름난 스미스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입학 전에 쓴 단편소설이 〈세븐틴〉에 실리면서 신예 작가로 주목받을 만큼 글쓰기에도 재능을 보였다. 각종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유학을 갔다. 나는그곳에서 만난 시인에게 반해 4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잘생기고 예술가로서 전도유망했으며 배울 게 많은 남자였다. 딸 프리다와 아들 니컬러스, 귀여운 두 아이를 낳았다. 영문학과 독문학 석사학위가 있는 엄마 아우렐리아는 교양이 풍부한 여성이었고 문학적 열정을 가진 딸의 좋은 대화 상대였다. 나는 엄마를 사랑했다. 대학에 입학한 해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3년간 엄마에게 일주일에 한 통씩 총 696통의 편지를 썼다.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는 보스턴 대학의 생물학 교수로 땅벌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내 핏속에는 벌들에 대한 애정이 흐르는 것 같다. 나는 영국에 거주할 때 지역의 양봉 모임에 나갔고 집으로 벌 상자를 주문하기도 했다. 사실 내가 습작기부터 사랑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도 벌을 키운 적이 있다. 내가 죽은 뒤 남편 테드 휴스는 내 작품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남겨진 두 아이의 양육에도 최선을 다했다. 나는 남편보다 훨씬 더 유명해졌고 강렬한 작품들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딸 프리다는 시인이 되었다. 서른한 해의 짧은 생애였지만 나는 세상에 많은 것을 남겼다. 이것은 나의 삶, 사랑과 아름다움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진은영은 이어 “삶은 전자와 같은 비관적 버전 대신 후자의 낙관적 버전을 택하는 이들에게 궁극의 미소를 짓는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이의 삶은 이 두 가지 이야기 사이를 오고 간다. 절정에서 절망으로. 다시 절망에서 절정으로. 삶은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삶도 그랬다”고 말했다.

딸 프리다 휴스가 서문을 썼다. 복원본과 미국판, 영국판에 관한 자세한 설명, 비난받은 아버지에 대한 해명도 넣었다.

복원본은 <에어리얼> 원고 복사본도 실었다.

“배신, 절망, 비극적 죽음” 또는 “사랑, 아름다움, 열정의 삶”···진은영이 쓴 실비아 플라스 두 가지 이야기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