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

2023.07.07 12:12 입력 2023.07.07 19:05 수정

[책과 책 사이]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

김연수의 새 단편집 <너무나 많은 여름이>(레제)와 박상영 에세이집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인플루엔셜)이 같은 시기 나왔다. 내용을 들춰보니 두 작품 구상이나 집필 공간이 겹쳤다. 두 작가는 2021년 하반기 제주 가파도 레지던시에 함께 머물렀다. 둘 다 상주 작가로 초대받았다.

박상영은 레지던시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많이 썼다. 김연수와의 인연도 적었다. 김연수는 박상영의 첫 인터뷰이였다. 대학교지 기자를 할 때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낸 김연수를 만났다. 성심성의껏 질문에 답한 김연수에게 큰 감명을 받은 듯했다. 박상영은 이 인터뷰를 두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른’이 나의 말을 경청해준 경험”이라며 “그 경험으로 인해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더욱 확고히 굳히게 되었다”고 했다. 김연수가 밥도 해주고, 설거지도 해준 이야기도 썼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레지던시에 머물 때 제주 여러 서점에서 진행한 낭독회 때 발표한 짧은 소설들을 모았다. 짧으면 10분 길면 1시간이면 읽을 분량의 단편들을 이어냈다. ‘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법’의 다음 구절을 읽다가 박상영의 인터뷰 경험담을 떠올렸다.

“소설가는 몰라도 되는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니 글쓰기는 인식이며, 인식은 창조의 본질인 셈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세계에 대해 말한 것도 다정함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 가능성으로만 숨어 있던 발밑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김연수가 박상영에게 내보였던 다정함도 소설 속 화자가 강조한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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