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3단계 인용법 중 최고 난도 ‘가족 인용’, 그 과감한 도전

2023.08.25 20:18
신새벽 민음사 편집자

[신새벽의 문체 탐구]글쓰기 3단계 인용법 중 최고 난도 ‘가족 인용’, 그 과감한 도전

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 344쪽 | 1만8000원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다. 솔직하고 날카로운 자서전이 거둔 성공을 보며 출판업계인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곤 했다. 언제 경주로 되돌아갈 건가요? 포항으로 되돌아갈 건가요? 인천으로 되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이것은 앞으로 책을 쓸 때 고향 이야기를 직면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1956년 프랑스 북동부의 랭스에서 태어난 디디에 에리봉은 2009년 회고록을 출간했다. 미셸 푸코에 대한 전기를 비롯해 저명한 지식인들과의 대담으로 명성을 쌓은 그는 50대에 이르러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를 느꼈다. 랭스에 살던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지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자, 스무 살에 파리로 떠나오면서 무엇으로부터 떠난 건지 자문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는 평생 대화라고는 나누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가족사를 아들에게 들려준다.

디디에 에리봉의 지적 기지는 사회학이다. 심리학이 개인의 성격을 파고들 때 사회학은 사회적인 현실을 펼쳐낸다. 사회학이 사회를 다룬다고 해서야 동어반복이지만, 책에서 사회적인 것이란 특히 계급적인 것을 가리킨다. 에리봉은 파리에서 자기가 동성애자라고는 말할 수 있는데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고 밝히기는 그토록 수치스러웠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벗어나려 하지만 언제나 덧씌워지는 출신의 굴레. 독자들은 ‘랭스’에서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발견한다.

한국인은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부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유를 든다. 프랑스에 있는 계급 문화가 한국에는 없다, 디디에 에리봉은 학계에서 이미 성공한 인물이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야 아버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등등. 다 맞지만, 어려운 길을 가지 않으려는 핑계이기도 하다. 디디에 에리봉은 그럼 어려운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써냈을까? 바로 3단계 인용법이다.

1단계는 역자 이상길의 표현처럼 “지적 반려 역할을 하는 작가들” 끌어오기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보살펴줄 아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 혼자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다루려면 반려 작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푸주한이 된 형을 대하는 심정을 묘사하기 위해 저자는 흑인 작가 존 에드거 와이드먼을 “문자 그대로” 가져온다. 흑인 게이 작가 제임스 볼드윈을 인용하면서 ‘볼드윈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와 똑같이 말했다’고 한다. ‘네가 증오하는 너희 아버지도 어렵게 살았다’고 말이다.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아니 에르노다. “나는 아니 에르노가 난폭한 진실을 표현했던 단순한 방식을 참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참조를 통해 내밀한 감정이 사회적인 것으로 다루어진다.

2단계는 적을 분명하게 호명하기다. 우파 지식인 레몽 아롱을 한바닥 인용한 다음 공격하는 대목을 보자. “그는 지배자들과 그들의 지배에 봉사하는 용병이었다.” 노동운동을 증오했던 레몽 아롱에게 가하는 일격이다. 좌파 지식인 자크 랑시에르를 겨냥하는 대목도 보자. “19세기 텍스트를 읽을 때가 아니고는 일상에서 민중 계급을 만날 일이 좀처럼 없는 지식인.” 나의 적이 누구인지 밝힘으로써 노동운동을 지향하되 민중을 이상화하지 않는다는 노선이 선명해진다.

3단계 가족 인용하기가 진정 난도가 높다. 에리봉의 어머니는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을 찍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이 제대로 안 굴러가니까, 한번 혼내주려고 그런 거야.” 어머니는 아들의 외모를 이렇게 묘사하곤 했다. “네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깜둥이인 줄 알았다.” 계급을 배반하는 투표, 인종차별적 언어. 고등교육을 받고 싶었고 지식인과 만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에리봉의 어머니가 에밀 졸라도, 사르트르도 안 읽었으면서 아는 체하는 장면도 있다. 다 힘들지만, 가장 괴로운 것은 책이 출간된 후 어머니가 보인 반응이다. “너 우리를 떠난 거였어? 우리가 부끄러웠다고?”

가족은 책 때문에 상처받았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 남을 끌어올 때 분석은 폭력이 된다. 오늘날 출판계에서는 가까운 사람을 인용했다가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잦다.

사회적 현실을 포착하려는 시도가 나와 타자의 입장 차이로 좌초된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졸데 카림은 이 책이 되찾으려는 집단적 정치를 이제 개인들은 원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페미니스트 비평가 리타 펠스키는 서로 다른 인식 주체들 사이에서 진행 중인 “결코 마무리되지 않는 협상”이라고 표현한다.

지난 5월 에리봉은 <민중 여성의 삶과 늙음과 죽음>을 출간했다.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한 협상이 지금도 진행 중인 것이다. 가족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상처를 남겨온 또 다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양식집>에는 동생, 아내, 딸이 쓴 자기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책을 내는 폭력에 따르는 책임까지 지려는 작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역시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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